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나요?’ 김창옥 “몰랐던 자신의 민낯과 편히 마주했으면”

[컬처]by 스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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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나요?` 김창옥(왼쪽)이 신승환 감독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스틸컷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삶에 대한 관점을 관전하고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이 영화가 ‘고래의 숨’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이겠죠.”

대한민국 대표 소통전문가 김창옥(47)이 청각 장애인 아버지와의 화해와 치유의 여정에서 ‘진짜 김창옥’을 찾아가는 인생로드무비 ‘들리나요?(감독 김봉한, 신승환)’로 관객들과 만난다.


주인공 김창옥은 지난 19년간 7000회가 넘게 변화와 소통을 주제로 강연하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울림을 전해왔다. 최근작인 tvN ‘김창옥 쇼’를 비롯해 tvN ‘어쩌다 어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에 출연하며 사랑받았다.


늘 타인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쏟아왔지만 자신에게도 아버지의 존재가 평생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있던 김창옥은 ‘들리나요?’를 통해 아버지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제주도에서 갖는 자신만의 시간 등을 담담하고 때론 유쾌하게 보여준다. 다음은 김창옥과의 일문일답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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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옥의 인생 다큐 영화 `들리나요?` 포스터.

Q. 개봉 소감은?


A. 강의는 몇 분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가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지 않나. 너무 떨린다. 작은 다큐 영화라 흥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진 않지만, 관객 분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고 긴장된다.


Q. 강사로서 좋은 면, 화려한 면만 알려진 것과 달리 ‘인간 김창옥’의 솔직한 고백, 주변 사람들의 더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A. 안 보여줘서 전혀 몰랐다. 나 역시 영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일단 너무 부끄럽더라. 다 들켜버린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가 고작 저 정도 사람인가?’하는 억울함도 들었다.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하는 서러움이었다.


Q. 그러다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A. 점점 수긍하게 되는 거다. 어쩌면 내가 알고는 있었지만 마주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거울을 안 보고 열심히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뭐가 묻은 지도 모른 채 냅다 달리기만 한 거다. 70~80%는 어느 정도 그들의 말에 인정이 되니 부끄러움을 느낀 것 같다.


Q. (공식석상에서) 부끄러우면서도 통쾌한 기분도 들었다고 했는데


A. 맞다. 커밍아웃 하는 느낌이랄까. 타인이 아닌 나에게 느끼는 통쾌함이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강사로서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뭐 이런 것들보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나의 민낯에 화끈거렸다. 그래서 시원했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으니까.


Q. 민낯, 자신을 찾는 여정의 시작이 바로 아버지였는데


A. 평생의 숙제였다. 아버지에 대한 오래된 숙제가 있었다. 무뚝뚝한데다 귀가 안 들리고 어릴 땐 너무나 무서웠던 아버지와 사이가 친밀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귀 수술을 해드려야 겠다는 숙제가 있었다.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아버지가 웃더라.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고 아버지가 소리를 듣고 계속 감탄하는데 아이를 보는 감정이 들었고, 평생의 숙제를 한 것 같았다.


Q. 아버지에 대한 어떤 의무감, 책임감을 넘어 큰 의미의 ‘화해’에 다가간 건가?


A. 화해는 못 했다.(웃음) 화해를 하려면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도 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어떤 것도 인정을 안 한다. 힘들게 보낸 지난 시간들에 대해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본인의 힘든 상황만 말씀하신다.


다만 화해와 용서는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하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이번 작업을 통해 더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남자가 50세 전후가 됐을 때(아버지가 나를 키울 때), 그 외로움에 대한 위로와 희망은 어디서 가질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선택의 폭이 넓지만 아버진 장애도 있고 시대도 다르고 환경이 훨씬 나빴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연민이 있다.


Q. 반면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매우 깊어 보였다


A. 맞다. 내 모든 재능은 엄마에게서 왔다. 우리 엄마라는 엑기스 타 사는 거다.(웃음) 엄마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애틋하고 가슴이 아프다. 활동적이고 꿈도 많고 열정적인 사람인데 조금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내가 가진 끼와 모험심 이런 게 다 엄마에게서 온 건데,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엄마의 인내와 희생 덕분에 이렇게 우리가 자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엄마의 삶은 없었으니까.


Q. 엄마에 대한 숙제는 없나


A. 엄마가 한글을 모른다. 10년 전부터 가지고 있는 숙제가 바로 글을 알려드리는 거다. 엄마가 글을 모르니 문자도 나눌 수 없고, 스마트 폰을 사드리고 싶어도 소용이 없다. (숙제만 하다 내 인생 다 가는 거 아닌가 몰라. 하하!)


누나의 말을 빌리면 엄마에게 남편은 없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자신이 낳은 자식들만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들들에게 그리운 사랑을 갖고 있을 텐데도 집착하지 않는다. 내 아들이 불행해질까봐. 하고 싶은대로 뭘 하며 살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계단에 앉아 멋쩍게 웃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엄마를 위한 영화구나’ 싶었고, 나중에 내가 이 장면을 보며 많이 울겠구나 생각했다.


Q 오랜 숙제를 풀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A. 가족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모두? 오랜 기간 강연자, 교수 뭐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정작 나를 위한 것에 소홀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닌 나에게 주고 싶은 무엇, 미션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나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낮은 자존감이 높아졌다든가,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졌다거나, 인생을 사는데 여러 방면에서 훨씬 더 행복해졌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남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온 몸으로 닿게 하고자 개인의 삶을 바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강연의 결과는 좋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삶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절했다면 불타는 아름다움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아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행복 지수도 떨어지는 기분이다.


Q. 휴식을 취하는 것에 익숙해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떤가?


A. 그런 부분 역시 훨씬 유연해졌다. 반강제인 면도 있는데(웃음) 디스크 수술을 받고 컨디션도 급격하게 안 좋아져 일을 줄이고 있던 찰나에 코로나가 터졌다. 혼자 3개월간 제주살이를 하면서 처음엔 당황스럽고 마음이 불안하고 좀 힘들었는데 2달 정도 되니까 실뿌리를 내리는 기분이 들면서 조금씩 다스릴 수 있게 됐다. ‘역시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하구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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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옥은 인기 강사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선사했다. 강연장에 선 김창옥의 뒷모습. 사진|`들리나요?` 스틸컷

Q. 터닝 포인트가 됐다는 말로 들린다.


A. 맞다.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 지에 대한 좌표 설정이 보다 뚜렸해졌달까. 방향성을 정하는 데 큰 시간을 준 경험이 됐다. 물론 당장은 영화 관객수 이런 것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가겠지만.(웃음) 스크린에서 영화가 내려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질 것 같다. 내 삶에서 이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Q. 배우의 꿈을 꾸고 있다고?


A. 정확히 말하면 잘 배우고 싶다. 강사 역할을 너무 많이 하면서 내 자신이 없어졌다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을 때 연기를 접하게 됐는데 재미있었고 어떤 해방감을 얻었다. 처음엔 제대로 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가려고도 했는데 주변 배우 지인들이 작은 역할부터 현장에서 배우라고 추천해줘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강연을 할 때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해서 조금이라도 좋게 해드리고 싶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는데 연기는 내가 좋고 행복하고 싶다.


Q. 영화를 통해 어떤 위로를 건네고 싶은지,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A. 군대 제대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메이크업의 기본은 좋은 화장품이 아니다. 딥 클렌징이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는 그 말이 뭐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명언이더라. 삶의 이야기더라. 메이크업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보다 예쁘게 아름답게 하는 건데 그 전에 잘 지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진정한 메이크업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들리나요?'가 ''클렌징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통해 맨얼굴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스스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힘든 시기, '고래의 숨' 같은 영화가 된다면 영광이겠다.


kiki2022@mk.co.kr

2020.06.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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