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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산세 빼어난 전남 강진 여행… 가우도 낙조, 강진만의 아침 풍경

by세계일보

세계일보

전라남도 강진은 그저 시골이다. 강진 청년들은 “면에는 놀 게 없어 읍에 가거나 목포로 나간다”고 말한다. 아직도 읍 한켠에 ‘누구누구의 손자가 고시에 붙었다’는 플래카드가 시선을 끈다.


백운동원림과 강진다원, 전라병영성과 한 골목 돌담길, 아기자기한 마량항과 생태공원 등을 둘러봤지만 가우도 인근에서 맞이한 일몰과 이른 아침 풍경에 이르러서야 진짜 강진을 만났다. 강진만 너머로 해안의 끝을 알리려는 듯 끝없이 솟아오른 산들이 장관이다. 생각해 보니 지나온 길 어디에서든 기암괴석이었다. 강진에서 닿은 월출산이 이렇게나 멋졌나 싶다. 강진 사람들이 수줍게 ‘소금강’을 언급한 배경, 먼길 마다하지 않고 강진으로 길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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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 산책에서 만난 영랑

강진의 핫플레이스는 여전히 가우도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라는 설명이 붙었다. 섬이 소(牛)의 멍에(駕)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우도(駕牛島)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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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가 정비된 뒤 군은 ‘A로의 초대’로 강진 여행을 홍보했다. 강진읍과 10개 면이 강진만을 사이로 삼각형 형태로 늘어섰고, 만의 한가운데에 있는 가우도가 도암면과 대구면을 이어 알파벳 A자 형태가 완성된 때문이다. 가우도는 오래전 대구면에 속했지만 지금은 도암면이다. 여행자들은 대개 대구면 쪽에서 가우도로 향한다.


가우도에는 다리가 3개다. 원래 대구면쪽 다리는 저두출렁다리(438m), 도암면쪽은 망호출렁다리(716m)였다. 그러다 “출렁이지 않는 출렁다리”라는 지적에 저두출렁다리는 청자다리로, 망호출렁다리는 다산다리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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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렁다리도 생겼다. 청자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을 택하면 몇 개월 전 새로 개통한 가우도 출렁다리(150m)를 건널 수 있다. 가우도 한복판의 청자전망탑에서 집트랙을 타면 1분 만에 대구면에 닿는다. 전망탑까지 모노레일이 놓였다. 한 주민은 “가우도에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놨어야 한다”고 푸념했지만, 강진 여행객은 으레 가우도를 목적지에서 빼놓지 않는다.


섬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생태탐방로는 2.5㎞다. 1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여름철에 모기가 많다는 민원에 군은 청자다리 시작점에 모기 기피제 분사기까지 설치했다. 청자다리를 건너 왼쪽길을 잡으면 영랑 김윤식의 동상이 벤치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는 그가 1934년 ‘문학’에 발표해 이름을 알린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적혀 있다. 그는 6·25전쟁 때 부상해 86편의 시를 남기고 47세에 타계했고, 2008년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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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다리 초입에 있는 커다란 물고기 조형물은 한·중·일 청년 예술가 공동창작 워크숍의 결과물이다. 빈 플라스틱병으로 꾸며진 조형물엔 “버려지거나 가지고 있는 뚜껑 없는 플라스틱병을 조형물에 달린 뚜껑에 달아 달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 해양 쓰레기를 슬기롭게 처리하자는 아이디어가 조형물이 됐다.


물고기 조형물 인근에 ‘강우상회’라는 간판을 단 라면집은 1주일 전 문을 열었다. 가우도 일몰을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명당이 될 듯하다. 현지 토박이는 카페 ‘가출’에서의 일몰이 좋다고 안내했다. ‘가우도 출렁다리에서 시간을 노래하다’를 줄였다. 가우도 인근 ‘더베이’ 펜션은 대구면에서 강진만 풍경을 즐기며 쉴 수 있는 최적의 위치다. 강진만 너머 두륜산과 주작산, 덕룡산, 만덕산 등이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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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차밭인 줄 강진다원, 선비들의 백운동 원림

월출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성전면 백운동원림으로 향했다. 백운동원림에 가기 전 강진다원이 먼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장원 서성환 회장은 차문화 부흥을 위해 1979년 설록차를 만들었다. 제주와 이곳 강진 월출산 자락에 다원의 기반을 마련했다. 월출산의 바위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넓게 펼쳐진 차밭 정경은 제주로 착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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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교차와 강한 햇볕을 막아주는 맑은 안개 등 명차 재배지의 요건을 두루 갖춘 강진다원은 1982년 조성됐다. 원래 재래종 치나무가 지천이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차를 마시며 학문했다고 전해지고 다신전을 집필한 명승 초의선사도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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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풍경을 눈에 담은 채 조금만 내려가면 백운동원림에 닿는다.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겼다고 전해진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명차 재배지 조건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백운동원림은 1812년 정약용이 백운동 별서정원의 12경을 노래한 시에 초의선사가 백운동도를 그려넣은 ‘백운첩’으로 유명세를 탔다. 정약용, 초의선사 등이 차를 만들고 즐긴 곳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백운동원림과 강진다원이 지척인 배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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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면의 홍골 저수지를 지나 작은 절 수인사에 닿았다. 수인사 2대 주지인 일정 스님은 수인산 자락에 있던 수인사와 성문암, 청련암 등 3곳의 절이 지금의 자리로 내려와 합쳐진 것이라고 했다. 일정 스님은 “6·25전쟁 때 빨치산 통제가 안 되자 산을 통째 불태웠고 당시 세 절의 탱화와 부처상만 겨우 여기로 모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산 정상 인근에 기왓장과 우물터 등 오래된 청련암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일정 스님은 절 뒤편 바위에서 자란 소나무의 끝이 십자가 모양이라면서 “하멜이 예전에 수인사에 머물렀고, 산에 있던 수인사의 주지도 36년간 기독교 전도사였다”고 말했다. 멀리 병풍바위 뒤로 예전 수인사 터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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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사에서 멀지 않은 전라병영성의 맞은편에 하멜기념관과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 조형물이 들어서 있고, 한 골목에 빗살모양으로 쌓인 돌담길은 ‘하멜식’으로 불린다. 네덜란드 사람인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이곳에 머무를 때 이들에게 배운 담쌓기라고 한다. 한국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과 강진의 인연으로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교류가 시작됐고, 하멜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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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병영성은 조선 1417년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해 1895년 갑오개혁까지 조선왕조 500년간 전라도와 제주도 등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1997년 사적 지정 당시 성곽 내 지휘부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된 상태였고, 성곽만 일부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남문, 서문과 북문, 동문 성벽 등이 차례대로 복원됐고, 내부 건물 복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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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자의 꼭대기쯤에 자리한 강진만생태공원에는 식물 424종, 육상곤충 325종 등 총 1131종이 살고 있다. 남해안 11개 하구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생물이 서식한다. 20만평 규모의 갈대가 자라는 갈대 군락지이고,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등 철새 집단 서식지다. 생태탐방로 데크는 3㎞ 펼쳐져 있고, 남포호 전망대와 고니조형물 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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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강진의 대표 여행지였지만 코로나19로 발길이 뜸한 곳도 있다. 된장마을로 유명한 신기마을의 식품명인 백정자(83·여)씨는 “메주는 꾸준히 만들고 있지만 이젠 여행객이 드물다”고 했다. 백씨가 일군 ‘담가온’은 이제 아들 최진호씨가 운영한다. 강진 도자기 명인인 해봉도자기의 방진영(75)씨는 “코로나 사태로 도자기나 옹기를 안 산다. 제일 먼저 타격을 받았다”며 “소 키우고 농사지으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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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진 가는 길은 불편하다. KTX를 이용해도 광주송정역까지 1시간30분, 역에서 강진까지 차로 1시간이고, 운전을 하자면 4∼5시간 거리다. 강진의 농촌 집에서 1주일 살며 여러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인 ‘푸소’(FU-SO, Feeling Up-Stress Off)는 숙박시설이 부족하고 먼 강진의 단점을 고려했다. 여섯 밤을 자면서 조·석식을 주고 여러 체험을 묶어 1인당 20만원이라 인기다.


강진=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