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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충북 스토리텔링 여행 #8 까다로운 입맛도 만족시키는 충북 맛 기행

bySRT매거진

때때로 전국을 여행하며 그 지역 대표 음식을 찾아 먹는다. 올겨울에는 입 짧고 허약한 친구를 위해 충북의 향토음식을 찾아다녔다. 맹렬한 동장군도 물리칠 괴산 괴강매운탕과 옥천 생선국수, 면역력이 쑥 올려줄 보은 산책정식, 질리지 않는 청주 삼겹살, 고당도 영동 포도로 만든 와인까지. 지역의 자연과 문화, 손맛이 담긴 음식들이 심신을 따뜻하게 덥혀줬다. “네 덕에 올겨울은 감기 안 걸릴 것 같다.”는 친구 말에 뿌듯했다.

TRAVEL STORY

청동기부터의 오랜 역사와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물 같은 여행지, 충북. SRT매거진과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함께 충북의 숨겨진 매력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괴산 괴강민물매운탕거리

“민물고기는 비린내 나서 싫더라.” 민물매운탕 먹자는 내 말에 친구가 대뜸 대꾸한다. “매운탕 잘하는 식당에 한 번도 못 가봤구나.” 친구를 데리고 괴산으로 향했다. 괴산읍 대덕리 괴강교 근처에 괴강매운탕거리가 있다. 2010년 괴산 향토음식인 민물매운탕을 특화한 곳으로, 괴산매운탕, 우리매운탕, 오십년할머니집 등의 민물매운탕 전문점 9곳이 성업 중이다. 민물매운탕 마니아들이 멀리서도 찾아온다.


이곳은 괴강이 가까워 민물매운탕 요리가 발달했다. 괴강에 사는 쏘가리, 메기, 모래무지,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잡아 괴산 특산물인 고추와 마늘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 같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민물매운탕의 대명사인 쏘가리는 살맛이 돼지고기처럼 좋아서 ‘수돈’(水豚)‘ 이라 불렸다고 한다. 육질이 돼지고기처럼 쫄깃하진 않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단점이라면 다른 민물고기 매운탕보다 두 배 정도 비싼 것이랄까.


쏘가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이 메기와 빠가사리(동자개)다. 메기매운탕을 먹을까, 빠가사리 매운탕을 먹을까 고민했다. 식당 주인장이 “메기는 살이 두툼한 대신 기름지고, 빠가사리는 살보다 국물 맛이 좋아요. 선택하기 어려우면 메기와 빠가사리를 섞은 잡어매운탕을 드세요.” 한다.


입 짧은 친구가 조심스레 매운탕 국물을 한술 뜨더니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네!” 하며 매운탕을 듬뿍 떠 앞접시에 담았다. 뭉근하게 끓인 진한 국물에 “캬 시원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보은 산채정식거리

다음에 먹을 보양식은 보은의 산채정식이다. 속리산면 상판리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로 가다 보면, 대로 양옆에 산채정식 전문점이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다. 전국 유명 사찰 입구에 있는 산채정식거리보다 정돈된 느낌이다. 식당의 규모로 법주사를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산채정식에 사용하는 식자재는 속리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근처 텃밭에서 무공해로 기른 농작물이다. 마을 사람들이 채취한 고사리, 두릅, 냉이, 쑥 같은 산나물을 잘 말렸다가 겨울에도 사용한다고 한다. 산채정식 값은 반찬 가짓수에 따라 1인 15,000원에서 25,000원 정도 한다. 밥상 위 접시 수를 세보면 비싼 값이 아니다. 15,000원짜리 기본 산채정식만 해도 각종 약초와 산나물로 구성된 20여 가지 음식이 나온다. 등치순, 궁채, 삼채 등 듣도 보도 못한 산채들이 등장해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라도 한정식처럼 육해공 식자재가 총출동한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다. 몸에 좋은 더덕, 마, 인삼, 당귀 같은 약초와 능이, 싸리버섯, 애꽃버섯 등의 버섯으로 만든 음식이 많다. 조리도 달고 시고 맵게 하는 것보다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도록 한다. 장아찌와 된장찌개에서는 대대로 이어져 온 손맛이 느껴진다. 단출한 메뉴인 산채비빔밥에도 평균 10여 가지 나물이 들어간다. 쌉사래한 향이 나는 산채를 하나씩 음미하며 먹다 보면 당장 건강해질 것 같다. 친구가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자마자 “우리 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 미리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음식이 담백해 많이 먹어도 부대끼지 않았다나.

옥천 생선국수거리

민물매운탕에 맛 들인 친구가 “전국 맛집이 서울에 다 모여 있다는데, 생선국수 식당은 찾기 어렵더라.” 하길래 옥천군 청산면 생선국수 골목으로 갔다. 생선국수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영양식이므로 허약체질인 친구에게 딱 맞다.


옛날부터 청산면 사람들은 모내기가 끝나면 금강지류인 보청천에서 천렵했다. 민물고기를 잡아 야채와 갖은양념을 넣고 푹 끓여 매운탕을 만들어 먹었다. 1960년대 들어 쌀 대신 소면을 넣어 끓인 것이 생선국수의 시초가 되었다. 금강을 끼고 있는 충북 옥천과 영동, 충남 금산, 전북 무주에서도 어죽을 많이 먹었는데, 옥천 가장 동쪽에 있는 청산면이 생선국수의 본고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청산면에는 생선국수 원조집인 ‘선광집’과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출연한 ‘찐한 식당’ 등 생선국수 전문점 8곳이 있다. 입소문 난 식당은 평일에도 붐빈다. 맛의 비결은 누치, 붕어 등 온갖 잡어를 아가미와 뼈, 살까지 함께 넣고 푹 끓이는 것.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체에 걸려 가시를 발라낸다. 육수에 고추장을 풀고 소면을 넣어 삶은 뒤, 미나리, 호박 등의 야채를 넣어 한소끔 끓이면 완성된다.


비린내 없이 진한 국물에 소면이 들어가니 더 구수하다. 이미 퍼진 국수는 씹을 것도 없이 후루룩 넘어간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생선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목욕한 것처럼 개운하다. 생선국수에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을 곁들이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청주 삼겹살거리

“삼겹살거리라니! 그런 거리도 있나? 삼겹살은 어디에 가도 다 있잖아. 꼭 청주에서 먹어야 해?”


친구가 묻는다. “삼겹살거리를 첨 듣는 게 당연해.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거리니까. 청주 사람이 옛날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돼지고기를 나눠 먹기를 좋아했대. ‘지랑물’이라는 달인 간장에 담가 굽거나,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 먹었다더라. 이러면 잡냄새가 안 나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대. 그리고 삼겹살에 묵은지를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대.”


청주 서문시장 삼겹살거리에 도착해보니, 골목 입구에 금돼지 동상이 서있다. 이 ‘운수돼지’가 손님의 행운 길을 뻥 뚫어 준다나. 운수돼지가 바라보는 쪽에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 15곳이 모여 있다. 생삼겹살값이 200g에 10,000원~12,000원 사이다.


청주 주민이 추천한 식당에 가서 생삼겹살을 주문했다. 직원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숙성한 덩어리 고기를 싹둑싹둑 자른 뒤 노릇하게 구워준다. 손님이 집게를 들기가 무섭게 달려와 고기를 뒤집는다. 다 익으면 먹는 법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소금에 찍어 드시고, 다음에 파무침과 쌈장, 마지막에 갈치속젓을 드셔 보세요.”


고기 자체가 맛있으니 뭘 찍어 먹어도 맛이 환상이다. 많은 사람이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삼겹살 육질에 반해 청주 삼겹살거리를 찾는구나 싶었다. 내년에는 친구와 서문시장 삼겹살 축제(매년 3월 3일)에 맞춰 재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영동 와인터널

“삼겹살 먹으니까 와인 생각나지 않냐? 와인에 숙성시킨 삼겹살도 맛있는데.”


친구는 건강을 위해 자기 전에 와인 한 잔씩 마시고 잔다. 그녀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곳이 영동 와인터널이다. 이곳은 길이 420m 터널 안에 조성한 와인 문화 체험공간이다. 와인 문화와 역사를 알아보는 와인 문화관, 수많은 오크통이 전시된 와인 저장고, 와인 테마 레스토랑, 와인 시음장 외에 트릭아트 존과 화려한 조명으로 꾸민 환상터널 등의 즐길거리를 갖췄다.


전시물을 통해 영동에 와인터널이 조성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동이 전국 포도 생산량 10%를 차지하는 포도 생산지이며, 기후와 토양이 고품질, 고당도 포도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포도 생산량이 많은 만큼 와이너리도 많다. 와이너리에서 최고급 포도를 엄선해 와인을 만든다. 발효 포도의 자생효모를 이용해 첨가물 없이 숙성하므로, 유익한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와인터널 안에 영동 소재 42개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시음장이 있다. 시음할 수 있는 와인은 세 종류이며, 매일 바뀐다. 소믈리에가 시음 잔에 와인을 따르며 소개한다. “‘여포의 꿈’은 청포도 알렉산드리아로 만든 스위트 와인이고, ‘백마산’은 캠벨로만 만든 캠벨 와인입니다. ‘마고’는 캠벨 90%에 복분자 10%를 혼합한 와인입니다.” 세 가지 와인이 당도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달달하다. 술을 못 마시거나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을 정도다.

친구가 와인을 잔술로 사서 마셔본 뒤, 와인 한 병과 안주로 먹을 임실 치즈를 골랐다.


“오늘 밤은 백마산 와인을 마시고 자야겠다. 꿀잠 자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