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울주처럼
태양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떠오르고 지기를 반복했을까. 고작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은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고 하는데…. 유라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간절곶에서 톱니바퀴처럼 알차게 굴러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간절곶 해맞이에 나선 시민들 |
머릿속을 맴도는 잡념에서 빠져나올 때 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몇 가지 단어를 소리 내 읊조리는 것이다. 구름, 바람, 파도, 나무, 햇살, 무지개… 구름은 솜털 구름, 바다를 깨우는 바람, 윤슬 머금은 은빛 파도, 초록 잎의 나무, 바다와 하늘에 무지개. 음절에 불과한 단어지만, 음미하면 머릿속에 구체적인 이미지가 그려지고, 잡념은 어느새 뒤꼬리가 빠지게 사라지고 난 뒤다.
대송항 방파제에 자리한 프러포즈 등대 |
떠오르는 해
그러니 말이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단어들을 실제로 만나면 기분의 밀도가 참으로 쫀쫀해진다. 여행의 힘이다. 오늘 만날 기분 좋은 단어는 ‘일출’이다. 그것도 간절곶 일출. 그 지명마저도 상서롭지 않은가? 간절, 곶. 간절히 바 라면 이뤄질 것만 같은 사방을 비추는 크고 둥그런 태양이 수평선을 뜨겁게 물들이며 두둥실 떠오른다. 두 손을 꼭 쥐고 있지 않아도 이미 속으로는 새해 소원을 말하고 있다. 여러 개 말하면 욕심쟁이라고 할까봐(누가?) 딱 하나만 말했다. ‘<SRT매거진>을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 2024년 소망하는 일이 꼭 이뤄지길!’ 여러분 중에 아직 간절곶 일출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이 있다면, 아니, 올해 일출을 보러 일부러 이른 시간 나와본 적이 없는 분이 있다면, 2023년이 다 가기 전에 꼭 한 번 눈앞에서 마주하시길 바란다. 겨울이라 해 뜨는 시간도 좀 늦어져서 아침 6시에 일어나도 일출을 만날 수 있는 동절기다. 특히 간절곶 일출을 추천하는 건, 이곳이 더없이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곶’이란 삼면은 바다, 육지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을 가리킨다.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은 대륙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라는 장엄한 문구가 새겨진 돌탑을 뒤에 두고 눈 앞의 장관을 바라본다. 남색, 보라색, 파란색, 빨간색을 바람에 섞어 이리저리 칠한 듯한 하늘과 바다의 빛이 오묘하다. 정중앙의 수평선이 연분홍으로 물들더니 이내 붉은 눈동자 같은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을 뚫고 온전히 제 모습을 다 드러낸 태양은 유난히 빨갛고 선명하다.
해맞이에 나선 공룡 조형물과 간절곶 풍차 |
간절곶을 중심으로 이편과 저편에는 나사해수욕장과 진하해수욕장이 자리한다. 나사해수욕장에는 이색적인 식당과 카페가 밀집해 있고, 진하해수욕장은 서핑 성지로 유명하다. 해수욕장 앞에 자리한 명선도는 지난해 여름 화려한 변신을 시도했다. 이제 일몰을 면밀하게 기다릴 차례인 것이다.
작은 행성 같아
온 세상이 짙은 녹색으로 물드는 여름,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들을 쉬이 만날 수 있는 진하해수욕장은 울주에서도 젊은 여행객들의 큰 사랑을 받는 장소 중 하나다. 진하해수욕장에서 바라보면 바다 위에 수묵화 같은 작은 섬이 보인다. 그 이름은 명선도. 면적 6744㎡, 둘레 330m의 아담한 크기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지난해 여름 야간경관 조명을 설치하며 많은 사람이 찾는 명선도 |
명선도는 본래 일 년에 몇 번 썰물 때 바닷길이 열려야만 들어갈 수 있어 ‘신비의 섬’으로 불렸다. 명선도의 일출이며, 인근 서퍼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며 섬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해변과 섬을 연결하는 모랫길이 조성되어 출입이 한결 쉬워졌고, 지난해 여름에는 모랫길도 해상보행교로 대신해 썰물 때가 아니어도 언제나 명선도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명선도의 변신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비의 섬에서 아바타의 섬, 태양이 잠든 섬이라는 별칭을 얻은 명선도의 매력은 일몰 무렵부터 발휘된다.
명선도로 향하는 바닷길에는 은은한 조명과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져 아직 섬으로 들어서지 않았는데도 다른 행성에 발을 들여놓은 우주인이 된 것만 같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이 여러 경관조명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을 보며 섬 안으로 들어서자 감춰둔 보물을 자랑하듯 이색적인 풍광이 여행객의 혼을 뺏는다. 특히 기자는 섬 오른쪽의 해안가에 별처럼 뿌려진 조명 빛에 마음을 뺏겼다. 어떻게 보면 우주를 유영하는 바다생물 같기도 하고, 바다에 반영된 은하수 무리 같아 신비롭기 그지없다. 어린 자녀와 함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신비로운 명선도를 두 눈에 담으시길.
국립신불산자연휴양림에서 파래소폭포 가는 길 |
높고 곧은 심성
울주의 신불산은 해발 1159m로 정상을 향하지 않더라도 고즈넉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국립신불산자연휴양림 주차장을 기점으로 완만한 산길을 오르면 우람한 크기의 기암괴석이 계곡을 메우고, 그 위로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풍경이 속속 나타난다. 흙길, 자갈길, 나무 덱길을 고루고루 밟으며 15분 남짓 걸었을까? 아득한 절벽 위로 폭포가 쏟아진다. 아래로는 둥그런 소가 생겼는데 낙엽이 가득 쌓여 마치 뭍처럼 보인다. 아, 아, 말하는 소리가 아-!, 아-! 하고 울리니 자연이 만든 무대처럼도 보인다.
높이 15m에 이르는 파래소폭포 |
고개를 끝까지 치켜올려야 시작부터 끝을 볼 수 있는 파래소폭포는 높이가 15m에 둘레 100m, 깊이 5~7m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폭포를 오르며 파래소의 뜻이 궁금했는데, 바라는 대로 이뤄지는(비가 내린) 곳을 뜻하는 ‘바래소’에서 ‘파래소’가 되었다고. 어쩌면 계곡물이 너무도 파래서 파래소일지도 모르겠다. 오면서 본 기암괴석의 색이 유난히 푸른 것이 파래소에 물든 것만 같다. 파래소폭포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리면 박제상유적을 만날 수 있다.
박제상유적 일대 |
반듯한 홍살문 너머 치산서원, 충렬공박제상기념관이 자리하며, 기념관에는 당시 신라의 국제정서와 박제상의 일대기가 흥미로운 디오라마와 글,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박제상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후손이자 눌지왕(재위 417∼458) 때에 만고의 충신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21세기를 사는 민초의 시선에서는 그의 삶이 마치 신을 향한 직진, 잔다르크의 여정처럼 느껴진다.
충렬공박제상기념관, 신라시대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 |
박제상은 고구려와 일본(왜)에 볼모로 잡혀간 내물왕의 두 아들이자 눌지왕의 동생을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눌지왕 2년(418)에 고구려의 장수 왕을 설득해 복호를 데려오는데 성공한 박제상은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탈출시킨다. 일본이 고구려와 달리 강경하게 나오자 박제상은 미사흔을 빼내는 대신 스스로 왜왕에게 잡 히는 길을 선택한다. 왜왕은 박제상이 자신의 신하되길 거부하자 그를 목도라는 섬에 유배하고, 섬에 불을 질러 전신을 태운 뒤 목을 베어 잔혹하게 죽인다.
충렬공박제상기념관, 박제상의 일대기를 담은 전시물 |
두 왕제는 돌아왔지만, 신하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으니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슬픔은 오죽했을까.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통곡하다 죽 은 부인은 치술신모로 되살아난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박제상유적에서 충신의 높은 뜻과 부인의 애절한 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