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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부드러우면서도 쫀득쫀득… 못생겨도 맛은 좋아!

by세계일보

아귀 맛집


12월~2월사이 가장 맛있는 별미

경주 감포일출복어·기장 전산가든

아귀수육·아귀찜 양 푸짐·맛 최고

속초 옛골의 탕은 바다향기 그득

크래커·아귀간 궁합도 기발한 맛

세계일보

‘감포일출복어’의 아귀 수육

입이 크고 흉하게 생긴 데다 자신만 한 먹이를 집어 삼키는 탓에 지옥에서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다는 이름이 붙은 아귀(餓鬼). 겨울에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별미 중의 별미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사전이라는 정약용의 자산어보에서는 아귀를 ‘거대한 올챙이 같고 머리 위에는 두 개의 낚싯대와 낚싯줄이 걸쳐 있으며, 밥알 같은 미끼가 달려 있다’고 묘사한다.

아귀는 실로 다양한 맛이 나는 생선이다. 살은 보드라우면서도 쫀득하고, 껍질은 쫄깃하다. 특히 잇몸 주위의 입술부위 질감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유의 탄력을 가졌다. 다른 생선에게서 볼 수 없는 개성이 강해 때가 되면 자꾸 찾아 먹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 더구나 아귀의 간은 익히면 아주 부드럽고 고소해서 마니아들의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12월부터 2월이 제철인 아귀는 지금 이맘때 살이 오를 대로 올라 그 맛이 남다른 탄성을 자아낸다. 김새봄의 스물일곱 번째 먹킷리스트는 ‘아귀 맛집’이다.

#아귀의 탱글한 살 맛을 그대로, 아귀 수육

경주 시가지의 골목 사이 자그마한 노포들 사이에 자리 잡은 새 건물. 경주 사람들은 물론 멀리서도 이름나 찾아가는 이들의 발길이 잦은 ‘감포일출복어’다. 상호는 복어 전문점이지만 활아귀수육의 명성이 자자하다. 출입문 바로 옆 수조 안을 유유히 헤엄쳐다니는 아귀들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주문과 동시에 수조에서 아귀를 바로 꺼내서 조리를 시작해 조리시간이 긴 편이다. 기다림 끝에 손꼽아온 활아귀수육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나온다. 지금껏 봐왔던 접시 중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접시. 수북히 쌓여 김을 용암처럼 모락모락 내뿜으며 나타난 활아귀수육은 실로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후끈한 김이 서린 아귀살 한 점을 잡아 입 속에 밀어넣는다. 부드러우면서도 쫀쫀하다. 특히 살의 결과 결 사이가 너무나 부드러워 토끼눈이 된다. 접시의 정중앙에서 핑크빛으로 뽀얗게 자리 잡은 아귀간은 김이 걷히니 자태가 고와 꽃다발이 연상된다. 아귀간 찜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푸딩처럼 금세 젓가락에서 떨어져 버린다. 수저를 들어 아귀간 한 조각을 간신히 퍼 먹으니 크리미한 맛에 완전히 매료된다.


거친 파도와 멋진 경관의 드라이브 코스 관광지로 인기 많은 부산 기장. 기장에는 미역, 멸치, 장어 등 유명한 해산물들이 워낙 많지만 부산 현지사람들에게 특히 소문난 아귀전문점 ‘전산가든’ 역시 이곳 기장에 위치하고 있다.


학리방파제에서 바닷바람을 피해 내륙 쪽으로 걸어와 드문드문 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들어오다 보면, 여기 차가 지나가도 될까 싶은 꽤나 한산한 골목자락에 다다르게 된다. 골목 언덕길을 올라서면 너른 마당에 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전산가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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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가든은 이미 2대째 영업 중인 ‘아귀요리 노포’다. 넘치디 넘치는 푸짐한 양과 개성 있는 맛으로 부산 지역 마니아들을 꽉 잡고 있다. 접시의 자취가 보이지 않을 만큼 가득 쌓아낸 아귀찜은 양과 무게로 기선제압을 한다. 양념을 했는지 붉은 빛이 살짝 도는 수육에 깨소금을 가득, 눈처럼 뿌려냈다. 큼지막하게 도리쳐 한 점을 들 때마다 손에 힘이 묵직하게 들어가는 크기의 살코기는 먹을 때도 입안에 꽉 들어차 만족감과 행복감을 채워준다. 깨소금의 향긋함과 살짝 양념된 아귀수육의 궁합이 참 좋다.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뜨끈한 탕

속초 앞바다에서 나는 생선들의 찜, 탕, 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속초 ‘옛골’. 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아늑한 방의 분위기. 손님들이 추울까, 구석구석 테이블 사이에 놓은 정감가는 난로들에서 추위에 떨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풀어진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평상시에 생태찌개나 물곰탕을, 겨울이 되면 아귀찜이나 탕을 주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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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골' 아귀살

아귀탕을 주문하자 주방은 바빠지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찬이 가득 깔린다. 주문한 아귀 탕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양미리 조림부터 직접 담근 갓김치, 깻잎찜, 젓갈 등 할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반찬들이다. 평상시에 먹는 간보다 조금 더 짭짤한 게 진정으로 ‘메이드 바이(made by) 할머니’가 맞다.


모든 재료는 국내산이다. 탕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생물(生物)이다. 팔팔 끓어 막 나온 탕은 시원한 향이 진동한다. 손가락 크기로 숭덩숭덩 썬 파가 절반, 자작하게 깔린 콩나물이 듬성듬성, 그리고 나머지는 아귀다. 얼른 국물을 한 수저 떠서 입으로 직행하니 콜록콜록 기침이 나는 게 청양고추를 양껏 넣었다. 칼칼한 향기와 짭짤한 국물을 사발째 들이켜니 마시지도 않은 술이 쑤욱 하고 내려감과 동시에 소주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크림보다 부드러운, 아귀간

스시 전문점에서 아귀 간은 식전 안주로 단골로 등장하는 재료다. 반주(飯酒,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콘셉트로 개성 있는 메뉴를 내는 강남역 이자카야 ‘스시산원 반주헌’. 스시 전문점인 ‘스시 산원’에서 낸 캐주얼한 세컨드 브랜드다.


이곳의 인기 메뉴 ‘안키모(찐 아귀간) 링고 카나페’는 메뉴를 구성한 셰프의 센스가 돋보이는 멋진 안주다. 대개 스시 전문점에서는 아귀간을 그대로 익혀 소스나 향을 입혀 제공하지만, ‘스시산원 반주헌’에서는 이를 살짝 비틀어 안키모로 스프레드를 만들었다. 잘 익은 달콤한 사과를 다져넣어 의외의 반전을 줬다.


무심한 크래커와 터프한 아귀간 스프레드의 생김새와는 달리 향기로운 바다냄새와 꾸덕하면서 떨떠름한 아귀간 스프레드의 식감, 그 사이로 존재감을 알리는 사각사각 상큼한 사과의 조합은 단순한 듯 놀라운 생각의 전환이다. 박수쳐주고 싶은 기특한 발상과 맛이다.


김새봄 푸드칼럼니스트 spring586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