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알콩달콩 로맨스 ‘궁’

[컬처]by 테일러콘텐츠

글. 봄동


2000년대 ‘인소(인터넷 소설)’ 감성을 대표하는 메가 히트작 [궁]이 2020년대에 돌아올 예정이다. 지난달 [궁] 매니지먼트 담당 업체 재담미디어와 드라마 제작사 그룹에이트의 리메이크 계약 체결 소식이 보도된 이후, 많은 팬들이 우려와 기대가 고루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 유튜브에서는 김유정, 이도현, 송강, 고윤정 4명을 주연으로 가상 캐스팅한 [궁] 리메이크 가상 티저 영상이 공개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스토리의 기본 뼈대는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TV 방영 후 장장 15년이 지난 만큼, [궁]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이목이 집중된다.

이미지: MBC

MBC 미니시리즈 [궁]은 박소희 작가의 동명 만화를 각색해 2006년 1월부터 3월까지 약 2개월간 24부작으로 방영되었다. 광복 이후 왕실이 복권되고 대한민국이 현대에도 입헌군주국으로 존속한다는 설정 하에, 양가 할아버지들의 약속 때문에 하루아침에 부부가 되어버린 왕세자 이신과 평범한 고등학생 신채경의 로맨스를 다뤘다. 당시 원작이 참신한 설정과 수려한 그림체로 큰 인기를 끌었던 탓에 제작 초기에만 해도 못 미덥다는 반응이 많았으나, 이후 드라마의 성공과 더불어 소설, 뮤지컬, 게임, 각종 팬시상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재생산되며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궁] 리메이크 발표에 앞서 원작 만화 역시 올컬러 웹툰으로 전면 수정 후 카카오페이지에서 재연재를 시작해 다시 한번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신의 한 수가 된 파격 캐스팅

[궁]의 주역 4인방 주지훈, 윤은혜, 김정훈, 송지효는 당시 정극 연기 경험이 거의 전무한 ‘생’ 신인들이었기에 캐스팅 직후부터 엄청난 관심과 의혹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발랄한 채경 역을 맡은 윤은혜는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막내였던 10대 시절부터 혹독한 관리를 받았음에도, 가냘픈 캐릭터인 채경과 외모가 닮지 않았다며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예상보다 크게 흥행한 후로는 어떻게 됐는가? 윤은혜는 [궁], [포도밭 그 사나이], [커피프린스 1호점]까지 3연속 홈런을 치며 로코퀸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팬들도 ‘윤은혜 아닌 신채경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지금까지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비록 네 배우 모두 다소 어설픈 연기력 때문에 방영 내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했지만, [궁]이란 작품이 이들의 필모그래피 첫 페이지에 큰 방점을 찍어 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까칠한 이신 역의 주지훈만 봐도 모델 티를 채 못 벗은 연기 초보였다가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믿고 보는’ 주연 배우로 완전히 성장했다. 그가 넷플릭스 [킹덤]에서 [궁] 때와 전혀 다른, 선하면서도 고뇌에 가득 찬 왕세자를 열연한 점도 매우 재미있다.

미술과 음악은 거들뿐

[궁]의 흥행을 견인한 진짜 원동력은 어쩌면 배우가 아닌 영상미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원작 만화만 해도 채경과 신을 비롯한 왕실 식구들의 우아한 한복 패션(전통 한복과 퓨전 한복을 자유롭게 오가는)이 호평을 받으며 생활한복의 대중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드라마 [궁]도 왕실과 학교, 일반 가정 속 인물들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두루 담으려 노력했다. 궁궐 안팎의 풍경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예 경기도 오산의 한 공장 부지에 당대 최고가 수준의 대규모 세트장을 세웠을 정도. 달달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의 OST 역시 드라마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크로스오버 밴드 두번째 달의 연주곡들, 가수 하울과 J가 듀엣으로 부른 “Perhaps Love(사랑인가요)” 모두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TV 프로그램의 BGM으로 종종 사용되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한국 가요계가 K-팝을 필두로 15년간 눈부시게 성장한 만큼, 조만간 안방극장을 찾아올 [궁] 리메이크의 OST에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최근 [철인왕후], [조선구마사] 등 퓨전 사극을 표방한 작품들이 노골적인 역사 왜곡 문제로 전 국민적인 분노를 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의상·소품 등의 고증에도 15년 전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랑한다면서 폭력적인 남자? 매일 울고불고하는 여자? 글쎄…

[궁]은 많은 이들이 말하듯 ‘손발이 오글거리는’ 맛에 보는 드라마다. 그러나 당시의 전형적인 로맨스 구도를 참작하더라도 몇몇 장면에는 도저히 웃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문제를 거론하자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채경에게 가해지는 신과 율의 일방적인 행위들이 있겠다. 특히 신은 성격이 차갑다는 말로는 이해해주기 힘들 정도로 사사건건 채경에게 윽박지르고,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고 가기도 하며, 본인이 남편이랍시고 채경에게 강제로 몇 번이고 키스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여성을 동등한 인격이 아닌 소유물로 대하는 구시대적 인습이 리메이크에서도 ‘로맨스’란 이름으로 용인된다면, 제작진이 시청자의 학습·공감 능력을 무시하는 게 아닌지 당장 의심이 들 것 같다. 게다가 두 남자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상처만 받고, 연적(효린)이 대놓고 남편을 유혹하며 훼방을 놔도 확실하게 응징하지 않는 채경의 수동성은 2006년 방영 당시에도 아쉽다는 평을 들은 바 있다. [궁] 리메이크가 원작 만화와 오리지널 드라마에 누를 끼치지 않을 만큼의 성공을 거두려면 로맨스 당사자들의 성격과 관계를 현대의 상식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


15년 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할 [궁]이 부디 만화와 드라마 팬을 모두 만족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

2021.06.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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