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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HERE WE GO #오감여정, 부여 나들이

bySRT매거진

HERE WE GO #4


비단길 걷어내며 찰랑이는 부여의 봄

꿀벌처럼 가벼운 몸짓, 매화처럼 상큼한 걸음. 부여에 봄이 왔다.

발끝을 한 뼘 들어 올리면 백마강, 비단결 같은 수면을 걷어내며 황포돛배가 흐른다.

봄바람이 자꾸 간지럼을 태우니까 나들이를 갈밖에. 일 년을 기다린 부여의 봄이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 구드래조각공원을 산책하며 백마강 황포돛배까지

붉은 알갱이 폭폭, 봄바람에 팝콘처럼 터지면 보드라운 빛깔의 매화렷다. 꽃 피었단 소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는 걸까? 꿀벌이 부지런히 찾아와 엉덩이 급하게도 이 꽃, 저 꽃 옮겨다닌다. 나도 맡고 싶다. 꽃냄새. 하지만 나보다 더 이 봄을 기다린 것은 꿀벌일 거야.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본다.

꿀벌처럼 가벼운 몸짓, 매화처럼 상큼한 걸음. 부여에 봄이 왔다. 발끝을 한 뼘 들어 올리면 백마강, 비단결 같은 수면을 걷어내며 황포돛배가 흐른다. 봄은 간지러운 계절임이 틀림없다. 가만히 있으면 봄바람이 자꾸 가슴을 태우니까 집과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 년을 두고 후회할 테니.

부여 시내에는 부여군청을 중심으로 손꼽히는 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낙화암이 자리한 부소산성, 고란사, 정림사지, 궁남지, 능산리사지와 나성이 자리한 백제왕릉원과 백제금동대향로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는 국립부여박물관 등등. 백제는 성왕 16년(538)에 웅진(현 공주)에서 사비성(현 부여)으로 천도하여 660년 멸망에 이르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로 부여가 가진 보물 이야기만 밤을 새워 해도 모자라겠지만, 부여의 이야기는 백제에만 머물진 않는다. 지금 아니면 또 만날 수 없는 부여로의 봄나들이. 짧게는 하루, 넉넉히 이틀. 부여의 참된 매력을 온몸으로 추억하는 길을 떠난다. 연둣빛 새싹들이 구드래조각공원 잔디밭에 작은 머리를 들이민다. 진흙처럼 짙은 색의 수피로 둘러싸인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보라색 풀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부여 시내에 자리한 구드래조각공원은 꼭 가봐야 할 손꼽히는 관광지와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공원’ 자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그런 곳처럼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그리운 것은 대개 평범한 유년시절에 머물고, 꼭 찾고자 했던 파랑새는 집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구드래조각공원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타인과 딱히 부딪칠 일이 없을 정도로 드넓은 공원은 오랜 시간 부여 시민들과 함께한 자연공원으로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후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예술품을 설치하며 오늘날 조각공원으로 단장했는데, 평지부터 오르막까지 작품들이 즐비하다. 이렇게 큰 작품을 공원에 옮기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힘이 보태졌을까 싶은 것도 있고, 백제를 상징하는 오브제들은 외형만 보고 그 이름을 알아맞히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원에서 구드래선착장으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에는 팔각원당형 부도, 부여팔경 승람비부터 세월에 마모된 호석, 양석이 오가는 이들을 지키고 있다. 그 너머는 바로 백마강(금강)이다.

:: 물새 우는 백마강에 떨어진 꽃과 선비의 충절

빠듯한 하루 일정에도 빼놓으면 섭한 것이 바로 황포돛배 타고 부여 유람! 구드래조각공원에서 걸어서 채 5분도 못 미치는 거리에 구드래선착장이 자리하니 벌써 여행 코스 앞머리가 완성됐다. (참고로 부여의 소문난 맛인 막국수집도 바로 인근) 고풍스러운 기와지붕을 단 황포돛배에 몸을 싣는다. 어디 하나 어긋나는 법 없는 몸놀림으로 선장은 뱃머리를 돌리고, 선원은 선착장에 묶어둔 밧줄을 푼다. 직접 노를 젓는 것도 아닌데 배 타는 일이 왜 이리 실감나는 걸까.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은 BGM이 황포돛배 타는 기분을 적신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 1940년 이인권 노래 ‘꿈꾸는 백마강’ 중

일엽편주가 무엇인고. ‘물 위를 떠가는 작은 나뭇잎 같은 조각배’를 이른다. 황포돛배가 고란사선착장, 부소산성에 당도할 때쯤이면 물 위를 떠가는 작은 나뭇잎 같은 조각배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여인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부소산성(사비성)은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로 자리했다. 국운이 쇠퇴하자 당대의 후궁과 궁녀들은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낙화암이다. 백마강의 황포돛배가 잠시 낙화암에 머문다. 절벽에 새겨진 붉은 글씨 ‘落花巖(낙화암)’은 작고 소중한 것을 잊지 말라는 상징 같다.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이편에는 부소산, 저편에는 부산이 자리한다.

부산 절벽 위에 정자처럼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띄어 선장님께 물어보니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과 관련한 유물, ‘부산각서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을 지키기 위한 전각이란다. 갑자기 보물찾기 하듯 건너편의 부산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다행히도 산기슭에 자리하지만 부산 자체가 높은 산이 아니라서 쉽게 갈 수 있단다. 진변리 마을에 차를 세워두고 지도 앱에 부산각서석을 검색해본다. 바로 여기 어디인 것 같은데 초행자는 마을의 집들에 가려진 입구를 좀처럼 찾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도 부산서원을 먼저 만났다. 높다란 돌계단 위에 자리한 서원은 양옆에 큰 나무가 호위하듯 지키고 섰다. 부산서원은 인조·효종 간에 학계와 정계에서 크게 활약한 김집과 이경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이다.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는 임금에게도 두려움 없이 직언을 올린 강직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원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부산각서석 또한 선생과 관련이 깊은 곳이었다.

효종 8년(1657) 이경여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에둘러 그들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전하고, 이경여는 청나라의 간섭으로 부여에 낙향을 하게 된다. 현재 부산 절벽의 바위에 새긴 글자는 우암 송시열이 당시의 내용을 후손에게 전한 것으로, 이경여의 손자 이명이 숙종 26년(1700) 바위에 그 여덟 글자를 새기고 그 위에 건물(대재각)을 세워 그 뜻이 오늘에까지 이른다.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 지극히 통탄스러운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 강건한 필체의 여덟 글자에는 한탄스럽고 울분 섞인 충신의 심정이 담겨 있다. 나의 안위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노 선비의 마음이 어버이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정치인이 우리나라에 많다면 백제의 스러짐과 조선의 굴욕이 어두운 역사만은 아닐 거라고, 백마강 변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 부여를 오감으로 추억해볼까?

백제의 왕도, 부여를 ‘알집’으로 압축하면 ‘백제문화단지’. 그 용량(규모)이 어마어마함을 비유해봤다. 앞선 부여 시내의 명소들을 꼼꼼히 둘러보는 것으로도 이미 하루를 다 쓰고 하루가 저물어 있을 테니 백제문화단지까지 담고자 한다면 여행 계획을 잘 짜야 한다. 다행히 부소산성에서 차로 5분 거리. 부여 시내와 가깝기도 하고 올 4월부터는 야간 개장도 시작하니 코스 구성 시 참고하자. 백제문화단지는 크게 사비궁, 생활문화마을, 백제역사문화관, 능사, 위례성, 고분공원의 문화단지로 구성된다. 그 안에는 실감나는 볼거리와 흥미로운 체험도 다양하다. 백제문화단지를 제대로, 재미있게 관람하고 싶다면 ‘전기어차’ 추천! 한 사람은 운전하고 뒷좌석은 어른 두 사람이 앉아도 편안해서 연인, 가족들에게 적격일 듯하다.

백제문화단지는 위례성, 사비궁 등 실제로 그 터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궁, 사찰, 마을을 정교하게 재현해 놓았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오랜 시간 보존되어온 유물 같아서 전각의 기둥이며 주춧돌도 괜히 쓰다듬어 보게 된다. 화려한 자태의 능사(백제왕실 사찰) 역시 재현된 곳으로 그 위에는 고분공원이 자리한다. 전기어차는 이곳에서 탑승 금지. 안내 문구를 보니 백제문화단지에서 유일하게 재현된 공간이 아닌 사비시대 귀족 무덤 7기를 모두 이전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백제문화단지 화계조성부와 부여군 은산면 가중리에서 출토된 석실분 7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형태는 흡사하다.

백제 건국 초기 한성기 도성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위례성은 논픽션 드라마. 장대하게 펼쳐질 백제 서사의 첫 장면. 백제인의 세련된 의복을 제작했던 움집부터 백제를 세운 온조왕의 위례궁을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근거로 재현해놓았다.

백제 왕도 그 자체를 압축해놓은 거대한 공간. 백제문화단지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남녀노소 제한 없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와 새로운 지식을 흥미롭게 배우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사비궁에서는 백제의 의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의 한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나는 우리 선조들을 안 닮은 것인가? 쏘는 것마다 바닥으로 떨어져 도전의식이 타올랐던 국궁 체험도 흥미롭다. 주요 시설마다 백제 역사와 관련한 미션도 놓치지 말 것. 문제를 다 풀면 백제역사문화관에서 금은보화 선물도 받을 수 있다.

부여의 봄, 백제의 봄을 오감으로 기억한 시간. 궁남지에 연꽃 물드는 계절이 찾아오면 다시 꼭 가야지. 위례성 염소 가족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운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