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머금은 향기, 고성 하늬라벤더팜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살며시 다가온 그대'를 왜 하필 '보랏빛'에 빗대었을까? 고성 라벤더팜으로 향하던 중 문득 '보랏빛 향기' 가사를 떠올렸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이 이 길 위에서 스친 건, 곧 만나게 될 보랏빛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비 내리던 어느 날 |
고성에서 만난 신세계, 하늬라벤더팜
고성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인제와 진부령을 통과해 약 3시간을 꼬박 달려야 한다. 인제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를 탄생시킨 38선 접경지역이고 진부령은 인제와 고성을 잇는 태백산맥 줄기다. 꼬부라지는 산길이 많아 초보운전자들은 더욱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성으로 향하는 이유가 있다. 하늬라벤더팜의 라벤더들이 일제히 보라색 꽃망울을 터뜨려 장관을 연출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라벤더는 단풍이 들기 전까지 초록밖에 보여줄 것이 없는 이 가난한 계절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다. 그 특별함을 알기에,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일부러 고성을 찾는다.
차라리, 한 폭의 수채화 |
사진으로 남겨야만 하는 풍경 |
빨리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 |
라벤더와는 완전히 다른 호밀밭의 운치 |
구석구석 하늬라벤더팜 산책
우산을 쓴 채 본격적인 라벤더팜 탐방에 나선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정면과 오른쪽에는 라벤더 밭이, 왼쪽으로는 호밀밭이 있다. 산책길은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정표상 시작점은 왼쪽 길이다. 결국은 빙 돌아 원점에 돌아오는 코스라 오른쪽 길로 걸어도 무관하다. 그러나 밭이라는 캔버스에 이토록 훌륭한 그림을 그린 농장주의 어떤 생각이 있을 테니 따르기로 한다.
자전거 바퀴가 라벤더와 양귀비를 연상케 한다 |
힘겹게 피어난 양귀비꽃 |
앉아 쉬기 좋은 메타세콰이어길 |
풍경이 다양하니 사진 찍는 재미가 있다 |
어미닭과 병아리의 여유로운 산책 |
라벤더색 트랙터 |
파란 하늘보다 흐린 하늘일 때 제 색을 뚜렷하게 내보인다 |
라벤더 향기에 담긴 노력
하늬라벤더팜이 지금처럼 멋진 농장이 되기까지, 하덕호 대표의 피땀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허브차 따위를 팔다가 차별화 전략으로 선택한 무기가 라벤더였다. 외국을 드나들며 모델이 될 만한 장면을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훗카이도의 라벤더 필드를 부분적으로 참고해 하늬라벤더팜을 탄생시켰다. 경관농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2002년의 일이다.
허브샵 제품들 |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라벤더 향주머니 |
시화전이 열린 뒤뜰 |
'하늬팜 라벤더 축제'는 라벤더가 피어나는 6월에 열린다. 축제에서는 라벤더 향주머니 만들기, 아로마 스프레이 만들기, 라벤더 피자만들기 등 라벤더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그림 그리기 대회, 향기 음악회, 포토 콘테스트 등의 이벤트도 진행된다.
하 대표는 향후 이곳을 아트팜으로 발전시켜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을 홍보하는 지역채널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성군청소년문학회에서 배출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
예쁜 두 눈에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보랏빛 향기'에 등장하는 '살며시 다가온 그대'의 정체를 이젠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마도 그는 몽환적이면서도 은은한 매력을 가졌을 것이다. 스스로 빛나기보단 어울려 빛났을 것이다. 비오는 날이나 물안개 피는 새벽에 만나면 평소와는 다른 얼굴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한때는 어느 누군가의 눈물이었던 적 있을 것이다. 라벤더처럼.
눈 덮인 라벤더팜 겨울 풍경을 걸어둔 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