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섬여행! 섬에서 ‘삼시세끼’ⓛ...신안 만재도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이야기가 있는 섬

만재도 전경

‘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공중파 채널이 아님에도 시청률이 10%를 넘어설 정도로 많은 이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가운데 어촌편은 지금까지 세 군데의 섬에서 촬영되었다. 신안군 만재도와 고흥군 득량도 그리고 완도군 죽굴도가 그곳이다. 이 섬들은 각각 어미섬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어미섬과 촬영지를 찾아 ‘섬 힐링여행’을 떠나보자.

자연의 소리 가득한 만재도에서 ‘해산물 밥상’

마구산 등산로에서 본 해무 낀 내마도, 외마도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만재도(晩財島)는 ‘삼시세끼’가 이 곳에서 촬영, 전파를 타면서 관심을 끌었다. 사실, 만재도는 신안 사람들도 잘 모르던 외진 섬이었다.


이 섬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봄의 왈츠’ 덕이다. KBS 2TV 드라마 봄의 왈츠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청산도에서 85%가량 촬영했고, 만재도에서 10%, 비금도에서 나머지 부분을 찍었다. 만재도를 배경으로 한 장면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지만, 공중파 방송의 위력 때문에 섬의 이름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만재도 미남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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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20km 직선거리에 있는 섬으로, 여객선으로 5시간 남짓 걸려야 도착한다. 접근성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생태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다.


큰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선착장이 없어 차도선이 닿질 않으므로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경운기도 없다. 때문에 종선(從船)이 마중 나와서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른다. 섬에 다가갈수록 선착장 위로 보이는 마을이 전부이며 고즈넉하다.


간간이 들려오는 어선의 엔진 소리를 제외하면 온통 자연의 소리다. 이 섬에서 가장 먼저 외지인의 눈길을 빼앗는 것은 아무래도 ‘앞짝지 해수욕장’이 아닐까 싶다. 맑은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다가와서 하얗게 부서진다.

만재도 짝지해변

앞짝지 해변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높고 낮은 바위들이 어우러져 우뚝우뚝 서 있다.


해변에서 바라보면 마을의 집들은 알록달록한 지붕의 윗부분만 보일 뿐, 나머지는 모두 돌담에 숨어 있다. 태풍 때문이다. 돌담이 없으면 집이 바람에 날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지붕까지 높게 두른 돌담은 태풍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성벽 같아 보였다.

만재도 마을 돌담길

섬마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돌담과 골목길 그리고 176m의 마구산과 작은 등대까지. 특히 아름다운 석양과 멋진 일출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풍경이다.


동호인 모임 등에서 2박3일이나 3박4일의 일정으로 만재도를 찾는다면 그 아름다움에 반하리라. 섬에서 며칠 머물 숙소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펜션을 이용하면 된다. 해산물 밥상은 일품이다.

삼씨세끼 촬영했던 만재도 마을 집

이 외딴 섬은 한때는 돈섬, 보물섬으로 불릴 정도로 풍족했었다. 주민들은 만재도의 황금기를 1930~1960년대라고 회상한다. 당시 근해에서 전갱이과의 ‘가라지’라는 생선이 대풍을 이루던 시기였다. 고등어보다 조금 큰 고급 어종인 가라지는 인근의 가거도나 하태도에서는 구경조차 못 하는데, 유독 만재도 부근에서만 많이 잡혔다. 더욱이 가라지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어종인지라 가격이 셌다.

만재도 미역 채취 모습

해방 전후 온 민족이 가난했을 적에 만재도 사람들만은 이 가라지 덕에 부자였다고 한다. 마을의 아이들이 가라지 몇 마리를 가게에 가지고 가서 사탕과 바꿔 먹는 풍속도가 여기에서는 있었다.


이 생선 덕분에 자녀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키기도 했는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본 메이지대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인근의 하태도, 상태도, 가거도의 딸 가진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만재도로 시집보내려 했던 시절이었다.


황금기에는 이 작은 섬에 1백 가구가 넘게 살았다. 1960년대 초, 만재도 근해에서 가라지가 갑자기 사라져 황금기가 끝났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만 같던 풍족함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섬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삼시세끼에 나와 주목받았던 만재도 만재수퍼

김정호의 ‘섬, 섬사람들’에 따르면, 1965년 봄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3개월째 교통이 두절되었다. 농경지가 매우 좁기에 해초를 팔거나 고기를 잡아 목포에서 그때그때 사 오는 형편이라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초와 산나물을 먹고 바람 잘 날만 기다리다가 돛단배를 타고 진도에 건너가 구호를 요청했다.


당시 진도 군수는 긴급양식을 싣고 현지로 가서 섬 주민들의 아사를 면하게 해주었다. 군수는 매년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31가구 191명을 반강제로 진도 본토에 이주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이 1년 남짓 살다가 다시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들은 섬에서 고기만 잡다가 쟁기질, 지게질 등의 농사일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1백 명도 채 안 되는 인구가 섬을 지키고 있다.

만재도 외마도, 내마도 방면 일몰

참고도서 : 이재언 '한국의 섬' /사진-신안군 제공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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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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