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끝 '해남'의 여름
해남의 여름은 색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숲의 초록색, 수국의 분홍색, 바다의 파란색, 사찰의 고동색, 본디 그랬던 것들마저 더 아름답게 물들어 간다. 땅끝으로 발길이 향하는 건 필연이다. 아울러 내 마음에도 여름의 흔적들이 새겨진다.
●한여름의 색감
4est수목원
여름에 이리저리 해남을 둘러보면 온통 파랗고, 푸르다. 중심부에는 두륜산국립공원과 달마산, 만대산 등 웅장한 산이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덕분에 오뉴월의 해남은 무더위를 이겨 낼 청량함으로 가득하다. 화사한 꽃도 뭉텅이로 핀다. 구산저수지를 지나 황산리 깊숙한 곳에 가면 자연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2만1,000m2(약 6,353평) 규모의 수국정원이 펼쳐지는 4est(포레스트)수목원이다.
수목원은 6월 초여름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는 수국을 보러 오는 이들로 붐빈다. 특히 수국의 색감이 정점에 달하는 6월 중순부터 말까지는 수국축제(올해 6월10일~7월10일)가 한창이다. 200여 품종의 수국은 약 한 달간 온 힘을 다해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하얀색 등 갖가지 색감을 마음껏 뽐낸다. 초록색 나무가 도화지가 되고, 그 위에 알록달록한 낙원이 쫙 펼쳐진 모양이다. 7월 중순이면 수국은 다음 해를 기약하며 깊은 잠에 빠진다. 다행인 건 축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 수국이 지기 전 서둘러 4est수목원, 그리고 땅끝으로 향하자.
수국축제는 6월10일부터 7월10일까지다 |
이번 여름을 놓쳤다고 아쉬워 말자. 수목원의 매력은 여름에 국한되지 않으니까. 봄에는 팥꽃나무와 꽃잔디, 가을에는 풍성한 팜파스그라스(축제 기간 9월1일~10월30일)로 채워진다. 겨울에는 수많은 나무에 눈이 내려앉아 눈꽃이 핀다. 물론 꽃이 피지 않는 시기에도 수목원은 푸릇하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일정은 최대한 넉넉하게 배정하자. 대지가 워낙 넓고, 중간중간 멈췄다 갈 수 있는 벤치와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이 조성돼 있어 1시간은 금세 사라진다.
게다가 수목원 초입에는 자연의 운치와 여유로움을 이어 갈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레몬차와 수국차, 백향과차, 커피, 에이드 등 여러 음료가 준비돼 있고, 야외에 작은 정원도 있다. 나무로 만든 육각형 공간에서 담소를 나누며 수목원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면 된다.
●달마산을 벗 삼아 걷는 길
달마고도 & 미황사
해남은 걷기 여행에 최적화된 곳이다. 멋들어진 코스도 이미 닦여 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 ‘서 있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곳’이라 알려진 ‘달마고도’다. 이 길은 달마산의 주 능선을 아우르는 17.74km의 둘레길이자 1,300년 고찰 미황사의 옛 12개 암자를 잇는 순례 코스다. 과거 선인들이 걷던 옛길을 복원했는데, 낫과 곡괭이, 지게 등 순수 인력만으로 길을 내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했다. 흙길과 돌길만 있어 해남의 자연에 온전히 녹아든다.
미황사 일주문으로 들어가 지혜의 108계단을 지나면 달마고도 시작점에 닿는다. 왼쪽으로 가면 1코스, 오른쪽은 4코스다. 그 전에 달마산의 암봉을 병풍으로 두른 미황사의 고즈넉함을 즐겨도 된다. 미황사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가면 4코스에 합류할 수 있고, 부도암과 삼나무숲, 몰고리재 등 코스 역방향으로 걷는다. 여행에 정답은 없으니 취향과 체력에 맞춰 달마고도를 즐기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달마고도는 코리아둘레길 중 서해랑길(1코스)과 남파랑길(90코스)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국토순례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래서 그럴까. 군에서 달마고도와 코리아둘레길을 엮어 재밌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하는 주말 걷기 여행 ‘2024 달마고도 & 코리아둘레길 걷기여행(6월8일~11월23일, 둘째·넷째 주 토요일)’으로, 코스별 출발지까지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여행자가 준비해야 할 건 도시락과 간식, 등산용품 등 본인에게 최적화된 아이템뿐이다.
▶2024 달마고도 & 코리아둘레길 걷기여행
기간: 6월8일~11월23일,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차수별 40명 선착순)
달마고도 제1코스 출가길
미황사 → 산지습지 → 임도 → 제1너덜 → 제2너덜 → 큰바람재
2.71km, 50분 소요
제2코스 수행길
큰바람재 → 관음암터 → 문수암터 → 너덜 → 미라골잔등 → 노지랑골
4.37km, 1시간 50분 소요
제3코스 고행길
노지랑골 → 도시랑골 → 13모퉁이길 → 몰고리재
5.63km, 2시간 10분 소요
제4코스 해탈길
몰고리재 → 도솔암 갈림길 → 삼나무숲 → 너덜 → 부도전 → 미황사
5.03km, 1시간 40분 소요
●우리가 무더위를 즐기는 방법
땅끝송호해수욕장
우리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그래도 괜찮다. 물놀이가 가장 재밌게 느껴지는 계절이니까. 해남에서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해수욕장은 땅끝송호해수욕장이다. 온종일 있어도 질리지 않는 흔치 않은 해변이다. 왜냐고? 시간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감상하고, 근처 기사식당에서 맛깔난 갈치조림과 전복된장찌개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오후 3~4시의 송호해수욕장은 은빛 바다로 변한다. 강한 햇빛이 반짝이는 윤슬을 선물해서 그렇다. 심지어 백사장을 걷는 이가 우주를 탐사하거나 은하수 위를 거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땐 주황빛을 띠고, 해가 완전히 지면 보랏빛 몽환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그런데도 떠나기 싫다면 해수욕장 바로 옆 땅끝오토캠핑장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다.
또 바닷가의 배경이 돼 주는 600그루가량의 소나무도 이곳의 자랑이다. 나무 아래 그늘막을 설치해 책을 읽거나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는 등 한없이 느긋한 오후를 만끽할 수 있다. 텐트가 어렵다면 간이 의자 정도는 꼭 챙기자. 참고로 200년 가까이 해변을 지킨 나무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해남의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아껴 주고 또 아껴야 할 해남의 보물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건 한여름의 페스티벌이다. 해변 콘서트와 불꽃쇼, 가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송해해변여름축제다. 매년 7월 말에 열리는 여름 대표 축제로, 올해도 7월26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다. 불꽃쇼(7월26~27일), 플라이보트 공연 및 체험, 야간 버스킹, 모래조각 전시, 워터 슬라이드, 에어풀장, 낭만 펍(Pub) 등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된다.
송호해변여름축제
기간: 7월26~28일
장소: 송호해수욕장 일대
*축하공연, 불꽃쇼, 플라이보트 공연 및 체험, 모래조각 전시, 워터 슬라이드, 송호해변 낭만 펍 등
●더 가까워진 땅끝 바다
땅끝관광지 스카이워크
땅끝은 고여 있지 않고,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더하고 있다. 여행자가 땅끝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바라면서 말이다. 최근에는 땅끝탑 가는 길에 스카이워크를 설치해 스릴과 재미를 추가했다. 특히, 41m 전 구간을 투명유리로 깔아 땅끝 바다 위를 걷고,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사진으로 보면 확 와 닿지 않지만, 대략 아파트 6~7층 되는 18m 높이라 꽤 아찔하다. 피할 구멍이 없으니 정면 돌파할 수밖에. 그래도 걱정은 말라. 강화유리라 수십 명이 왔다 갔다 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스카이워크 끝에 다다르면 서남해 바다와 땅끝 주변의 섬을 오가는 배, 어선 등 땅끝 해안의 매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땅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땅끝탑으로 향하는 루트를 하나 더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모노레일 탑승장을 거쳐 가거나 땅끝전망대에서 내려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갈두산과 바다를 양쪽에 끼고 걸을 수 있는 약 1.2km의 데크길이 깔린다. 땅끝 관광지를 한 번 더 여행해야 할 이유를 벌써 만들어 뒀다.
이왕 스카이워크까지 온 김에 땅끝관광지를 제대로 둘러보고 가자. 단, 땅끝관광지는 여름과 겨울에 즐기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11~2월에는 오후 5시부터 서서히 해가 지고 5시30분이면 일몰이 절정에 다다르지만, 여름은 그렇지 않다. 동계 시즌과 반대로 아침 일찍 나서는 게 훨씬 낫다. 먼저 맴섬에서 일출을 보고, 근처 식당에서 해남의 손맛을 즐기면 된다. 오전 9시면 스카이워크도 개방하고, 땅끝모노레일도 운행을 시작한다. 2량짜리 모노레일은 땅끝전망대를 향해 5~7분 정도 올라가면서 고운 풍경을 선사한다. 벌써 3~4번을 봤는데도 여전히 짜릿하다.
타오르는 횃불을 닮은 땅끝전망대에 다다르면 북위 34도 17분 32초 우리 국토의 첫 땅을 밟을 수 있는 표식이 있다. 최북단, 최남단, 첫, 끝 등의 수식어는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낭만이다. 또 갈두산 사자봉 정상(152m)에 있다 보니 스카이워크와는 다른 높이에서 다도해를 마주하게 된다. 전망대 입구와 9층까지 미묘하게 달라지는 바다를 모두 느껴 보길 바란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해남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