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의 추억

[여행]by SRT매거진

서울의 오래된 풍경을 기록하다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의 추억

서울은 거대한 도시다. 급속한 성장을 겪어 공간의 정체성이 파괴되었다고 하지만 도시의 너른 품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600년 도읍이 품고 있는 수많은 얘기와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정동길을 걸으면서 그곳의 근대 건축물들을 그려보기도 하고 때론 카페에 앉아 창밖에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서울은 넓고 둘러볼 곳은 넘쳐났기에, 하나의 여행이 끝날 즈음엔 다음에 둘러볼 동네를 정하는 고민을 했다. 내겐 그 고민이 여행이 안겨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소도시 여행의 즐거움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의 추억

여행의 낭만을 상징하는 수단이 바로 기차다. 노트와 펜을 챙겨 전주행 기차에 오른 적이 있다. 가장 먼저 6월의 따스한 햇살을 품고 있는 풍남문 앞에 서서 종이 위에 풍남문의 모습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전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철거됐지만, 성곽의 정문이던 풍남문은 남아 있었다. 풍남문에서 도로를 하나 건너 한옥마을의 초입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성당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전동성당이었다. 약 100년 전 세워진 이곳의 여름 햇살 아래 빛을 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 종탑들이 균형 있게 배치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근처에 고층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트인 곳이라면 한옥마을 곳곳에서 성당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라면 한옥이 빼곡하게 들어선 마을을 기대하고 올 텐데, 정작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이란 사실이 재미있다.

프라하에서의 기록들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의 추억

많은 국가를 다녔지만 해마다 가을이 되면 유독 체코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체코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의 이미지가 무뚝뚝할 것이란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수도인 프라하를 마주하는 순간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중세 모습이 고스란히 보전된 건축물들과 거리마다 수많은 여행객으로 꽉 차는 모습에선 황금빛 활기가 넘쳐났다. 프라하는 많은 별명을 가진 도시로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모차르트가 사랑했던 곳으로 ‘유럽의 음악학원’ 이라고도 불리며, 로댕은 ‘북쪽의 로마’라고 이곳을 칭송했다.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블타바강은 프라하를 동서로 양분한다. 강의 동쪽은 12세기에 조성된 구시가지이며, 프라하성이 있는 서쪽은 1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확장된 신시가지 구역이다. 노베메스토라고 불리는 신시가지엔 유난히 뾰족하고 아름다운 탑이 많다.

예기치 못한 선물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의 추억

그곳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에서 지냈는데 그곳 사장님의 딸인 6살배기 채연이와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내 드로잉북을 살펴보더니, 30분 뒤 내게 줄 것이 있다며 자신이 그린 그림이 담긴 종이를 내밀었다. 지면 위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토끼, 고양이, 곰 등 다양한 동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각 동물의 디테일이 무척 자연스러워 놀랐다. 특히 곰 옆에 꿀단지가 있는 게 당시엔 정말 재밌었다. 이처럼 그림은 나이를 초월한 소중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자연, 날것이 주는 진정한 아름다움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의 추억

2015년 3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약 13개월의 취재기간 약 30번 정도 제주도를 방문했다. 그 뒤 제주도에서 그린 드로잉으로 책을 발간했다. 우리는 SNS를 통해 글과 사진을 올리며 일상의 기록을 남기며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간편하게 남겨진 기록이 지겹고 재미없어질 때가 있다. 그때 마음속 어딘가에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기록을 새기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드로잉을 해보기를 권한다. 그림 여행의 감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한번 카메라 대신 연필과 붓을 챙겨 여행을 떠나 보자. 전보다 깊은 시선으로 여행지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된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글·그림 리모

여행을 사진 대신 그림으로 기록하는 ‘여행드로잉작가’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4년 가까이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얼룩을 지워내기 위해 홀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고 현재의 그를 완성했다. 펴낸 책으로는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 <드로잉 제주>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 등이 있다.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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