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워케이션 – 하동에서 찾은 자기만의 방

bySRT매거진

일주일간 경남 하동으로 떠났다. 여행이 아니라 ‘일’을 하러.

벌써 까마득한 일이지만, 처음 재택근무를 시작했을 때의 기억이 난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게 철이 없게도 신이 났더랬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착각이었다는 걸 일주일도 안 되어서 깨닫게 되었다. 일의 효율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둘째 치고,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 일상이 힘들었다. 마땅히 나갈 곳도 없건만, 강제로 갇힌 사람처럼 답답했다. 마침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동시에 하는 ‘워케이션(Workation)’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재택근무 문화가 자리 잡으면 워케이션과 중장기 여행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이보다 좋은 명분이 있을까.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면 빠르게 전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며 일주일간 워케이션을 체험해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과는 통과! 애사심이 샘솟는 순간이다.

여행보다는 긴, 생활보다는 짧은

막상 허가가 떨어지니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역시 어디로 갈 것인지가 문제였다. 1박 2일이나 2박 3일 휴가로 가고 싶은 곳은 그렇게 많았는데, 일주일을 머무른다고 생각하니 자꾸 조건이 따라붙었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볼거리가 있어야 하고, 한적하지만 너무 외진 곳은 안 되고, 도심은 아니지만 인터넷은 빨라야 했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사람처럼 앞뒤가안 맞는 조건을 충족해줄 곳을 찾아 전국 지도를 손으로 훑어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이 경남 하동군. 인연이될 운명이었는지, 마침 하동 지역에서 생활형 여행으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단체를 발견했다. 사회적기업인 ‘주민공정여행 놀루와’. 하동에 기반을둔 여행사로, 지역민과 여행자 사이의 매개체를 지향하는 곳이다. 하동의 작은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며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놀루와 양지영 PD에게서 “악양읍에 기획의 취지와 딱들어맞는 마을이 있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곧장 짐을 꾸려 기차를 탔다.


악양읍은 하동역에서도 2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하동역 앞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은 캐리어를 번쩍 차에 실어주시고는 하동군에 대한 알찬 브리핑을 시작하셨다. <미스터트롯>의 정동원, <미스트롯2>의 김다현이 이곳 출신이라는 것,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쓴 작사가 정두수도 하동 출신인 걸 보면 재주 있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것. 지금 지나는 도로가 봄이 되면 벚꽃과 산수유가 흐드러지고, 상춘객으로 도로가꽉 찬다는 이야기도. 왕복 2차선 도로가 기약 없이 막혀도 그 풍경이 아름다워 웃음이 난다고 했다. 쌍계사나 화개장터 같은 유명한 관광지에 가는 것도 좋지만, 악양읍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더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조언까지 잊지 않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양지영 PD를 따라 매계마을로 향했다. 지리산 자락에 폭안겨 있는 이 작은 동네에는 잘 정비되어 있는 네 곳의 민박집이 있다. 부녀회장님이 주관하는 산나물 파스타 쿠킹클래스, 손 자수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도 있고, 여유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도 있다. 초가집 독채를 쓸 수있는 횡천댁에 머무르기로 하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뜨끈한 구들장도, 주인 댁어머니가 정성껏 가꾼 작은 화단도 마음에쏙 들었다. 미처 체크하지 못한 한 가지만 빼면. 바로 인터넷.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라면 당연히 랜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서울 촌놈의 잘못이었다. 이참에 디지털 디톡스라도 하면 좋겠지만, 이번 여정의 주제가 원격 ‘근무’인 만큼 인터넷은 필수였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숙소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 이때 구원자처럼 등장한 곳이 하동 와이너리 카페다.


이곳은 와인과 차를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조리시설까지 갖춘 숙소는 물론 초고속 인터넷선까지 깔려 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와인 문화를 즐기기 위해 워크숍을 떠나오는 이들을 맞기 위해서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방과 연결된 테라스에 나서면 지리산과 너른 들판이 한눈에 펼쳐지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짐을 다시 꾸려 와이너리 카페로 향하는 길, 양지영 PD는 악양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악양은 “외지인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다른 지역에 귀촌했기에 악양의 환대가 얼마나 특별한지 안다고 했다. “주민분들의 말투부터가 다정해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만 억양이 세지 않고 느긋하거든요. 아마 강 하나를 사이에 둔전라도 구례 지역의 영향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르신들도 마음이 열려 있다고 할까요. 저희 일의 특성상 주민들과 소통할 일이 많은데, 젊은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주고 기특하게 여겨주시죠.”

하동에서 직장인으로 살기

마침내 여행자이면서도 생활인으로서의 일주일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틀 만에 깨달았다. 여행과 일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욕심이었다는 것을. 떠나오기 전 상상한 장면은 서원의 선비가 책을 읽듯 여유롭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평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몸이 멀어졌다고 처리해야 하는 일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걸 왜 생각 못했을까.


덕분에 서울에 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마시며 메신저로 출근 인사를 건네고 업무를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소통도 그대로 이어졌다. 배우 정상훈 씨를 비롯해 인터뷰 두 건도 하동에서 진행했다. 원래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지만,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며 서로의 안전을 위해 전화 인터뷰로 전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와이파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전화는 가끔 통화 품질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매주 열리는 편집팀의 메신저 회의에도 참석했다. 온라인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진짜 몸은 어디 있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노트북PC 한 대만 들고전 세계를 누빈다는 ‘디지털 노마드’는 과학상상화에 등장하는 존재인 줄만 알았는데. 코로나19는 이렇게 우리를 갑자기 미래로 데려다놓았다.


사흘째 되던 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신년호에 30쪽 분량의 새로운 기사가 실리기로 결정된 것. 일정까지 빠듯해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다른 업무는 다제쳐두고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이틀 동안은 미리 사온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업무를 처리했다. 배달 음식은커녕, 가장 가까운 식당도 차를 타고 10분은 나가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장님은 하동까지 내려와 방에서 꼼짝 않는 내가 궁금하셨는지 “방에서 뭘 먹으면서 있기는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정신 없이 바쁜 이틀을 보내는 동안 힘이 되어준 것은 바깥 풍경이었다.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창문 하나만 열면 당장이라도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그래서일까,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깊어지던 고립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산책도 한몫을 했다. 와이너리 10분 거리에는 악양천이 있다.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이곳 산책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보통은 점심을 먹은 뒤 남은 여유시간에, 일찍 눈을 뜬 날은 출근 전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길가에는 억새와 들풀이 늘어서 있고, 저 멀리로는 평사리 들판과저 멀리 너울거리는 산맥이 펼쳐졌다. 졸졸 흐르는 천에 백로와 청둥오리, 이름 모를 철새들이 한가로이 떠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평화로웠다. 걸을 때마다 “하동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기보다 조심스러운 시기, 사방 몇 km 사이에 누구도 없다는 것 또한 마음을 편하게 했다. 둥둥 떠 있는 풍경을 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하동에서 만난 사람들

급한 원고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날,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정성모 사장님과 점심을 먹었다. 안 그래도 대봉감으로 와인을 만들게 된 사연이 궁금하던 차였다. 시작은 대기업에서 재직하던 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주재원 발령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인 나파밸리가 지척인 곳.


“동료들을 따라 와이너리에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전투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술을 음미하며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을 보고, 한국에도 이런 문화를 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향인 하동이 제격이었죠.”


처음부터 직접 와인을 제조할 계획은 아니었다. 그러나 와이너리를 둘러싸고 있는 감나무 밭이 마음을 바꿔놓았다. 하동의 특산품인 대봉감의 부가가치를 올릴 방법을 고민하던 중 떠오른 묘안이 감와인이었다. 사실 달콤한 대봉감은 산미가 중요한 와인에 잘 어울리는 과일은 아니다. 그러나 몇 년간 연구를 거친 끝에 ‘가므로’ 와인을 탄생시켰다. 마늘과 고추 등 양념이 강한 한식으로 텁텁해진 입을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상큼한 맛이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읍내로 향했다. 하동에 도착한 날, 요가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방문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곳이었다. 송창섭 원장님은 6개월 전이곳에 ‘곰요가’를 열었다. 하동에 사는 지인을 찾아왔다가 평사리 들판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마을에 정착한 20대 청년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수강생이 수련하고 있다.

요가라는 이름을 이곳에서 처음 접하는 초보자부터, 꾸준히 공부해 요가원을 차릴 계획을 가진 예비 지도자까지 실력도 다양하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송 원장이 우려주는 보이차를 마시며 옹기종기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수강 한 달째가 된어르신이 “삭신이 쑤신다”고 이야기하는 신입 회원에게는 “일주일만 지나면 시원하다”고 조언해주기도 한단다.


귀촌하는 외지인을 향한 텃세는 그에게 남의 일이었다. 오히려 동네 어르신들은 학원이 잘되겠느냐며 당신 아들 일처럼 걱정해 주었다고. 악양읍 이웃 동네인 화개읍에서 ‘화개장터 막걸리’를 만드는 사장님의 농담이 생각났다. “악양은 귀농·귀촌의 압구정동이지”라던. 요즘 악양에 정착하는 젊은이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새 이웃을 반갑게 맞아주는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느덧 5일이 지나고, 하동에서의 근무가 끝이 났다. 인생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가 사는 곳을 바꾸는 것이라던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커피 대신 차를 내려 마시기 시작했고, 퇴근 후에도 유튜브를 보는 대신 종이책을 손에 들었다. 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휴대폰 대신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해가 짧아진 계절이라, 오후 6시 정각에 ‘칼퇴’를 했는데도 하늘은 이미 컴컴했다. 저 멀리 보이는 다른 마을의 불빛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같았다. 서울에서 한파 소식이 전해졌지만, 하동의 바람은 산들바람처럼 포근했다.


김은아 사진 임익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