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뼈로 미지의 시간을 복원하는 『단단한 고고학』

[라이프]by 예스24 채널예스

『단단한 고고학』 김상태 고고학자 인터뷰

김상태 고고학자

700만 년 전, 영장류의 일부가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와 처음 두 발로 걸으면서 시작된 인간의 진화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등을 거쳐 현생 인류로 이어졌다.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몸을 덮고 있던 털이 사라졌고, 발가락이 짧아졌으며, 뇌의 크기가 세 배 이상 커졌다. 그리고 도구도 정교해졌다.

'도구의 발전'을 중심으로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구석기 고고학자'이다. 이들은 단단한 땅속에 묻혀 있던 돌과 뼈를 꺼내서 원시 인간의 생각을 읽어 내고 그들의 삶을 복원한다. 또한, 그 과정은 인간의 신체적 변화와 그에 따른 도구 생활의 변화를 추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구와 함께 발전한 인류의 진화를 추적한 『단단한 고고학』은 땅속 깊이 묻혀 있던 고인류의 역사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작가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고역사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총 3층으로 된 박물관 상설 전시실 중 1층의 선사·고대관과 중·근세관의 전시와 유물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제주박물관 등에서 일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구석기 시대 도구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입니다. 제주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을, 서귀포시에 있는 '생수궤'라는 동굴 유적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는 전공은 구석기 고고학자이고 직업은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군요.


어떻게 구석기 고고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인간의 진화에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 진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강원대학교 역사 교육과에 '고고학반'이라는 스터디 그룹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고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힘으로는 구할 수 있는 진화 관련 자료가 늘 부족했습니다. 그때 옆 과에, 문화인류학과에 진화를 전공한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그분을 무작정 찾아가서 제가 직접 만든 주먹 도끼를 선물로 드리면서 "이걸  공부를 하고 싶은데 자료를 좀 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사실 굉장히 조마조마했습니다. 화를 내고 거절하시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은 굉장히 반가워하시면서 제게 책을 여러 권 내주셨습니다. 그때 받은 책들은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국립박물관 학예 연구사가 된 뒤 교수님을 찾아뵈었을 때 처음에 제가 드린 주먹 도끼가 서가에 잘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가 고고학을 처음 경험한 순간의 기억입니다. 다만, 한국 학계에는 진화 관련 자료가 부족하고 연구자도 많지 않습니다. 여러 조건 때문에 진화보다는 석기 위주의 발굴이 고고학 연구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구석기 시대 도구사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떠오릅니다. 일견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사실은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닐 테죠? 고고학에는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까요? 

현장에서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아주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하루 종일 땅을 파야 하는데, 그때 물집이 생기고 발굴이 끝나면 여러 번 피부도 벗겨지는 괴로움이 따릅니다. 동굴 유적 발굴 현장에서는 뜨거운 햇볕은 피할 수 있지만 엄청나게 많은 모기에 물어뜯기기도 합니다. 발굴하는 내내 아무리 모기향을 피워도 모기들이 도망가지 않아요. 정반대로 한겨울에는 내복을 두 겹, 세 겹 입어도 추위를 견디기 힘듭니다. 땅은 또 얼마나 꽝꽝 얼어붙었는지, 평소에는 사흘이면 팔 수 있는 깊이에 두 배, 세 배의 시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좋은 유물을 발견하고, 또 그 유물을 해석해서 보고서를 발표하고 나면 아무리 힘들었어도 즐겁고 뿌듯했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땅 속에는 무수히 많은 돌들이 묻혀 있는데, 그중에서 인간이 사용했던 석기와 그냥 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돌과 석기가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굉장히 일반적인 질문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은 돌은 자연의 결과물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환경과 시간이 그 돌을 자르고 다듬어서 현재의 형태로 만들었죠. 하지만 석기는 어떤 의미와 의도를 담아 형태를 변형한 돌입니다. 따라서 절단면의 집중도, 날카로운 면의 각도, 혹은 전체 형태상의 비례나 균형 등을 보고 석기와 돌을 구분합니다. 물론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도 꾸준한 연구와 학습을 통해 둘을 구분하는 눈을 단련시킵니다.

여기에서 구석기인들이 돌에 의미와 의도를 담아 뭔가를 만들었다는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구석기 시대의 도구에 남아 있는 그들의 의도를 짐작하여 수십만,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삶을 관찰하고 복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구석기는 바로 원시 인류가 남긴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자 이전의 기록인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직접 발견한 석기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석기 시대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 1만 년 전입니다. 상식적으로 1만 년 이상 지난 시간의 흔적을 직접 마주하는 일은 살면서 겪기 어려울 것 같지요? 그런데 때로는 아주 우연히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려 볼까요?


한번은 밀양에서 가까운, 흔히 '영남 알프스'라고 부르는 고원 지대로 친구들과 겨울 산행을 갔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등산할 수 있는 천왕산 코스였죠.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서 손을 씻으며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씻고 있는데 눈앞에 조금 이상한 돌이 있는 거예요. 천천히 주워서 보니, 형태가 후기 구석기 시대의 돌날과 똑같았습니다. 마침 그날 일행 중에 구석기 공부를 공부하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서 보여줬더니 "에이, 산꼭대기에 무슨 석기가 있어. 위석기겠지"라고 했어요. '위석기'란 석기의 형태와 특징을 가진 그냥 돌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때로 자연은 우연히 석기와 똑같은 돌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주변에서 석기로 추정되는 돌을 몇 개 더 수습해서 하산했습니다. 곧바로 연구실로 가서 돌들을 세척했는데, 갈수록 석기인 게 확실해졌습니다. 그해 봄이 되자마자 다시 올라가서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생각처럼 일대가 진짜 구석기 유적이었습니다. 이후 체계적으로 조사해서 '천왕재 유적'을 학계에 보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천왕재는 한반도의 구석기 유적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유적이자, 석기를 만드는 석재가 풍부한 석재 원산지 유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단단한 고고학』은 어떤 책인가요?

지난 20여 년간 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여러 관람객들과 교감하면서 느낀 답답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박물관에 가면 처음 보게 되는 것이 구석기실, 혹은 구석기 진열장입니다. 그런데 거길 지나가는 관람객은 대개 눈길 한 번 삭 주고 그냥 휙 가버리세요. '아, 여기 돌이 있구나' 이렇게 하고 지나갑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사람들은 저 돌에 얼마나 큰 의미와 중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구나. 내가 그걸 이야기해줄 수 없을까?'라고 고민했습니다. 

이 책은 대체로 박물관에 온 관람객들이 가장 재미없어 하는 구석기 시대를 재미있게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처음으로 두 발로 일어선 순간, 인간이 가장 인간답지 않았던 시기에 작은 돌조각 하나를 집어 든 일에서 시작하여 바로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만든 석기에, 그들이 살던 마을 터에, 그들이 동굴 속에 그린 벽화나 돌에 새긴 빗금에 남아 있는 고인류의 목소리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단단한 고고학』을 출간하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책을 쓰면서 제가 평소에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감정 중 하나를 더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넓은 우주에서, 그중에서 지구에서, 이 지구에서도 사람으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다행이고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저하고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책을 읽은 분들이 박물관에 와서 구석기 전시실을 지나갈 때 전과는 달라진 눈빛으로 석기들을 바라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는데, 그런 상상을 하는 시간 자체로 즐겁고 뿌듯합니다.

*김상태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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