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게 목포가 좋지라
제 무역항으로서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개항한 목포는 파도치는 근현대사의 주 무대가 되었다. 가을이 시작되고 진해지는 9월~10월에 4개의 큰 축제도 열리니 언제가도 좋은 목포, 더욱 보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 좌측에 보이는 그림이 차범석 작품 속 '옥단이'다 |
“이 시들 보고 눈물짓는 분도 계세요.”
정오의 햇살이 내려앉은 골목의 담벼락에 직접 쓴 시와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이 골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던 문화활동가 정태관 선생이 벽에 쓰인 시를 가리킨다. 80세 어르신의 시는 ‘큰딸 서울 딸 그렇게 이뻐 죽것소’로 시작한다. ‘결혼해 갓고 살믄 좋을 것인디’, 좋은 사람 만나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노모의 당부 같은 넋두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목포 근현대 문화를 이끈 주역들 |
목포 자랑, 북교동 예술인 골목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큰딸이어라우 / 낮에는 낮밥 먹었는가 전허고 / 저녁에는 잘 자라고 전화허고 / 하루도 안 빼먹고 전화헌당게 / 그랑게 제일 큰딸이 좋지라우’ 바로 옆에 8 9세 어르신이 남긴 시도 주인공이 큰딸이다. 시의 제목은 ‘큰딸 자랑’인데 자음 한 획에 나 뭇잎이 닿아 ‘큰딸 사랑’처럼 보인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큰딸인지라 속으로 이 시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목울대가 뜨겁고 꽉 메어서 눈에 힘을 주어야 했다.
걷다가 멈춰서 눈물을 삼키게 하는 이 거리의 이름은 ‘북교동 예술인 골목’이다. 목포를 넘어 대한민국 근현대문화를 이끈 주역들의 삶이 이 거리에 묻어있다. 1907년생으로 운림산방 3대 주인이자 호남전통회화의 거봉이 되는 남농 허건, 1903년생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장편소설을 남기고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박화성, 1897년생으로 <산돼지> <난파> 등 표현주의 희곡에 식민지 지식인의 당당한 목소리를 투영한 김우진, 1942년생으로 평론의 기준 이 된 전무후무한 문학가 김현, 1924년생으로 극작가로서 <산불> <밀주> 등 사실주의극의 모범이 되는 수많은 작품을 남긴 차범석. 태어나 떠난 시기는 각자 달라도 목포 북교동 이 거리를 무대로 그들이 남긴 작품들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열어 보인다.
정태관 선생이 지인들과 모델이 되어 표현한 예술가 5인방 |
이들이 태어나 작품활동을 했던 시기를 짐작하면 예술은 차가운 대접을 받았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말과 얼을 뺏긴 일제강점기가 지속됐고, 다른 이념 속에 총구를 겨누었던 6·25전쟁도 겪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그렇게 굴곡졌고, 아팠고 배고팠다. 당대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 넉넉지 않아도 나누는 마음, 그럼에도 불 구하고 나아가는 힘’을 담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낮고 후미진 골목을 비추는 가로 등 이 있다는 것은, 좀 더 가진 사람이 갖지 못한 삶을 떠올리는 것은. 더없이 아프고 배고픈 시절에 예술이 밥은 못 되어도 밥을 뜰 마음, 살아갈 의미를 찾게 한다. 불편한 것들이 편리해지고, 배고픔 대신 살찔 것을 염려하는 오늘날도 예술의 역할은 다르지 않다. 어떤 노랫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고, 한 줄 문장에 그 사람 처지를 생각하게 된다면 예술은 예술로서 제 일을 다 한 것이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 여든 할머니의 시처럼 말이다.
차범석 생가 옆에 마련된 '차범석작은도서관' |
우리네 삶에 예술 없으면
최근 몇 년 사이 목포는 관광도시로도 우뚝 섰다.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원도심에서도 이곳 북교동은 미지의 보물섬처럼 발굴하고 탐험하는 맛이 있다. 200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교동(목원동)은 남양 동, 무안동과 함께 목원동으로 통합되어 주민들은 여전히 북교동과 목원동을 혼재해서 쓰곤 한다. 북교동(목원동)예술인 골목은 크게 박화성길, 김진섭길, 차범석길, 김현길, 김우진길로 나뉘며 그 안에 각 예술인과 관련한 스폿,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차범석길에는 1930년~50년대 실존 인물인 ‘옥단이’가 골목에 예의 방실방실한 웃음을 지으며 여행객을 맞이한다. 2003년 차범석이 희곡 <옥단어!>를 발표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머물던 옥단이를 불러온 것이다. “옥단-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이웃에 물을 길어다 주며 삶을 이끈 당찬 여성. 목포에서는 사람 이름을 부를 때 끝에 ‘이’ 대신 ‘어’와 가깝게 발음해 작품 제목이 <옥단어!>다.
작은 도서관에서 차범석 선생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차범석 생가 옆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에는 대본집 <전원일기>와 희곡집 <옥단어!> 등이 전시되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뿐이랴. 도서관 코앞에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에 한 획을 그은 전설의 가수 이난영의 자취를 다채로운 전시물로 만날 수 있다. 그가 노래한 <목포의 눈 물> <목포는 항구다>가 없었다면 지금의 K-POP 신화도 조금은 더 늦춰졌을지 모를 일이다.
무인카페로 운영 중인 화가의 집, 이 문을 통해 이난영&김시스터즈 전시관을 돌아볼 수 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엔터네이터로 불러도 손색없는 이난영은 가수에서 그치지 않았다. 1959년 딸과 조카가 주축이 된 그룹 ‘ 김시스터즈’를 만들었으니 미국에 서 활약한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인 셈이다. 이난영&김시스터즈전시관은 화가이자 문화예술가로 활동하는 정태관 선생이 하나하나 발품을 팔아 세웠다. 지난 20006년 삼학도 난영공원에 이난영 여사의 수목장을 모셨는데, 이때 딸이자 김시스터즈 멤버였던 김숙자 선생과 인연이 닿았다고.
이난영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 |
선생이 기증한 이난영 여사의 유품과 미국에서 활동 당시 착용한 의상, 소품 등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으로 오늘날의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전시관은 정태관 선생이 운영하는 무인카페, 화가의 집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화가의 집은 북교동의 또 다른 예술작품 같다. 초록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에 노란색 파라솔, 네모반듯한 집 외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와 인공 짚을 덮은 지붕과 장독대까지. ‘북교동 예술인 골목’이라는 뜻있는 공간을 만든 것도 선생의 오랜 정성이 빛을 발한 결과이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찾는다.
이난영이 만든 김시스터즈는 미국에서 활약한 우리나라 첫 번째 여성 그룹이다 |
목포 축제
2023 목포문학박람회
백일장, 학술대회, 북콘서트, 문학생태포럼, 목포문학상 시상식, 디지털가요제, 푸드드럭까지 목포문학관과 북교동 예술인 골목 등을 무대로 개최된다.
📆 9.14(목)~17(일)
🏠 http://expompl.kr
목포항구축제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 ‘파시’를 주제로 전통적인 해양문화를 알리고 퍼레이드, 아트페어, 경연, 항구음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목포항 및 삼학도 일원에서 열린다.
📆 10.20(금)~22(일)
🏠 www.mokpofestival.co.kr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목포종합경기장 등 70개 경기장에서 골프, 궁도, 농구, 레슬링 등 49개 종목을, 11월에는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개최되어 31개 종목에서 승부를 가른다.
📆 10.13(금)~19(목) 전국체육대회, 11.3(금)~8(수) 전국장애인체육대회
🏠 https://jeonnamsports.or.kr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물드는 산, 멈춰선 물 – 숭고한 조화 속에서’를 주제로 목포문화예술회관,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 대중음악의 전당 등에서 국내외 수묵작가의 작품부터 대학생, 어린이 수묵제, 대한제국 수묵유산전 특별전이 열린다.
📆 9.1(금)~10.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