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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소도시 낭만 여행, 마이리틀시티] 9탄

때묻지 않은 자연을 품은 의령에서 맞이한 가을

by대한민국 구석구석

마이리틀시티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소도시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낯설지만 아늑한,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소도시의 반전 매력에 흠뻑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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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은 자연을 품은 의령에서 맞이한 가을

경남 의령? 막상 경남 의령 여행 코스를 짜려고 하니 어디를 가야 할지 떠오르는 여행지가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 의령 지역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의병 곽재우 장군의 고향 정도로만 알고 있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가 2만 6천여 명으로 경남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이면서 교통이 불편한 오지 같은 곳이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는 힘들었을 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소도시임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이런 낯선 생소함이 여행자에게는 새로운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곳이 되곤 한다.

01

가을 느낌 가득 전해주는

호국의병의 숲

의병의 고장답게 낙동강이 흐르는 지정면 일대에는 ‘호국의병의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수공간이 자리 잡고있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의병들과 함께 치렀던 여러 전쟁들 가운데 첫 승리를 했던 기강 전투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부지는 넓으나 의령군에서도 한참 외곽 쪽에 있는 탓에 한동안 거의 버려진 땅으로 관리를 받지 못하다가 최근 기강 나루터를 중심으로 가을 댑싸리 명소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생소한 이름의 댑싸리는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예전에 집안에서 쓰던 싸리비의 재료로 알려진 친숙한 식물이다. 1년생 초본 식물로 7~8월 한여름에는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다가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중하순부터는 붉은빛으로 색깔이 점점 변하고 나중에는 완전한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초가을 시즌 시기를 잘 맞춰 댑싸리 군락지 방문을 한다면, 알록달록 붉게 변해가는 댑싸리의 예쁜 풍경을 만날 수 있지만,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어두운 갈색빛의 댑싸리만 볼 확률이 높으니 만약 댑싸리를 보러 갈 목적이라면 방문 타이밍을 제때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

의령 댑싸리 군락지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그 규모가 2배로 넓어졌다고 한다. 넓어진 규모 덕분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도 생각보다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해가 지는 일몰 시간 즈음에 포인트가 되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꽤 그럴듯한 예쁜 사진을 남길 수도 있으니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호국의병의 숲 주변은 댑싸리뿐만 아니라 규모는 작지만 핑크 뮬리와 갈대 및 코스모스 군락지도 한데 모여 있어 이곳저곳 둘러보며 가을을 즐기기에 충분한 곳이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이곳에서 제대로 된 축제 행사를 열지 못했다고 하는데, 내년부터는 댑싸리와 함께 의령에서 성대한 축제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02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찰,

일붕사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찰이라니!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찰은 들어봤어도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찰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바로 의령군 궁류면에 위치한 ‘일붕사’ 얘기다. 앞서 소개한 댑싸리 군락지가 의령군 동쪽 외곽에 있는 곳이라면, 일붕사는 의령군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어서 함께 둘러보려면 여행 동선을 짜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찰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해져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한다.

일붕사가 위치한 봉황산은 신라시대 삼국통일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첫 요새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산 쪽으로 보이는 웅장하고 거대한 기암절벽들이 왜 이곳이 천혜의 요새가 되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봉황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일붕사는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사찰로 처음엔 당시 성덕왕의 이름을 딴 성덕사로 불렸지만 이후 이름이 바뀌어 일붕사가 된 곳이다. 창건 이후 잦은 화재로 인해 소실 및 중건을 반복하다가 1980년대 중반 다시 한번 큰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이 된 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불의 강한 기운을 막기 위해 기암절벽 안쪽으로 동굴을 파 동굴 법당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동양 최대의 동굴 법당으로 알려지면서 기네스북에도 등재가 된 곳이라고 한다.

일붕사 무량수전 동굴법당

일붕사 대웅전 동굴법당

일붕사 대웅전 동굴법당

일붕사 동굴 법당은 대웅전과 무량수전 두 곳이 마련되어 있다. 동굴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태껏 일반 사찰에서 보던 법당의 내부를 보는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동굴 특유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신비감은 직접 이곳을 들어와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 일붕사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들어가 보길 추천하는 곳이다.

03

1억년 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동리 함안층 빗방울 자국

우리나라 곳곳에는 오래전 공룡발자국 화석이 남아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그래서인지 평소 여행지로 찾아간 지역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은 몇몇 들어봤지만, 빗방울 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는 곳은 이번 의령 여행을 하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공룡발자국은 그렇다 쳐도 과연 빗방울 자국이 지금까지 어떻게 화석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잠시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일단 빗방울 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는 서동리 마을을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한다.

의령 서동리 마을은 의외로 의령군 내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의령군청 주변에 위치해 있다. 바로 의령 교회 앞 도로변에 빗방울 자국 화석이 남아 있었다. 그냥 얼핏 보면, 교회의 담장이나 석축의 일부라 생각하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곳이 빗방울 화석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안내 표지판과 비석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의령 서동리 마을에 남아있는 이 빗방울 자국 화석은 무려 1억 년 전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비가 세차게 내릴 때 진흙이 있는 땅 위에 빗방울 자국이 남게 되었고, 빗방울 자국이 있는 상태에서 그 위로 긴 시간 동안 퇴적물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대로 굳어져 암석이 되었는데, 위에 덮여 있던 퇴적암이 다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침식작용에 의해 벗겨지며 원래의 빗방울 자국의 면이 지금처럼 노출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설명은 꽤 자세하게 잘 되어 있었지만, 직접 해당 암석 위를 둘러보면 그냥 커다란 바위 덩어리로 보일 뿐 어느 것이 빗방울 자국인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일반인들은 쉽게 구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누구라도 알기 쉽게 해당 빗방울 자국이 있는 곳에 약간의 표시라도 해 두었으면 어땠을까…

04

Y자 형태의 신기한 구조를 가진

의령 구름다리

의령 빗방울 자국 화석이 있는 곳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의령천을 가로지르는 특이한 구조물 형태의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오리배가 떠다니는 의령천은 오래전부터 의령군 주민들의 쉼터와 휴식처가 되어주는 곳이었는데, 최근 구름다리가 놓아지고 경관조명이 새롭게 설치되면서 의령의 새로운 명물로 소개되고 있다.

보통 일반적인 구름다리나 출렁다리라 하면, 두 곳의 양쪽 끝 지점에 서로 다리가 연결되어 건너게끔 되어 있는 구조인데 반해, 이곳 의령 구름다리는 의령천이 흐르는 지형의 특성상 물길이 세 방향으로 갈라져 있어 다리의 끝단이 두 곳이 아닌 세 곳으로 연결되어 Y자 모양의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름다리이긴 하지만,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걸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거리는 출렁다리이기도 해서 다리 위를 건널 때면 꽤나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남산 둘레길

의령 구름다리의 규모는 총 길이 258m, 세 다리가 중간에서 만나는 지점의 가운데 주탑 높이는 48m에 달한다고 한다. 다리의 끝단이 세 곳으로 갈라져 있기에 당연히 세 곳의 지점 어느 곳에서든 다리 위로 접근이 가능하다. 가장 일반적인 진입 방향은 서동생활공원 및 수변공원이 있는 곳에서 육교와 연결되어 있는 구름다리로 진입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향은 충익사와 의병 박물관 뒤쪽으로 나 있는 남산 둘레길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머지 한 쪽은 덕곡서원 방면에서 연결이 된다. 최근 경관조명도 새로 설치되었다고 하니 가을밤 바람도 쐴 겸 근사한 야경을 즐기며 구름다리를 건너봐도 될 듯하다.


글, 사진 : ​ 손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