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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웬만해선 먹기 힘든 #1

19번 국도 재첩국수

by미식탐정

<웬만해선 먹기힘든>은 찾아가기 번거로워 자주 먹기 힘들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에 대한 찬가다.

19번 국도 재첩국수

국수집에서 바라 본 봄의 풍경

해마다 봄이 오면 심신이 쉬이 가라 앉지 못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유 없이 설레는 날이 계속된다. 앙상한 가지들에서 파릇한 새싹들이 돋고, 겨울이 언제인지 기억 없는 벚꽃에 정신을 잃는다. 문득 몇 해전에 먹은 봄의 맛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굴이 먹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만난 재첩 맛은 행운에 가까웠다. 

 

하동에는 봄의 굴이라는 벚굴이 있다. 벚굴은 강굴이라고도 한다. 손바닥 보다도 큰 굴껍질에 벚꽃처럼 하얀 속살이 있다.  봄의 굴은 있지말아야 할 곳에 있어 더욱 진하다. 농밀한 벚굴의 향은 뼛속까지 매혹적인 굴향으로 물들인다. 겨울의 굴은 풋내와 바다향이 진동한다. 바다향이 입 속을 장악한다. 막 태어나 약동하는 생명의 맛이다. 봄의 굴은 원숙미다. 진득하고 그윽한 향을 뿜는다. 풋내가 없다. 죽어가는 맥박을 뛰게 하는 굵직한 생명의 숭고함이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19번 국도에 이름 없는 재첩국수 집이 있다.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에서 봄의 재첩의 국물에는 작은 숲이 들어앉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봄의 재첩은 깊은 맛이 들어있다. 

 

재첩국수집의 경관은 봄이 되어 진가가 나타난다. 산맥들이 너울지고 그 사이를 강이 관통한다. 19번 국도의 길을 벚꽃이 두르고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날린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꽃이 있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도 문명의 이기(利器)가 아닌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이 경관을 바라보며 재첩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가게안에서 사람들은 잠시 넋을 잃고 경관을 보다 이따금 머리를 접시에 박고 봄을 보며 봄을 먹는다.

 

이 곳에서는 봄에는 재첩국수를 팔고 재첩이 나지 않을 때는 잔치국수를 판다. 국수를 위주로 파는 가게다. 휴게소 개념으로 칡즙을 팔기도하고, 커피도 판다. 다른 것을 팔아도 재첩국수가 가게의 정체성이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몇가지 반찬과 함께 국수가 나온다. 형식 없이 뿌린 부추가 질서정연하게 생명의 향을 낸다. 재첩국물을 앞서지 않고 부추긴다. 재첩의 국물은 재첩국수의 중심이다. 국물을 들이키면 봄의 속성이 온전히 몸으로 들어온다. 자극적으로 몸을 찌르지 않고 목을 중심으로 점차 퍼진다. 신경의 말단까지 봄기운이 들어오고 나면 비로소 맛의 여운이 남는다. 입 안에 남은 부추를 씹으면 겨우내 깊숙히 자리했던 봄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몸이 맑아지고 봄의 상(像)이 완연해진다.

 

재첩은 국수 위에 조신하게 자리 잡았다. 이 작은 조개는 국물에 몸을 내주고도 여전히 맛이 생생하다. 작은 몸에 잔뜩 긴장감이 서려있다 잠시 입속에서 풀어지는가하면, 응축한 봄을 이미 아는 것처럼 국물 위를 오르고 잔뜩 뒤엎인 부추를 묶어 그릇을 아우른다. 뽀얀 국물에 국수는 잠시 앉아 위탁을 한다. 이내 국물을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레 화합을 도모한다. 잘 삶아져 퍼지거나 덜 익은 맛이 없다. 국물을 감싸 돌지 않고 스미듯 국물을 두른다.  탄수화물의 물성을 엎지 않고 차분하게 국물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식감을 견인한다. 

 

차츰 접시의 바닥이 보이면 봄이 몸으로 들어오며 계절감을 느낀다. 

 

접시를 비우고도 재첩국수집은 여전히 봄이다. 영원할 것처럼 만개한 봄이다. 

19번 국도 재첩국수

19번 국도의 재첩국수

재첩국수집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