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전북 익산

[여행]by SRT매거진

지금 시대, 익산

불꽃처럼 타오른 한 사람의 꿈이자 전설 같은 사랑,

용맹한 기상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무왕의 시대를 맞으러. 사람이 사람에게 줄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고결한 정신을 배우러, 익산으로.

더운 여름을 불평도 없이 산과 들은 푸른 기운을 뻗치고, 농부의 구슬땀 밴 논밭에는 알곡이 껍질을 터뜨릴 듯 부풀어오른다. 그 가운데 자연이 요동치고 사람의 생이 이뤄지는 모든 것을 오래 지켜본 ‘익산왕궁리5층석탑’이 서있다. 완만한 구릉에는 건물 하나 없이 석탑만이 남았는데 무슨 말을 전하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무왕의 꿈이 서려 있는가 왕궁리 유적

백제, 신라, 고구려가 치열한 영토 다툼을 벌이 던 시대가 있었으니 바야흐로 삼국시대. 그중 백 제의 절정과 결말을 향한 시간이 전북 익산에 남 아 있다. 불교를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아 름다운 문화유산을 꽃피운 백제는 삼국 중 가 장 먼저 전성기를 누렸다. 제일 높은 곳에서 위풍당당히 맛본 영화로운 시간이 후대에도 계속 되길 바라며 백제의 왕들은 위례성, 웅진성, 사 비성으로 세 번의 천도를 감행한다. 


지난 2015 년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은 백제 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현 부여)에 남겨진 문화유산 등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늘날 익산에 남겨 진 백제의 역사는 불꽃처럼 타오른 한 사람의 꿈 이자 전설 같은 사랑, 용맹한 기상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제30대 무왕의 시대를 비춘다. 


익산 왕궁면, 완만한 구릉에는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고, 일대에 유연한 모양으로 흐르는 곡수 로가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이 왕 궁리 유적, 최근까지 발굴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백제시대의 왕궁이자 사찰이었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 무왕은 용화산 남쪽 구릉지에 왕궁을 건설한다. 백제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와도 멀지 않은 거리다.

어쩌면 왕은 익산으로 다시 한 번 천도를 감행하려 했던 것일까? 백제를 넘어 삼국시대 왕궁 의 진수가 이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왕 궁터에서 는 왕이 정사를 돌보고 의식을 행한 정전 건물 지부터 정원, 후원, 공방, 부엌, 화장실 등이 확 인됐고, 백제인의 지혜와 예술적 지표를 만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 유적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은 백제왕궁박물관에서 더욱 크고 깊어진다.

2008년 개관한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지난 4월 백제왕궁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 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가상체험관 등을 비롯해 남녀노소의 흥미를 자극하는 콘 텐츠가 강화되어 누구나 쉽고 흥미롭게 백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잘 가꿔진 구릉에 불과할 수 있는 무왕 대의 흔적이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홀로그램 등으로 생생히 되살아난다.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신라를 여러 차례 침공한 무왕은 역대 왕 중에서도 용맹스러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554 년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한 후 50여 년간 위덕왕, 혜왕, 법왕이 정치·경제적으로 위태로 운 백제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무왕(재위 600~641) 대에 이르러 백제는 위상을 바로 세웠으니 큰 날개를 펼친 곳이 익산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왕궁리 유적의 어제를 비추는 영상과 음성을 새겨듣는다. 

“왕궁리 유적은 경사진 구릉에 건물을 짓기 위해 동서·남북 방향으로 높이차를 두어 2:1:2:1의 비율로 축대를 쌓았어요. 왕궁을 건립하면서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공간을 분할하고 건물을 배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여러분은 백제시대 화장실을 본 적이 있나요? 왕궁 북서쪽에는 왕궁에서 생활하던 이들이 사 용한 공동화장실이 발견되었어요. 구덩이 안의 오수가 일정한 높이로 차게 되면 수로를 통과해 궁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위생적인 구조랍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화장실, 배설물에 관련한 이야기가 진중할 것으로만 생각되는 왕궁리 유적에 자리해 하나의 전시 콘텐츠로 인기 다. 궁에 물을 공급하는 대형 수로, 중국 남북조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청자 연꽃무늬 단지 조각부터 유리·금 제품을 생산한 공방, 왕궁의 부엌과 지혜를 엿보는 공동화장실까지 왕 궁리 유적에 남은 자취를 오늘의 삶에 비추어본다. 


무왕 대에 이르러 비로소 백제 중흥이 이뤄 진 것은 그들이 가진 지혜를 이웃 나라에 전하고,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아니었을까. 불교를 중심으로 백성의 삶에도 믿음과 예술적 담백함이 스몄으니 한여름 알곡처럼 그 대가 무르익었으리.

“ 메리는 순수한 기쁨에 넘쳐 두 손을 꼭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빛 넘치는 하늘이 너무도 파란데다가 거기에 분홍빛이며, 진줏빛이며, 하얀빛이 감돌고 있어서, 메리는 자기도 휘파람을 불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지빠귀와 붉은가슴울새와 종달새들이 왜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지 알 수 있었다. 메리는 숲 가장자리를 지나고 산책로를 내달려 비밀의 뜰로 향했다.”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 중

자연이 그러하듯, 사랑하라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몰랐던 어린 소녀는 우연히 비밀의 화 원을 발견한다. 모든 것이 죽은 것만 같았던 화원은 메리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소녀는 자세 를 한껏 낮춰 땅속에 움트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비와 바람이 부는 이유를 온몸으로 알아 간다. 사람은 자연에 속해 있으므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자연 속에서 바라보면 나라 는 사람은 참 작은 존재고, 내게 주어진 벅찬 시련도 덕분에 작아진다. 24시간을 쪼개 쓰는 바쁜 사람일수록 일부러 자연이 주는 기쁨을 찾아갈 이유다.

익산에는 오랜 세월 ‘비밀의 정원’으로 불리던 아름다운 곳이 자리한다. 인간에 대한 신의 사 랑, 자기를 희생하며 이루는 거룩한 사랑, 무조 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가 이 정원의 이 름. 1970년 고 서정수(알레시오) 신부는 빈곤한 어르신이 허무하게 생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도 록 노인복지시설 아가페 정양원을 설립했다. 일 대에 조성한 수목원은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 한 공간으로 50년 넘게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지난해 일반인에게 개방된 아가페 정원은 어린 메리가 느꼈을 벅찬 감동 그대로 다 가왔다. 호령 없이도 사람을 압도하고, 칭찬 없이도 마음이 둥둥 설레는 아가페 정원은 100만㎡ 규모의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구조가 특징 인 영국식 포멀 가든이다. 만개한 백일홍에 취했다가 고개를 들면 40m 높이에 달하는 메타세쿼이아 산책로가 미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벽처럼 펼쳐진다.

전북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아가페 정원은 상사화, 벚꽃, 영산홍, 향나무, 밤나무, 당단 풍나무 등 34종의 꽃과 수목이 계절을 밝힌다. 50여 명의 노인이 생활하는 아가페 정양원은 현 재 자원봉사와 각계각층의 후원을 받아 노인복 지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사전 예약해야 정원 방문이 가능하니 참고하자. 


지난 7월에는 금마(왕궁)저수지가 앞마당처럼 펼쳐진 자리에 익산의 새로운 정원이 문을 열었다. 아버지와 딸이 마음을 맞춰 준비기간만 5년 이 넘게 걸린 왕궁 포레스트다. 기자는 정식 오픈 전에 방문했는데도 알뜰한 손길과 구슬땀이 구석구석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4300㎡ 에 달하는 아열대식물원은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가져온 상록활엽수와 야자나무 등 100여 종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산의 나무는 햇살, 바람, 비를 맞으며 쑥쑥 자라겠지만 정원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인공적인 공간이기에 깊은 정 성만큼이나 뚜렷한 감각을 요한다. 


비쭈기나무, 호랑가시나무, 비로야자, 올리브나무, 감탕나무 등 100여 종에 달하는 식물은 연못, 돌하르방, 폭포수를 오가며 제 모습을 뽐내고, 백년에 한 번 꽃을 핀다는 소철꽃부터 후피향나무, 구골목서 등 각각의 식물에 이름, 특징을 적어놓아 더욱 애정을 갖고 보게 한다. 왕궁 포레스트 는 아열대식물원, 별빛카라반, 숲놀이터, 피크닉모드, 카페 등 쉼 속에 놀이를, 놀이 속에 여유를 채우는 힐링 복합문화공간이다. 코앞에 금마저수지, 익산이 자랑하는 익산보석박물관 등도 자리해 하루 나들이로 그만이다.

미륵산골에서의 하루

다목적센터에는 욕실, 주방을 갖춘 숙소시설도 있어 1박 2일 가족 단위로 머물러도 손색이 없다. 미륵산골에서 차로 4분 거리에는 미륵사지가 자리하고, 한여름이면 화사한 연꽃으로 황홀한 연동제(일명 연꽃방죽)가 가깝다. 너른 저수지에 피어난 연꽃과 그 위에 앉은 잠자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익산에서의 시간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참여 예약 : 익산농촌종합지원센터 아이나드리 www.inadri.kr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2022.08.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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