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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브로드웨이 자장가'

by원종원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브로드웨이 자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오페라의 유령>을 취재하기 위해 브로드웨이를 들렸던 적이 있다. 우리말 초연을 앞두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생각에 기자들에게 직접 공연을 보게 하는 것이 최선의 홍보 전략이라 생각했던 제작사의 초대 덕분이었다. 

 

뉴욕은 늘 방문객의 마음을 묘하게 흥분시키는 마술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공연의 이미지들로 가득한 빌보드 입간판이며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뮤지컬 작품들의 공연장들은 아직 상상만으로도 마음 설레게 되는 매력적인 광경이다. 공연을 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밤거리를 걸으며 얘기를 나눴던 기자들은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때 타임스 광장 위쪽으로 길게 걸려있던 이미지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하게 떠오르는 추억 속 풍경이다. 바로 ‘42번가’의 앙상블들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겐 2000년 브로드웨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 가득한 미소들이다. 

 

뉴욕은 인종들의 용광로라고 불린다. 각양각색의 인종과 문화, 예술, 라이프스타일이 한데 뒤섞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을 연출해낸다. 차이나타운, 베트남 식당이 즐비한 골목길, 이탈리아 거리, 할렘, 심지어 한국 음식점이 즐비한 코리아타운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그곳만의 명소요 최고의 관광자원이다. 가장 짧은 시간 세계 여행을 즐기려면 뉴욕으로 가면 된다는 농담도 있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렌트>를 보면 뉴욕을 ‘우주의 중심(center of the universe)’이라 노래하는 구절도 등장한다. 누구라도 뉴욕을 떠올리면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브로드웨이 자

그래도 가장 뉴욕다운 한 장소를 손꼽으라면 아마도 브로드웨이일 것이다. 원래 브로드웨이란 뉴욕의 거리 이름이다. 말 그대로 ‘폭이 넓은 길’인데, 우리의 여의도 같은 섬인 맨해튼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관통하는 가장 오래된 거리를 말한다. 애비뉴 중에서는 가장 길며, 맨해튼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단 하나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원래는 네덜란드식 명칭인 브레데 베그(Brede Weg)에서 처음 기인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의 진위야 어쨌든 오늘날 맨해튼의 가장 번화한 거리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온갖 상점과 차량, 인파로 늘 북적이는 트렌디 한 장소이기도 하다. 

 

공연 애호가들에게 브로드웨이는 세계적인 뮤지컬 공연 가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모든 곳이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많은 수의 전문 공연장이 밀집된 곳은 40번가(street)에서 54번가, 그리고 6번가(avenue)에서 8번가의 직사각형 구역이다. 그래서 이곳을 씨어터 디스트릭트(Theater District)라 부르는데, 말 그대로 뮤지컬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을 만큼 매력적인 장소다. 뉴욕 뮤지컬 공연 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42번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도 바로 이런 환경에 근간을 두고 있다. 활어처럼 펄떡이고, 살아 숨 쉬듯 꿈틀대는 뉴욕의 이야기를 그 모습 그대로 구현해내겠다는 제작진의 숨겨진 의도가 뮤지컬의 제목에서부터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브로드웨이 42번가>라 불리지만 원래 영어 제목은 <42nd Street>가 맞다. 브래드포드 로페스가 쓴 소설이 원작인데, 바로 그곳 맨해튼 42번가의 또 다른 이름인 ‘그레이트 화이트 웨이(Great White Way)’의 전설적인 히트 메이커이자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어떻게 새로운 뮤지컬 작품을 완성해 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가 이미 꽤 인기 있는 콘텐츠인 탓에 뮤지컬 등장 이전인 1933년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던 기록도 있다. 당연히 뮤지컬은 그 영화로부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1980년의 일이다. 훗날 <캐츠>의 고향이자 <맘마미아!>가 상연됐던 것으로 유명한 윈터 가든 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렸고, 그 후 마제스틱 극장과 세인트 제임스 극장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자그마치 3,486회 연속공연이라는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흥행 기록을 수립했다. 그야말로 ‘화려한’ 생명력과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누렸던 보기 드문 흥행작이었던 셈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브로드웨이 자

공연이 흥행하자 여러 뒷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유명한 일화 중에는 공연이 시작되는 날, 세상을 떠난 연출가 겸 안무가 고어 챔피언에 얽힌 내용도 있다. 공연 첫날, 가히 폭발적인 관객들의 환호로 11번의 커튼콜이 이어진 후 프로듀서인 데이빗 머릭은 무대에 등장해 막을 올리기 몇 시간 전에 챔피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쇼의 흥행을 위해 출연자와 기술 스텝, 심지어 챔피언의 애인에게까지 비밀로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순간 무대는 환호에서 정적과 충격으로 뒤바뀌었고, 다음날 뮤지컬의 흥행과 연출가의 극적인 죽음은 뉴욕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됐다. 결국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비정하고 심지어 냉정하기까지 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는 이 사건을 통해 가상이 아닌 현실임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 셈이 됐다. 그러나 비정함에 대한 자극이 지나쳤던 탓인지 <42번가>는 고어 챔피언의 마지막 유작인 동시에 데이빗 머릭 최후의 흥행작이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던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삼성영상사업단이 지금은 JTBC의 방송국 스튜디오로 다시 돌아간 호암아트홀에서 처음 막을 올렸었다. (원래 TBC 시절 방송 스튜디오였던 곳이니 되돌아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 그렇게 썼다.) 그때 화려한 신예로 등장했던 페기 소여 역의 임선애는 이제 중견급 뮤지컬 배우로 활약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무대는 여전히 꿈틀대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2016년 프로덕션에는 송일국과 이종혁이 매력적인 연출자 줄리안 마쉬로, 그리고 최정원과 김선경이 도로시 브록으로 나와 관록의 무대를 선보인다. 페기 소여로는 예쁜 외모만큼와 출중한 가창력의 임혜영이,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빌리 로러 역으로는 에릭이 합류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함께 꾸미는 역동적인 탭댄스 장면은 이 뮤지컬의 백미다. 특히, 늘씬한 무용수들의 화려한 탭댄스는 꽤 만족스러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2000년 브로드웨이 앙코르 공연에서처럼 이번 우리말 공연에서는 앙상블들의 늘씬한 각선미를 포스터로 활용하고 있는데, 스타급 출연진 못지않게 전체 프로덕션이 꾸미는 안무씬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탓 아닐까 추측해본다. 특히, 대표적인 쇼 스토퍼인 ‘브로드웨이의 자장가’는 언제 다시 들어도 반가운 이 뮤지컬의 명곡이다. 종연이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둘러 공연장을 찾아보길 바란다.


우리말 앙코르 공연의 제작과정을 재미있게 엿볼 수 있는 홍보 동영상도 있다. 2016년 우리말 앙코르 공연을 위해 만든 메이킹 필름 형식의 영상이다. 


42번가의 압권은 단연 화려한 군무다. 막이 오르면서부터 객석을 압도하는 풍경이 이채롭게 펼쳐진다. 

사진제공 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