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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저 장면을 애드립으로 만들었다고?’ 한국영화 속 인생 롱테이크

by테일러콘텐츠

롱테이크는 한 번에 길게 촬영하기에 배우들의 연기, 카메라의 동선 등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 한국영화 중에서 어떤 작품이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롱테이크를 선보였을까? 당장 떠오르는 유명 작품부터 새로운 시도로 각광받는 작품까지, 영화를 더욱 빛나게 했던 ‘긴 호흡’을 시도한 영화를 살펴본다.

살인의 추억 – 논두렁 장면

이미지: Sidus

[살인의 추억] 초반부에 나오는 일명 ‘논두렁 롱테이크’는 배우들의 순발력과 봉준호 감독의 집요함이 빛난다. 카메라는 박두만 형사의 시선을 쫓아 현장 보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어수선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이 장면은 놀랍게도 송강호, 변희봉 두 배우의 애드리브로 만들어졌는데, 봉준호 감독이 매 테이크마다 즉흥적으로 내뱉는 두 사람의 대사를 다듬어서 완성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때 능청스럽게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배우의 모습을 보고 다음에는 부자지간으로 나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 [괴물]에서 그 바람을 이루었다. 여담으로 송강호는 마지막 테이크가 좋았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사용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장면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악녀 – 오프닝 액션

이미지: (주)NEW

[악녀]는 한국영화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액션으로 놀라움을 선사했다. 오프닝 롱테이크부터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킬러 숙희가 조직의 아지트에 들어가 일망타진하는 8분간의 액션이 현란하게 펼쳐지는데, 1인칭 슈팅게임을 보는 듯한 총격씬을 시작으로 중간에 절묘하게 바뀌는 3인칭 육탄 액션까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확히는 원컷이 아닌 원 컨티뉴어스 숏(원컷처럼 보이도록 여러 장면을 이어 붙인 기법)으로 촬영했지만, 장면 사이사이의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악녀]는 오프닝뿐 아니라 [존 윅 3]가 오마주한 바이크 결투씬, 엔딩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롱테이크까지, 계속되는 화려한 액션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남산의 부장들 – 궁정동 안가 총격 장면

이미지: (주)쇼박스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10.26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남산의 부장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궁정동 안가 총격 장면을 3분 남짓한 롱테이크로 담았다. 우민호 감독은 이 장면만큼은 분할이 아닌 원컷으로 찍어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카메라는 다급하게 궁정 안을 휘젓는 김규평의 모습을 끝까지 따라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이병헌은 작은 행동 하나까지 섬세하게 연기해 극적인 몰입감을 끌어낸다. 절묘한 카메라 워킹과 배우의 노련한 연기가 영화를 대표할 장면을 탄생시켰다.

박하사탕 – 영호의 눈물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현대사의 굴곡진 순간과 개인의 인생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박하사탕]. 엔딩 무렵, 철교 아래에 누워 햇살을 바라보는 젊은 영호의 모습은 [박하사탕]에서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다.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설경구의 모습이 마음을 적시는데, 이는 [박하사탕]의 독특한 촬영에 기인한 것일지 모른다. 영호의 삶을 시간을 거슬러가며 보여주는 영화는 촬영도 전개에 맞춰 진행했다. 영화의 끝무렵에 등장하는 이 장면이 제일 마지막에 촬영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젊은 영호의 눈물은 진행 순서대로 연기하며 그의 삶을 지켜본 설경구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아 먹먹함을 더한다.

변호인 – 2차 공판 장면

이미지: (주)NEW

송우석 변호사가 활약을 펼치는 2차 공판씬은 [변호인]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언론 시사회 당시 많은 기자들이 질문을 건넬 정도로 작품이 가진 힘을 보여주면서, 마음만 앞섰던 1차 공판 때와 달리 철저하게 준비해 재판장을 휘어잡는 송우석 변호사의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 장면을 빛낸 송강호의 완벽한 연기가 돋보인다. 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에선 흐트러짐이 없고, 순식간에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현실감 넘치는 법정 분위기를 담은 촬영과 송강호의 묵직한 연기가 만나 흠잡을 데 없는 장면이 탄생했다.

서편제 – 길 위에서 부르는 진도아리랑

이미지: 태흥영화(주)

한국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한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길을 걷는 장면은 ‘서편제’하면 바로 떠오를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구불구불한 길은 우리네 인생 여정 같고, 구수한 판소리 가락과 인물들의 흥 넘치는 모습은 지친 삶을 위로하는 것 같다. 우리네 정서와 미학이 스크린이라는 판에서 제대로 펼쳐지는 순간이다. 얼마 전 JTBC [방구석 1열]에 임권택 감독이 출연해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고 유명한 장면이 될 줄 몰랐다고 밝혔다.

올드보이 – 장도리 액션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씬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롱테이크로 거론된다. 오대수가 자신이 갇혔던 곳을 찾아가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원래 여러 컷으로 나눠 찍어 만화 같은 액션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자, 박찬욱 감독은 고심 끝에 원컷 촬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신 원래 구상했던 화려한 액션이 아닌, 오대수의 처절하고 고독한 싸움을 담기로 했다. 덕분에 제일 고생한 건 최민식. 그동안 익혔던 액션 동선을 다시 연습해야 했고, 매번 숨이 찰 정도로 긴 촬영을 견뎌야 했다.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이 장면의 반응은 대단했다. 칸영화제 상영 당시에는 장도리 액션이 끝난 후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이후 서극, 쿠엔틴 타란티노 등 유명 감독이 어떻게 찍었는지 물어볼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킹스맨], [콩: 스컬 아일랜드], [데어데블] 등 할리우드 유명 작품에서 오마주했으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액션 시퀀스로 평가받는다.


홍선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