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악마의 블루스

[컬처]by 배순탁

만화책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보기 시작해서 40이 된 지금까지도 만화책을 수집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병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글쎄. 여전히 만화책을 폄훼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만화책은 영감의 수원지로서 소중하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음악 관련 만화책’을 좀 소개해볼까 한다. 무엇보다 재미는 물론이요, 충실한 컨텐츠 역시 돋보이는 작품임을 밝힌다.

나와 악마의 블루스

Akira Hiramoto 지음, 서울문화사, 2010년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때는 193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는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기초적인 상식이 있다. 먼저 블루스라는 건 당시 흑인 노예들이 부른 구슬픈 멜로디 위주의 음악을 뜻한다는 것. 그리고 이 블루스가 발전해서 리듬 앤 블루스가 되고, 리듬 앤 블루스가 로큰롤로 이름을 바꿔 결국 세계를 제패한다는, 대중음악의 역사적 흐름이다. 즉, 대중음악의 출발은 ‘흑인들이 노래하고 연주한 블루스’였다는 얘기다. 

 

이 역사 속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손꼽히는 블루스 연주자, 그가 바로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이다. <나와 악마의 블루스>는 바로 이 로버트 존슨의 일대기를 그린 것으로, 그는 단 29곡의 블루스 음악만 남긴 채 1938년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 곡들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사후 30년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사실로 확언된 것은 하나도 없다.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의 죽음만큼이나 흥미진진했던 건 그의 삶 자체였다. 얼마나 기타를 독보적으로 잘 쳤으면 “교차로에서 만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재능을 얻었다.”는 루머에 휩싸였겠나.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나와 악마의 블루스>인 이유다. 실제로 그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교차로의 블루스(‘Cross Road Blues’)의 내용도 그러했다. 어스름 무렵의 교차로에서 악마와 조우한다는 이 곡의 내용은 당대에 유행한 부두교의 무속신앙과 흑인들의 영적 쉼터였던 기독교의 파우스트적 모티프가 혼재해있는 것이었다. 

나와 악마의 블루스

Robert Johnson 'King of the Delta Blures'

이뿐만이 아니다. ‘델타 블루스(혹은 컨트리 블루스, 미시시피주 델타 지역에서 발생했기에 이렇게 불렸다.)의 제왕’으로 불리는 명성과 달리 그 생애에 관해 알려진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도 으스스한 전설이거나 증명되지 않은 구전에 가까운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로버트 존슨이 주술적이면서도 음침한 신화로서 끊임없이 소환되었던 이유, 그것은 아마도 온통 베일에 싸인 짧은 생애와 시대를 앞서간 그의 음악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시해서 말하자면 미스터리에 휩싸인채 요절한, 음악의 천재였다는 뜻이다. 

 

이후 이 곡을 포함한 로버트 존슨의 유산은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체 누가 있느냐고?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다름 아닌 로버트 존슨의 직계임을 자처하는 뮤지션이다. 로버트 존슨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Me And Mr. Johnson>(2004)이라는 타이틀로 헌정 앨범도 발표했으니 꼭 들어보기를 권한다. 

 

천하를 호령했던 3인조 록 밴드 크림(Cream) 시절에 ‘Cross Road Blues’를 화끈하게 커버한 ‘Crossroads’도 빼놓아서는 안될 곡이다. 밑의 동영상 보면, 아마 입이 쩍 벌어질 것이다. “이게 달랑 3명이서 연주하는 거 맞아?” 또한 에릭 클랩튼 외에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도 이구동성으로 그를 “가장 위대한 블루스 연주자”라 칭송한 바 있다.

‘음악’ 만화라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 위의 지식만 갖고 감상하더라도 <나와 악마의 블루스>는 박진감으로 충분히 넘친다. 책 해설에도 나와있듯이 압도적인 스피드로 전개되는, ‘블루스 느와르’ 한편을 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흑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차별은 기본이요, 피와 뼈와 폭력이 난무하는 당대의 미국 사회에서 주인공 RJ가 어떻게 살아남아 블루스를 들려줄지, 부푼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쳐도 좋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그림을 통해 표현한 작화에도 찬사를 보내는 바다. <피아노의 숲>이나 <벡> 또는 최근의 <블루 자이언트>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생생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간만에 기타 좀 잡고 한 소절 땡겨봐야겠다. 제목을 정한다면, ‘나와 바보의 블루스’ 정도쯤 되겠지.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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