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슛돌이, 골든보이되다'…
'막내형' 이강인의 18년 축구史

by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뛰었다 하면 찬사, 찼다 하면 극찬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강인(18·발렌시아)홀릭이다.


차붐-지송빠레-쏘니. 이들의 뒤를 이을 막둥이의 등장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지난 6월16일, 이강인이 포함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대표팀은 남자축구 역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했으며, 이강인은 대회 MVP 격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이후 14년 만의 최연소 수상. 대한민국이 푹 빠진 새로운 스타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한국과 스페인, 폴란드를 오가며 쉴 틈 없이 달려온 이강인의 첫 소속팀은 유스팀도, 해외 구단도 아닌 KBS 예능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 소속의 'FC슛돌이'다. 12년 전 예능 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날아라 슛돌이'는 만 7세 이하, 귀여운 뽀시래기들의 왁자지껄 공놀이에 불과했다. 이강인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얘기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담았던 시즌 1,2와는 다르게 2007년 KBS N SPORTS에서 방영된 '날아라 슛돌이 시즌3'는 말 그대로 보는 즐거움과 '진짜 축구'를 선보였다. 매 경기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리를 차지했으며, 그 모든 것은 주장 이강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스포츠서울

당시 만 6세였던 이강인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완벽한 플레이와 개인기, 필드매너로 화제의 중심이 됐다. 슛돌이 팀의 감독을 맡았던 유상철 감독과 크로스바 맞추기 대결을 해 그를 무너트렸던 장면은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종종 등장하는 자료화면 중 하나다.


꼬꼬마 시절을 거친 우리의 슛돌이는 어느덧 유 감독과 같은 눈높이에 서서 2002년, 그가 달았던 태극 마크를 자신의 가슴에 달았다. U-20의 기적을 만든 국가대표 '막내형'. 이강인의 18년 축구 인생사가 지금 시작된다.

스포츠서울

"어른 아니야?" 상위 0.1% 슛돌이, 그 전설의 시작

"쟨 열일곱살이에요. 하하."


만 6세 이강인의 패스를 보며 유상철 감독은 홀린 듯이 말했다. '선수'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어린아이들이 공을 쫓아 우르르 뛰어다닐 때, 이강인은 넓은 시야로 날카로운 킬 패스를 선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팀플레이 뿐 아니라 개인기 역시 남달랐다. 자신보다 세 살은 더 많은 형들 네 다섯명을 상대로 마르세유 턴, 시저스(헛다리 드리블)를 선보이며 이들을 여유롭게 따돌린 뒤 골을 기록했다. '슛돌이' 방영 당시 이강인의 플레이를 보며 헛웃음을 지은 상대팀 감독들만 열 트럭은 될 것이다.


유상철 감독 역시 이강인의 실력에 대해 끊임없이 찬사를 보냈다. '슛돌이' 종영 직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그냥 성인이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성인을 축소해놓은 것처럼. 저 연령대에 하기 힘든 기술을 갖고 있고. 그냥 전국 랭킹 1위라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극찬했다.


종영 이후에도 이강인에 대한 관심은 계속됐다. 이강인은 10세 때 '영재의 비법 리얼스터디'에 출연해 체력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체력 테스트를 진행한 김상현 용인대 국제스포츠 연구원은 "이강인의 체력은 거의 대학생 수준이다. 전문 교육과 관리를 받고 있는 체육 영재 50명과 비교해도 상위 0.1%안에 드는 체력이다"라고 평가했다. 실력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동 나이대 탑 클래스임을 인증한 셈이다.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오만가지 방법으로 입증한 이강인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구단들의 관심이 대상이 됐다. 마침내 세계 무대를 밟을 기회가 온 것이다.

스포츠서울

"1000억 줘도 못 데려가!" 발렌시아 명중한 이강인의 왼발

이강인의 선택은 스페인이었다. 2011년 1월 그는 유소년 축구감독의 소개로 스페인에 건너가 여러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이후 이강인에게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발렌시아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2011년 7월,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 공식 입단하게 된다.


발렌시아 입단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후 모두가 이강인의 행보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강인은 자신의 명성을 실력으로 당당히 입증했다. 입단 직후 펼쳐진 '토렌트 대회', '마요르카 국제축구대회' 등에 출전해 MVP로 선정됐으며, 2013년에는 'BLUE BBVA' 대회에 참가해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베스트7에 이름을 올렸다.


발렌시아 입장에서는 복덩어리가 굴러 들어온 셈이다. 날아다니는 이강인을 유망주 물색에 혈안이 되어 있는 타 구단들이 눈독 들이지 않을 리 없었다. 바르셀로나(스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영국),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 내로라하는 유럽 빅클럽들이 이강인의 영입을 위해 러브콜을 보냈으나,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가족이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생활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2013년 재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이강인은 그런 구단의 믿음에 보답했다. 2015년 출전한 로케타스 데 마르(roquets de mar) 대회에서는 발렌시아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이듬해 2016년에는 발렌시아주 16세 대표팀에 선정돼 스페인 전국대회에서 발렌시아를 준우승까지 올려뒀다.


화려했던 유소년 시절을 마친 이강인에게 발렌시아는 또 한 번 손을 내밀었다. 만 17세의 나이에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2022년 여름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이후 이강인은 발렌시아 CF메스타야에 콜업 되었으며,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본격적인 프로 데뷔에 시동을 걸었다. 재계약 직후 펼쳐진 국왕컵 8강전에서는 역전승의 주역이 되며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길었던 유망주 시절을 거친 후 2019년 1월, 그는 발렌시아 1군 스쿼드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어마어마한 몸값도 뒤따랐다. 바이아웃 8000만 유로(한화 약 1070억 원). 쉽게 말해 복잡한 협상과 조건 없이 이강인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107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1군 데뷔 이후 승승장구 하던 그에게도 잠깐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발렌시아의 선발 명단에서 늘 제외됐으며, 교체 명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대급 영재임에도 벤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강인을 보며 국내외 팬들은 함께 마음 아파했으나 기다림은 잠시였다.


이후 이강인은 정정용 U-20 감독의 부름을 받고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누구보다 강인이가 원했다." 정정용 감독은 이강인의 대표팀 영입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기적은 이렇게 시작됐다.

스포츠서울

"경이로운 천재의 탄생" 국가대표 막내, 우승보다 빛났다

"저희도 우승할 수 있습니다"


18세 막내의 대범한 출사표였다. 2019년 6월 정정용호는 '우승'이라는 막대하지만 막연한 꿈을 안고 폴란드로 떠났다. 25일, 대표팀은 우승후보 포르투갈과의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0-1로 아쉽게 패배하며 순탄치 않은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2-1로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숙명의 라이벌 일본, 최강 전력의 세네갈, 화려한 라틴 축구를 자랑하는 에콰도르를 차례대로 격파하며 결승전 티켓을 따냈다.


"어느 대회를 나가던 우승하고 싶었다." 결승 직전 이강인은 짧지만 당찬 포부를 끝으로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첫 골을 기록하며 사상 첫 월드컵 우승에 가까워지는 듯했으나, 우크라이나의 계속되는 공세와 체격 차이 등 열세에 몰린 대표팀은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조별예선과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는 동안 이강인은 총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대표팀 '에이스'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승패에 상관없이 매 경기 후 모든 포커스는 이강인에게 향했다. 당시 현지 언론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이강인의 화려한 플레이에 '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축구를 구사하는 스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을 비롯한 국내 축구인들 역시 "물건 하나 나왔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패배했으나 이강인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던 대표팀 형들에게 막내답지 않은 든든한 위로를 건네며 그들을 끌어안았다.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골든볼'이라는 영광을 차지했을 때도 모든 공을 팀에게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우승보다 빛났던 골든보이. 18세 이강인의 찬란했던 월드컵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한국축구의 미래', '발렌시아의 유망주', '차세대 축구스타'. 숙제와도 같았던 수많은 꼬리표들을 이강인은 오롯이 자신의 왼발로 증명해냈다. 생애 첫 월드컵은 아쉽게 끝났지만 '노력하는 축구 천재' 이강인의 꿈의 무대는 이제 시작이다.


[스포츠서울 윤소윤기자] younwy@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 DB, KBSN 방송화면, 대한축구협회, 발렌시아 공식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