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빼고 여행하기
검은 기와가 모인 한옥마을은 잠시 잊자. 전주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남고산의 정기를 받으며 사찰을 거닌다. 또 전주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 산책하고, 물갈비도 먹는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은 전주의 하루.
●꽃싱이 타고 전주 누비기
바람쐬는길
전주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주천(총 41.5km)을 따라 ‘바람쐬는길’이 있다. 숲길과 데크길이 있고, 돗자리를 펼 수 있는 그늘도 있다. 예쁜 길을 함께 달릴 ‘꽃싱이(전주 공영자전거)’도 있다. 바람쐬는길을 따라 5개 대여소(평화의전당·대성·자연생태관·향교·오목대)가 있고, 하루 대여료는 단돈 1,000원. 빨간 꽃싱이를 타고 초록 자연을 이리저리 다니고, 영적인 힘이 가득한 차명자산성지도 다녀올 수 있다.
치명자산은 조선시대의 천주교 순교자 일곱 분이 묻힌 곳으로, 천주교 성지 중 한곳이다. 근처에는 치명자산성지 순교자현양 순례자성당도 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찾아가는 것도 괜찮다. 십자가 모양의 건축물이 매력적이고, 건물 뒤로 천주교 박해를 이겨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옹기가마 경당도 있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기
한벽당
차명자산성지를 지나고, 천변을 따라 달리면 한벽당과 한벽굴(한벽터널)이 나온다. 승암교 위에서 전주천을 보면 여유라는 추상 명사가 구체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저멀리 나무에 파묻혀 있는 정자가 보이는데, 그게 바로 ‘한벽당’이다.
한벽당은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으로,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월당 최담 선생의 별장이다. 주로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찾았고, 많은 시를 읊었다고. 자연환경을 활용한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논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한벽당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면 한벽교에서 보면 된다. 게다가 한벽당의 유명세는 오래전부터 상당한데, 남원 광한루, 무주 한풍루와 함께 호남의 삼한(三寒, 찬바람을 맞을 수 있는 세 곳)으로 불린다.
참, 한벽당 아래로 한벽굴이 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인데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한벽당의 정기를 끊기 위해 철길을 만들었다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주 시민들이 아픔을 지닌 한벽굴을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살아있는 유산을 찾아서
국립무형유산원
최근에 문화재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5월17일부터 ‘국가유산’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유산이라는 뜻을 담았다. 문화’재(財)’는 유물의 재화적 성격을 강조한 것이라고.
무형유산은 무엇일까. 일정한 형태의 유형 문화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세대를 이어가며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상설전시실, 무형유산 디지털 체험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공간에는 여러 소장품과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무형유산을 알리고 있다.
전통공연·예술, 의례·의식, 전통놀이·무예 등 여러 분야의 유산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는 김장문화, 농악, 줄다리기, 제주해녀문화, 씨름, 연등회, 한국의 탈춤 등이 있다.
●전주의 기운
남고사
고덕산의 남고산성에는 특별한 사찰이 있다. 신라 문무왕 8년부터 역사를 시작한 남고사(南固寺)다. 지금의 남고사 바로 앞에 과거 남고사의 터가 남아 있다. 산골 고요함이 매력적인 남고사는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의 제자 명덕이 668년에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남고연국사, 오늘날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조선 성종 이후라고.
사찰의 신묘한 분위기를 먼저 느끼고, 등산로를 따라 남고산의 기운을 받는 코스도 괜찮다. 이 밖에도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성묘, 산성의 시설 및 규모와 연혁을 기록한 남고진 사적비, 경치가 빼어난 만경대, 억경대 등이 있다.
●꽤 맛있는 서학동 원 투 콤보
이대감집 & 광커피 로스터리
전주에서 특색 있는 음식으로 꼽히는 건 전주비빔밥, 피순대, 콩나물국밥, 물갈비, 물짜장 등이 있다. 외식의 범주로 보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든든한 식사가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엔 푸짐한 콩나물과 당면, 부드러운 돼지갈비가 조화를 물갈비로 향했다.
물갈비는 돼지갈비를 양념에 재우고, 콩나물과 당면, 팽이버섯, 양파 등을 넣어 자작하게 졸여 먹는 전주식 갈비 전골이다. 남노갈비, 전주물갈비, 이댐감집 등이 유명한데, 여행 동선에 맞는 곳으로 가면 된다. 콩나물 덕에 국물은 개운하고, 돼지갈비가 고소함을 덧댄다. 당면은 보너스 같은 느낌. 따뜻한 밥과 즐겨도 되고, 마지막에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면 꽤 든든한 식사가 완성된다.
이대감집에서 물갈비를 즐겼다면 다음 순서는 광커피 로스터리의 커피가 공식이다. 아담한 공간인데 커피를 향한 마음은 원두를 생산하는 모든 대륙의 크기만큼 거대하다. 카페 한편에 로스팅 공간을 뒀고, 필터커피 원두도 7~8가지를 상시로 둔다.
새벽, 노을, 오로라 블렌딩 등 하나하나 공들인 태가 난다. 블렌딩 안에 담긴 스토리텔링이 커피 시음의 즐거움을 더한다. 또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싱글 오리진도 취급하고, 에스프레소, 스무디, 에이드 등 두루 갖추고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혔다. 전주 여행을 커피로 기억하고 싶다면 이곳의 원두나 드립백을 구매하는 것도 추천한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