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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SCENE#8 영주

bySRT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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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곳마다 여운이 깊어 ‘영주 씬 8경’ 

소백산 정기 머금고 자란 인삼과 사과의 향취. 수백 년, 아니 그보다 오래 영주 시민들의 뿌리가 되고 살갗에  자리했으니 인심은 넉넉하고, 머무는 곳마다 여운이 깊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부석사

오늘날 시인묵객이 다녀가며 예찬한 곳.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에 선정된 신경숙의  <부석사>까지, 책갈피를 넘기며 참을 수 없는 흥미로움으로 부석사를 찾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터.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으로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다. 일주문부터 삼층석탑, 안양루 등 그저 보아 넘길 것이 없지만 그중 백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 전각 바로 옆에는 산사의 이름이자 영험함을 상징하는 바위, 부석(땅에서 뜬 돌)이 놓여 있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054- 633-3464 

소수서원

1542년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이 고려말 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은 1549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 시절 나라에 건의해 ‘소수서원’ 사액을 받았다. ‘사액’은 임금이 서원과 사당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하사함을 뜻한다. 이는 소수서원이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한국 최초의 사립대)으로 거듭났음을 가리킨다. 무려 4000여 명의 유생을 배출한 소수서원, 조선시대의 서원은 소수서원을 중심으로 성리학을 탐구하고, 선비들이 인격을 갈고닦는 심신 수양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054-639-7694

무섬마을

한때 무섬마을은 ‘물섬, 물섬’ 하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붙인 ‘수도리’라는 한자 지명도 물 수, 섬 도에서 가져왔다. 부르다 보니 입에 좀 더 편하고 듣기 좋은 소리, 물섬은 그렇게 무섬이 되었다. 내성천과 서천이 감싸안아 이름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마을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조선 중기,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으로 현재도 50여 가구가 생활하며 해우당고택·만죽재고택 등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차가운 강물 위에 실타래처럼 펼쳐진 외나무길을 건너 무섬마을을 들어가고 나온다. 할머니의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마 타고 한 번, 죽어 상여 타고 한 번 지나갈 수 있었다는 그 다리를.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41

054-636-4700

대한광복단기념관

“비밀결사조직 대한광복단은 1913년 경북 영주 풍기에서 창설되었다.” 커다란 돌비석에 한 글자, 한 글자 아로새긴 대한광복단 약사는 이렇게 시작하여 “1945년 진정한 자주독립을 위해 대한광복단을 재건했으나 조국의 분열과 전쟁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통일조국을 이루는 과제는 우리에게 남겨졌다”라고 끝을 맺는다. 1915년 대한광복회로 확대 개편한 조직은 수많은 애국지사가 가입해 일본제국주의와 정면승부를 벌였다. 무엇보다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는데, 당시 그 어느 독립단체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던 최선의 독립투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5년 건립한 대한광복단기념공원에는 기념관·추모탑·기념비 등이 어우러져 있다. 맑은 하 늘 아래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생각해본다.


무료

경북 영주시 풍기읍 소백로 2011-12

054- 635-3606

금선정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엮여 있으니 말 한마디도 삼가던 선비의 고장. 자연 속에서 산수를 즐기고, 학문에 정진한 선비들의 시간은 영주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주를 대표하는 명소 중에서도 금선정은 비교적 덜 알려진 히든 스폿. 소백산 비로봉 아래 ‘금계’라는 이름을 지닌 천이 흐른다. 콸콸 물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려는 듯,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이무기의 몸짓인 듯 금계천 노송의 자태가 운치를 더한다. 영조 33년(1757) 풍기군수 송징계는 이곳 암벽에 ‘금선대’ 석 자를 새겼다. 정조 5년(1781) 풍기군수 이한일이 그 위에 금선정을 세웠으니 이후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풍월객의 걸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131 

영주호

지난 2016년 12월 영주댐이 준공되며 일대는 거대한 생태관광지로 변모했다. 광활하고 푸른 영주호를 따라 자전거도로를 질주하는 기쁨을 누린다. 출렁출렁 흔들리는 다리를 지나 영주호 깊은 속살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영주호를 관통하는 용천루 출렁다리(용미교·용두교)를 건너면 고즈넉한 산책로가 등장하고, 곧이어 평은역사가 나타난다. 영주댐 건설로 역사 터는 수몰됐고, 역사는 사전에 해체 후 복원했다. 옛 역사를 보물찾기 하듯 만나니 이 또한 인상적이다. 영주댐 하류에는 10만㎡ 규모의 영주호오토캠핑장이 자리해 하룻밤 추억을 쌓기 그만이다. 절벽에 떨어지는 용혈폭포 물소리가 반겨주는 곳, 한겨울에는 그 모습 그대로 언 폭포가 장관이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1401

부용대

관사골벽화마을을 오르면 높다란 언덕에 부용대란 이름의 정자가 자리한다. 지난 2013년 공원을 조성하며 부용계 비석을 모신 보호각과, 부용계를 상징하는 정자를 새롭게 세웠다. 본래의 부용대 또한 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했으나 이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조선 인조 14년(1636), 영주 고을에 사는 과거급제 인사 55인이 모임을 만들어 나라의 안위를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고심한 것이 부용계의 시작이다. 부용계가 모인 회합의 장소가 바로 부용대로, 오늘날 부용대는 후손들의 사랑방이자 영주 시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기도 하다. 영주의 주산인 철탄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서천이 흘러 낙동강을 만나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경북 영주시 두서길87번길 43 

영주인삼박물관

입춘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소백산 봉우리에 하얀 눈이 채 녹지 않았다. 인삼이 제대로 성장하는 데 서늘한 기온이 오래 지속되어야 하니 영주 풍기 지역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셈이다.  영주=인삼의 공식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은 주세붕 선생이다. 그가 풍기군수로 부임 후 산삼종자를 풍기 금계동 임실 마을에 시험 재배한 것이 풍기(영주)인삼의 시초다. <신농본초경>에 “인삼은 오장을 보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니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영주인삼박물관을 비롯해 대형 인삼시장, 가공공장, 판매장을 만날 수 있는 풍기에서 수명 연장에 대한 비밀을 풀어본다.


무료

경북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1378

054-639-7686

루팡커피하우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어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어요.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군요. 문화재청 산하 재단에서 근무하며 예술·지역·관광에 조예를 넓혀온 이예린 사장. 지난해 11월, 고향 영주에 카페를 열었다. 내부에는 젊은 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했는데 때마다 주제를 달리하며 문화 공간으로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가 속이 깊고, 웃음이 많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덩달아 따뜻해졌다.  


경북 영주시 시청로 5

054- 631-9876

@wallu_coffeehouse

선비골오백빵집

편의점에서도 보지 못한 오백 원짜리 빵이 있다니! “그래서 오백빵집인데, 요새 원재료값이 올라서 가격을 올린 것도  있어요.” 눈이 똥그래져서 제과점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사장님은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500원짜리 크림빵과 소보로빵, 1000원짜리 씨앗호떡빵, 1500원짜리 국내산 팥빵, 영주사과와 인삼 넣은 시그니처 빵까지!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까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면 이제 손님이 사장님에게 미안해할 차례다.


경북 영주시 영주로 213

054-637-3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