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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소도시 낭만 여행, 마이리틀시티] 1탄

힐링이 체질이라, 비 내려도 예쁜 보은 여행

by대한민국 구석구석

마이리틀시티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소도시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낯설지만 아늑한,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소도시의 반전 매력에 흠뻑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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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은 속리산 서쪽 자락에 폭 안긴 휴양도시다. 10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속리산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법주사 등 풍부한 관광자원 덕분에 1980년대에는 수학여행 1번지로 불릴 만큼 외지인의 방문이 잦았다. 현재는 부족한 문화시설로 인해 관광객 수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최근 언택트 여행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마구잡이로 개발되지 않은 보은의 청정 자연을 찾는 사람이 다시금 늘어나고 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깊은 맛을 내던 엄마의 요리처럼 당기는 매력이 있달까. 굵은 장대비가 내리다 말다 반복하던 어느 날, 아끼는 카메라를 챙겨 들고 보은의 속살로 파고들었다. 

드론뷰 펼쳐지는 12굽이 전망대

말티재

속리산 기슭에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있다. 생김새가 어찌나 독특한지 직선거리로 4km 떨어진 삼년산성에서도 알아볼 정도다. 자전거, 바이크 동호인들 사이에서 12 굽이 와인딩 코스로 유명한 이곳의 이름은 말티재.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세조가 속리산 행차 때 얇은 돌을 깔아 길을 냈다고 전해진다. 세조는 가마로는 도저히 고개를 넘기 어려워 중간에 말로 갈아타기도 했다. 그만큼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초보 운전자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꼬부랑길 끝에는 올해 2월 개장한 전망대가 있다. 높이가 20m나 되어 숲과 도로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장면을 위해 말티재만 세 번을 올랐다. 처음엔 우천으로 전망대가 폐쇄되어 입구에서 되돌아갔고, 그다음엔 어찌어찌 전망대까지는 발을 들였는데 때마침 비가 쏟아져 사진을 찍는 데 실패했다. 삼고초려 끝에 적어도 봉우리 세 개가 보이는 시야를 확보했다. 구불길이 쉼 없이 이어지는 난이도 최상 구간은 1km도 채 안 됐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은 그보다 훨씬 길고 웅장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짧고 거친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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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스카이바이크와 우중 산책

솔향공원 & 연꽃단지

말티재를 넘어 반대편 솔향공원으로 향했다. 비가 오기 전에 스카이바이크를 타보기 위해서였다. 밑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는 궤도를 따라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꽤 만만해 보였는데, 막상 바이크에 오르니 생각보다 뻑뻑한 페달 때문에 출발부터 애를 먹었다. 곡선 구간은 힘이 두 배로 들어 뒤차에 따라잡히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동 레일이 설치된 일부 구간과 내리막 코스에서는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 것. 그제야 실개천을 따라 조성된 아기자기한 산책길과 크고 작은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는 소나무도 꽤 늠름하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며 솔향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도는 데 약 30분이 걸렸다.

때마침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 오는 김에 연꽃단지 근처 카페에서 쉬어갈 마음을 먹었다. 비가 계속 올 거라는 걸 알고 좋아하는 시집을 한 권을 챙겨왔었다. 연못이 잘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잠시 고요한 시간을 가졌다. (‘연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새끼고양이에게 시선 빼앗기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비가 잦아든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갔다. 빗방울이 널찍한 연잎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슬 머금은 연밥도 싱그러웠다. 초여름을 빛내던 연꽃은 대부분 져버렸지만, 비 오는 날의 연꽃단지는 그 자체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냈다. 새끼 티를 갓 벗은 원앙 한 무리는 찰나의 햇살에 날개를 말리다가도 사람이 다가가면 뽈뽈 흩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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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닳은 것의 아름다움

삼년산성

포장된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눈앞에 거대한 산성이 나타났다. 성벽은 너른 분지를 끌어안듯 양팔을 벌린 모양으로 뻗어있었다. 모서리가 닳아 무뎌진 돌마다 짙푸른 이끼가 가득했다. 한눈에 봐도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드문 발길을 따라 동쪽 성벽으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우거진 잡풀을 헤치다 폭신한 잔디를 밟다가를 반복했다. 숨이 차오르면 산 너머 보은 시내를 내려다보며 땀을 훔쳤다. 아파트와 논과 성벽이 어우러진, 시공을 초월한 풍경 속에 내가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성벽 안에 감춰진 ‘그 시절’ 무용담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곳은 삼년산성(신라 자비왕 13년 축조)이다. 신라가 백제를 경계하고 고구려의 남진을 막아내던 최전방 요충지다. 군청과 터미널이 있는 보은의 중심지에 이렇게 오래된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허물어진 성벽에 잠든 역사는 실로 위대하다. 신라가 삼국통일로 나아가는 동안 백전백승에 가까운 기록을 세우며 난공불락의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했다. 1500년 전 쌓아올린 성벽이 아직도 70%나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곳 삼년산성이 얼마나 견고한 철옹성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긴 시간 낡고 닳아져도 영원처럼 남아있던 성벽 한 쪽에 작은 소원탑을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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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한 여행자가 쉬어가는 맑은 자리

만수계곡

내내 비를 맞아놓고 무슨 물놀이냐 싶겠지만,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속리산 깊은 골에 발을 담근 것은 결과적으로 꽤 좋은 선택이었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이 남쪽으로 흘러 형성된 만수계곡은 보은 시민들의 대표적인 여름 휴식처다. 계곡의 폭과 수량이 제각각이라 하류서부터 마음에 드는 곳을 점찍으며 올라가야 한다. 원하는 곳 가까이에 주차를 할 수 있을 만큼 도로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주차 후 차 문을 열었더니 쏴- 하는 물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의지했던 도시의 시간이 이제야 뚝 끊겨 나간 듯했다. 손수건을 챙겨 홀린 듯 계곡으로 다가섰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불어난 계곡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바닥이 보일 만큼 투명한 물을 보니 평소엔 얼마나 더 맑은 물이 흘렀을지 짐작이 됐다. 계곡 양옆에 우거진 나무는 햇빛 드는 오후엔 훌륭한 그늘막이 되었겠다. 적당한 바위를 하나 골라 손수건을 깔고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이 기분 좋게 발등을 스쳤다. 마스크도 벗고 휴대폰도 내려놓은 채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있었다.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디지털마케팅팀 양자영 취재기자(icehs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