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하루하루 부딪힘의 연속이다. 쉼표가 필요한 순간,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강원도 동해 삼화사로 향했다.

곧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여느 때였더라면 속상한 마음이 클 테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깊은 산속 고즈넉한 사찰에서의 하룻밤이지 않은가. 햇빛 쨍쨍하면 그런대로, 비가 오면 또 그런대로 템플스테이만의 특별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사실 나는 나일론 불자다. 불교신자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불교라고 대답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도 모르고 예불하는 법도 모른다. 그래도 사찰은 참 좋아한다. 유연하게 곡선을 이룬 처마도 좋고, 아련하게 들려오는 풍경 소리도 좋고, 은은한 향 냄새도 좋다. 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랜만에 사찰에 가게 되었다. 그것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강원도 동해의 삼화사라니 절호의 기회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일상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고 와야겠다.

첫째 날

(좌)적광전에 모신 보물 제1292호 철조노사나불좌상 (우)골굴사에 이어 두 번째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호주 출신의 러스 그레고리

15:00

서울에서 3시간을 달려 삼화사에 도착했다. 동행한 이는 호주에서 온 푸른 눈의 사나이 러스 그레고리. 15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그는 서울과 속초를 오가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강원도행이 익숙하다. 여행도 아주 좋아해 대한민국 방방곡곡 많이도 돌아다녔다. “템플스테이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번에는 경주 골굴사에 머물렀는데, 선무도를 배우고 활쏘기, 승마 등도 체험하며 특별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삼화사도 기대가 커요.” 삼화사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휘지 보살님의 안내에 따라 방을 배정받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저 옷일 뿐이지만 이미 속세를 떠난 기분. 잠시만이라도 나를 옥죄는 모든 것과 작별하리라 다짐해본다.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 자리한 천년고찰 삼화사

16:00

이미 예고한 것처럼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무렴 어떠랴.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시고, 삼화사를 한 바퀴 돌았다. 두타산과 청옥산 아래에 자리한 천년고찰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1977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경내에는 대웅전인 적광전과 약사전, 비로전 등이 자리하고, 철조노사나불좌상과 삼층석탑 등의 보물도 있다. 러스의 입에서 “어메이징(Amazing)!”이라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불교문화는 대단해요. 이렇게 오래된 사찰이 잘 보존되어 내려오는 것도 신기하고요. 종교 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자연 속에 있는 사찰에 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산책을 마치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발우공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먹을 만큼만 조금씩 담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김치와 나물, 호박전, 된장국 등 오늘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에 감사하며 식사를 마쳤다.

(좌)삼화사 범종루에서 타종을 하는 법장스님 (우)적광전에서 천수경을 외며 절을 하는 예불 시간

18:00

오후 6시를 알리는 타종부터 예불 및 108배 시간은 법장스님이 관할한다. 타종은 중생제도를 상징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이 걸린 범종루에서 진행하는데, 템플스테이 참여자 모두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졌다. 낳아주신 부모님을 위해,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위해, 자식과 같은 조카를 위해, 또 친구와 동료를 위해 범종을 한 번씩 칠 때마다 소원을 빈다. 간절한 마음도 담는다. 목탁을 두드리며 천수경을 외는 법장스님의 목소리에 맞춰 적광 전에서 예불도 올렸다. 곁눈질로 따라 하기 바빴던 나에 비해 러스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심지어 천수경을 읊는 시도까지 할 만큼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108배를 마치면 비로소 완성되는 108염주

19:00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8배와 염주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지만 108가지 감사한 마음을 담은 영상과 박자를 맞추며 천천히 절을 올리니 생각보다 수월하다. 절을 할 때마다 구슬을 하나씩 꿰어 염주를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다. 정말 꿰어야 보배니라. 불가능하다 여겼던 108배가 끝나고 우리 손엔 108염주가 남았다. 러스 역시 성공이다. 관절에서 요란하게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견뎌냈다’는 기쁨이 더크다. 여전히 잊히지 않는 건 “절하면서 느껴지는 충만하고 풍요로운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라”는 105번째 감사의 글귀. 힘들 줄로만 알았던 108배를 올리며 실로 충만함을 느꼈으니 참으로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놓고 법장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새벽 4시에 일어나려면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둘째 날

(좌)국내 최고의 해돋이 명소 추암 촛대바위 (우)비를 맞으며 가볍게 걷는 사찰 포행

4:00

오랜만에 달게 잤다. 알게 모르게 108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러스는 딱딱한 방바닥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지만 그럼에도 동해 일출을 놓칠 수 없어 서둘러 채비한다. 어스름한 새벽녘에 찾아간 곳은 국내 제일의 해돋이 명소인 추암 촛대바위. 궂은 날씨에 붉게 떠오르는 태양은 볼 수 없었으나 촛대바위와 어우러지는 능파대의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은 변함없이 장관이다. 능파대를 지나 추암해변 앞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파도소리에 집중하며 명상했다. 어떤 생각을 했느냐는 법장스님의 물음에 러스가 답한다. “영원하지만 또 순간이기도 해요.”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는 파도의 이치다.

울창한 숲에서 우렁찬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는 무릉계곡 쌍폭포

7:00

아침공양을 마치고 예정보다 빨리 무릉계곡 명소 탐방에 나섰다. 약간 욕심을 부려 관음암까지 돌아보기 위함이다. 무릉계곡은 호랑이가 빠져 죽었다는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4km에 달한다. 수백 명도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 무릉반석에는 수많은 묵객의 시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정갈한 필체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이 실로 대단하다. 관음암을 거쳐 신선바위, 하늘문, 쌍폭포, 용추폭포, 관음폭포, 학소대 코스로 이동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우거진 나무와 바위가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고, 빗방울 머금은 숲과 흙은 더욱 진한 향을 내뱉는다. 폭포는 또 어떤가. 비온 뒤 우렁찬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거친 물줄기에 압도당하고 만다. 한여름, 이곳에 앉아 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겠다.

(좌)무릉반석에 새겨진 수많은 묵객의 시와 이름 (우)관음암 보살님이 내어주신 토마토 한 접시

11:00

무려 4시간에 가까운 산행. 일반적으로 무릉계곡 명소 탐방은 2시간 정도 진행하지만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렀다. 러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물으니 “무릉반석에 새겨진 멋진 글씨와 거침없는 쌍폭포, 그리고 관음암 보살님이 먹고 가라며 썰어준 붉은 빛깔 토마토”란다. 그리고 산행을 마친 지금, 두 다리를 편히 쉬게 할 수 있는이 순간에 감사하다는 말도 놓치지 않는다. 강원도 동해 삼화사에서의 1박 2일 체험형 프로그램은 이렇게 끝났다. 하루가 그리 길지 않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108배를 올리며 배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서울로 돌아간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하늘은 눈부시도록 파랗게 빛났다.

님아, 삼화사에서 이것만은 놓치지 마오

철조노사나불좌상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1292호. 두 손과 하반신이 완전히 파손된 채 발견되었고, 철불 배면에 새겨진 10행 161자로된 글을 근거해 노사나불로 복원했다.

 

삼층석탑

삼화사 적광전 앞마당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보물 제1277호로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까지 3층 구조, 높이 4.7m다. 석탑 안에서 목제함과 납석제 소형탑, 청동제 불대좌편, 철편 등이 발견됐다.

 

무릉계곡

두타산과 청옥산 아래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4km에 달하는 계곡. 계곡 초입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전기 4대 명필가 중 하나인 양사언의 석각과 김시습 등 수많은 묵객의 시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관음암

두타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암자. 원래 지조암이었지만 6·25전쟁 당시 소실되었고, 1959년에 중건하며 관음암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관음암으로 가려면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의 300개 계단 ‘하늘문’을 통과해야 한다.

 

신선바위

신선이 앉아 무릉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는 신선바위. 엉덩이 모양으로 움푹 파인 형상으로 오른쪽 절벽에 우뚝 솟은 남근바위와 함께 음과 양의 조화를 이뤄 소원을 빌면 자식이 생긴다는 전설도 있다.

 

용추폭포 & 쌍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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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에는 학소대, 관음폭포, 선녀탕, 문간재 등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그 끄트머리에는 3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와 두 개의 폭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폭포가 자리한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삼화사 템플스테이

  1. 삼화사는 산사에서 원하는 기간 동안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휴식형’과 108배, 연등 만들기, 문화유적 탐방 등 다양한 체험을 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2. 예불(자율)과 공양을 포함한 휴식형은 1일 기준 초등생 3만 원, 중고생 4만 원, 성인 5만 원이고, 촛대바위 해돋이, 무릉계곡 포행, 108염주 만들기, 타종 체험, 예불(자율), 공양 등을 포함한 체험형은 초등생 4만 원, 중고생 5만 원, 성인 7만 원이다.
  3. 강원도 동해시 삼화로 584|033-534-7676, 010-6830-8811

 

템플스테이 예약하기

  1. 인터넷 : 홈페이지 방문(www.templestay.com)→사찰 소개를 살펴본 후 머물고 싶은 사찰 선정→원하는 일정 선택 후 템플스테이 참가 신청→홈페이지 로그인 후 마이 페이지에 들어가 템플스테이 신청→내역에서 예약상태를 확인→안내에 따라 산사여행 시작
  2. 방문 접수 : 종로구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1층 홍보관 방문→홍보관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머물고 싶은 사찰 선정→참가비 입금 후 필요사항을 사찰에 문의→안내에 따라 산사여행 시작
  3. 템플스테이 홍보관|10:00~19:00|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6, 템플스테이 통합정 보센터 1층|02-2031-2000

글 김정원, 사진 손준석, 촬영협조 삼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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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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