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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가을, 정취, 김천

bySRT매거진

서늘한 바람이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 나무들은 잎을 단장하며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지만, 마음 한편에는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쓸쓸함이 찾아온다. 그러나 경북 김천에는 마음을 어루만져줄 따뜻한 가을이 기다린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깃든 충혼

경북 김천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 인물의 지극한 충혼이 깃들어 있다. 바로 조선의 승려이자 승병장이었던 사명대사다. 진리를 찾아 수행하던 승려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망설이지 않고 전장으로 향했다. 전쟁을 일으키고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르는 왜군과 맞서 백성을 지키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호국불교 정신에 따른 결단이었다.

사명대사공원은 이러한 호국애민 정신을 기리는 곳이다. 사명대사가 출가한 뒤 승려로서 수행하고 정진했던 직지사와 잇닿아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한옥에서 포근한 휴식을 취하는 숙소 건강문화원,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한 시립박물관, 향긋한 차를 음미할 수 있는 솔향다원 등을 갖춰 공원만 제대로 둘러봐도 오감으로 김천을 느낄 수 있다. 공원의 랜드마크인 평화의탑은 밤에도 은은하게 빛을 낸다. 나라의 미래가 어두웠던 시절에도 꺼뜨릴 수 없었던 사명대사의 충혼처럼.


특히나 가을은 사명대사공원이 빛나는 계절이다. 곳곳에는 은빛 억새가 하늘거리고, 김천 제1의 명산으로 꼽히는 황악산이 한껏 울긋불긋 물들어 눈을 즐겁게 만든다. 직지사는 길목마다 국화로 수를 놓아 은은한 가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대웅전에서 비로전으로 향하는 길까지 이어지는 단풍나무길은 황홀한 붉은빛의 터널을 만들어낸다.

걸을 때만 만날 수 있는 장면들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알기 위해선 체험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도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두 발로 직접 걸어야 한다. 김천에서는 곳곳에 색다른 테마로 꾸며진 길을 만날 수 있다. 

김천(구미)역에서 내렸다면 우선 인근의 김호중 소리길로 향하자. <미스터트롯>에서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김호중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김천예고를 다니며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키웠고, ‘트바로티(트로트계의 파바로티)’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호중 소리길은 그가 꿈을 키우던 학창시절 등굣길을 벽화로 꾸민 공간이다. ‘고맙소’ ‘우산이 없어요’ 등 김호중이 불러서 유명해진 곡의 가사가 새겨져 있어, 노래의 감동을 되새겨볼 수 있다. 평일 낮에도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호중 투어’를 즐기는 팬들로 붐빈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김천을 만끽하고 싶다면 부항댐으로 발길을 옮기자. 위로는 비룡봉, 매봉산 등 너르게 펼쳐진 산이, 아래로는 잔잔한 부항천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걷는 곳곳에 산내들생태공원, 물 문화관 등 볼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256m의 출렁다리를 비롯해 집와이어, 스카이워크 등 다양한 즐길 거리도 있다. 평화로움과 짜릿함, 어느 쪽의 취향을 가졌든 부항댐은 안성맞춤의 목적지라는 뜻이다.

숲이 전하는 위로

일상에서 고갈된 에너지를 여행으로 채울 수 있을까? 잠시 일상을 벗어나거나, 사람들과 거리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지친 마음이 쉬이 회복되기 어렵다.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사람과 일에 치이는 동안 생긴 마음의 생채기가 치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어느 순간 여행에서 ‘탈출’보다 ‘힐링’이라는 테마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이렇듯 힐링이 간절한 이라면 국립김천치유의 숲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소백산맥의 명산 중 하나인 수도산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푸르름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트레킹, 피톤치드 호흡, 명상 등 숲을 느끼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곳의 백미는 관리사무소에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펼쳐지는 드넓은 자작나무 숲. 사계절 변함없이 꼿꼿한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비로소 차분히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무를 쓰다듬으며 나의 마음도 어루만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