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가는 그 비단길, 충북 괴산 여행

[여행]by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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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은 가을이 오가는 길목이다.

괴산이라니. 인근의 옥천, 청주, 단양과 비교해 어쩐지 터프한 이름이다. 괴산에 속하는 읍면리의 지명도 만만찮다. 우선 전 국민, 특히 부대찌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유명한 사리면이 있다. 그리 북적이지 않을 소수면, 감물면, 장연면, 연풍면, 칠성면, 문광면, 청천면, 청안면 등이 괴산이 품은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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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에 가을이 머물러있다.

괴산은 역사 지리에 더욱 자주 등장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바다와 먼 곳이 바로 괴산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충청북도. 나이지리아, 카메룬 정도 위치에 괴산이 있다. 남동쪽으로 소백산맥이, 서남쪽엔 노령산맥이 버티고 섰으니 고산준령과 계곡이 많을 수밖에 없다. 조령산, 주흘산, 백화산 등이 첩첩으로 괴산 땅을 둘러쌌다. 내륙 깊숙히 위치한 괴산은 예로부터 육로가 발달했다. 문경에서 조령을 넘어 괴산에 닿아야 한양에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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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 수옥폭포.

새도 쉬어가며 넘는다는 백두대간 조령산이 떠억하니 버티고 섰다. 고구려와 신라가 교류하고 또 싸웠던 길이 이 조령산을 지난다. 길은 이화령(548m)과도 이어진다. 괴산 연풍에서 문경읍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예전엔 산도적과 산짐승이 많은 탓에 여러 명이 함께 넘어야 했던 길이지만 지금은 인기높은 산행 코스와 자전거 코스 덕에 여전히 여러 사람이 함께 넘는다.(이곳 휴게소는 우동이 특히 맛있다.) 이화령에 내린 비는 서로 흘러 한강이 되고 동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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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지(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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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지(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가을도 분명히 이 길을 통해 내려갈 터이다. 문광지를 노랗게 물들이고 화양구곡을 붉게 적신 후 길을 따라 문경으로 내려갈 것이다. 가을 비단길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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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지(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산행객이 많다. 단풍철이라 그렇다. 올해 단풍은 밀물처럼 한 번에 들지 않고 곳곳에 퐁퐁 색색 물감을 들이는 듯 하다. 괴산의 단풍은 노란색이 으뜸이다. 문광지(양곡저수지)는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아름드리 은행나무 300여 그루가 섰다. 지금이 절정이다. 샛노란, 고흐의 그 노란색 이파리를 날리고 있다. 떨어진 은행잎이 열매를 덮어 냄새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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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지(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하늘을 가린 은행 터널길이 저수지를 기역(ㄱ)자로 꺾으며 얼싸안는다. 이런 풍경이라면 도저히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 한가운데로 부교가 나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모델이 되고 또 사진가가 되어 서로 찍고 찍히며 가을을 추억에 남긴다. 낚시 명소라 곳곳에 좌대가 둥둥 떠있어 그리 심심하지 않고 야간에도 조명이 들어와 ‘노랑’의 향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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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지(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늘 하는 얘기지만 새벽이면 더욱 좋다. 물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노란색이 안개에 번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펼친다고 한다. 물론 숙취가 많은 나는 새벽에 그곳을 가지 않았다. 밀크씨슬과 홍삼 덕에 겨우 일어나 주차장식당까지 기어서 이동했을 뿐이다.


신기한 것은 문광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더 들어가면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는 ‘소금문화관’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괴산은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서 가장 바다와 먼 곳이다. 이스라엘 사해(Dead Sea)라도 된단 말인가. 소금이라니, 염전이라니.


알아보니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 괴산의 명물 중 하나가 절임배추인데 엄청난 양의 배추를 절이기 위해 소금을 많이 사다놓다보니 이를 활용해 내륙에서 바다 체험이라도 해보자는 뜻이다. 딱 들어맞는다. 주변이 죄다 충북과 전북, 경북 내륙 산간지대인데 이곳 어린이들이 염전 체험을 하러 멀리 서해안까지 가는 수고없이 여기서 즐기고 배워볼 수 있다. 강원, 경북이 면한 동해에도 염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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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은 산책, 등반, 뱃놀이 모두를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산에도 오색단풍이다. 산막이옛길을 걸으면 단풍을 눈에 주워담을 수 있다. 어찌나 붉은지 망막이 다 물들 지경이다. 이름도 근사한 산막이옛길은 칠성면 사오랑마을과 산막이마을을 연결하던 십릿길이다. 길 옆에 큰산이 가로막아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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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에서 바라본 괴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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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데크로 깔아놓아 별 어려움없이 다녀올 수 있다. 건너 군자산과 괴산호가 있어 가을 단풍이 좋기로 유명하다. 원래 단풍잎이란 나무가 생장을 멈춘 탓에 얇아진 이파리인데 일교차가 크면 더욱 붉고 노랗게 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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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 배편 귀로.

전국 곳곳에 걷는 길이 많아 좋긴한데 코스가 폐곡선(오랜만에 쓰는 단어다)이 아닌 이상 다시 돌아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산막이옛길은 데크길로 갔다가 돌아올 때 배를 타고 오거나 등산로로 돌아올 수 있어 심심하지 않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도 아닌데 여러 경우의 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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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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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사실 명승 중에는 화양구곡이 가장 유명하다. 병풍에서나 봤을 법한 그림 같은 계곡이다. 경천벽,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등 저마다 의미있는 이름이 붙은 절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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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어른 열댓이 선대도 넉넉할 너럭바위 위로 명경같은 물이 흐르고 그 위에 붉은 단풍잎이 떠있다. 발바닥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낙엽길도 좋다. 파천까지 걷는 동안 ‘색의 파노라마’가 주변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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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너럭 바위에 앉아 기암괴석과 그 위에 올라선 정자를 바라보며 깊은 숨 한 번 쉬다 가는 것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반쯤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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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화양구곡하면 우암 송시열을 빼놓을 수 없다. 참 남긴 것도 많고 뒷말도 많은 인물이다. 팔십을 넘게 살며 후학을 양성한 성리학자이자 정치적으론 노론의 거두였다. 줄곧 명을 추종한 사대주의 대표 아이콘으로도 그 족적을 남겼다. 조선일보 박종인 여행문화전문기자가 쓴 ‘땅의 역사’에 따르면 우암은 주자(朱子)에서 시작하고 주자로 끝나는 주자 절대주의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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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화양구곡의 이름도 그렇게 생겼다. 우암은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이곳 계곡에 이름을 붙였다. 화양(華陽)이란 이름만 봐도 우암이 얼마나 중국(송·명)을 추앙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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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이 이름 붙인 괴산 화양구곡

아무튼 이 아름다운 계곡에 화양서원을 지었고 만동묘를 세웠다. 서원이야 그렇다 쳐도 만동묘가 재미있다. 조선의 정치인인 우암이 명나라 신종과 숭정제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머나먼 한반도 내륙 깊숙한 곳에 명당을 골라 지은 곳이다. 만동묘를 오르는 계단은 좁고 높다. 누구나 옆걸음으로 고개를 숙여 걸음을 살피며 올라가도록 고안했다. 숙이고 숙여 오를 수 밖에 없는 그 신기한 계단 위에는 명나라 황제의 위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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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이 명 황제를 위해 지은 만동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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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의 좁고 높은 계단을 오를 때는 위태한 발걸음을 보기 위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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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에서 바라본 계곡

자연 지리적으로도 괴산엔 숨은 보배가 많다. 미선나무 등 천연기념물이 많은 것은 물론 청결고추, 절임배추 등 다양한 특산물이 많다. 특히 장연면에는 대학옥수수가 유명한데 ‘대학’은 지명이 아니다. 씹으면 고소하고 단맛을 내는 찰옥수수의 종자를 개발한 이가 충남대학교 최봉로 교수라서 ‘대학찰옥수수’라 불렀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옥수수가 한국에서 학위를 받았으니 세조가 벼슬을 내린 정이품송이나 영국 찰스2세로부터 작위를 받은 등심(Sir Loin)만큼 영광스러운 일이다. 청결고추도 재미나다. 산간 청정지대에서 자란다고 붙인 이름이다.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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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한지체험박물관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한 연풍면에 위치한 한지체험박물관은 소금박물관처럼 뜬금 없지는 않다. 괴산 신풍마을은 주변에 한지의 재료가 되는 참닥나무가 많았고 과거를 보러 조령을 넘던 선비들이 종이를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한지를 만들던 제지소가 많았다. 게다가 물이 좋다. 예로부터 한지장은 물을 찾아다닌다는 말이 있는데 맑은 물이 솟고 원풍천이 흐르는 신풍마을이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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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한지체험박물관은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에서 강소형잠재관광지로 지정한 곳이다.

심지어 단원 김홍도가 화원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연풍현감을 맡아 이곳에 내려와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곳 종이가 없었다면 그처럼 많은 작품을 생산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곳에 대대로 최씨와 안씨 등 한지장의 양대 가문이 내려왔는데 현재 안치용 한지장(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이 홀로 남아 가업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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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한지장이 괴산 한지체험박물관장으로 있다.

안치용 한지장이 관장으로 있는 한지체험박물관은 옛 신풍분교 자리에 지상 1층 면적 1326㎡ 규모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지정한 곳이다. 한지의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한지 예술작품이나 한지 생활용품 전시도 볼 만하다. 전통 한지의 제조과정과 한지 소원등 만들기, 자연염색체험 등 체험거리도 많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 할 것 없이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좋다. 한국관광공사 옥종기 세종충북지사장은 “한지체험박물관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기 위해 효율적인 컨설팅과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수도권에서 2시간 거리인 접근성의 장점을 잘 살려 강소형 잠재관광지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괴산 맛집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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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갱이국밥 괴산 주차장식당

  1. 괴산하면 올갱이(다슬기)다. 40년 넘어 영업 중인 괴산읍내 ‘주차장식당’이 올갱이국밥으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밀가루에 굴려 쓴맛을 없앤 올갱이를 시원한 얼갈이나 우거지와 함께 끓여내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딱 국밥 한 종류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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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물매운탕. 괴산 목도민물매운탕

  3. 내륙 산간 물 맑은 곳이니 매운탕과 버섯도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능이버섯 등 다양한 버섯을 넣은 전골이 맛있는 읍내 별미식당과 메기 쏘가리 빠가사리 등 민물 매운탕을 잘하는 감물면 목도민물매운탕 식당이 유명하다. 버섯전골은 슴슴하고 시원한 것이 딱 건강해 보인다. 메기매운탕은 투실한 메기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내는데 역시 채소를 많이 넣어 칼칼한 국물맛이 입맛을 당긴다. 곁들여내는 반찬도 좋다.
  4. 괴산한우타운은 한우를 사다가 상차림비를 내고 구워먹는 곳인데 고기 질이 좋고 상차림도 썩 괜찮다. 최상급 한우 소고기를 실컷 구워먹으면 역시 비용이 많이 들긴 하는데 미리 소머리곰탕을 주문해 먹으면 든든하고 맛도 좋다. 8000원에 그만한 국물와 건더기를 주는 곳도 드물다.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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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자연드림파크 내 호텔 ‘로움’은 괴산에서 가장 최근에 조성한 호텔이다.

  1. 괴산 자연드림파크 내 호텔 ‘로움’은 괴산에서 가장 최근에 조성한 호텔이다. 치유센터란 이름에 걸맞게 대자연 속 깔끔한 현대적 시설로 지었다.

괴산=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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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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