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는 ‘거짓말하는’ 어른이다

[컬처]by 예스24 채널예스

『거짓말하는 어른』 저자,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인터뷰

동화작가는 ‘거짓말하는’ 어른이다

2002년부터 14년여간 우리 아동문학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비평 활동을 이어온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해 동화작가로서 아동문학의 끈을 쥔 저자는 『창비어린이』 『어린이와문학』, 『어린이책이야기』, 『아침햇살』, 『열린어린이』와 같은 어린이문학 관련 주요 잡지에 평론을 발표하며 아동문학 비평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창비어린이문학상, 비룡소문학상, 사계절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 심사위원, 국립아동청소년도서관 어린이자료분과 전문가 위원을 맡기도 한 그는 현재 서울예대, 숙명여대, 한신대 등에서 아동문학 창작과 이론을 강연하고, 창비 팟캐스트 ‘서천석의 아이와 나’에서 어린이책의 매력과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첫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을 펴낸 김지은 저자에게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많은 분들이 기다린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이 출간됐습니다. 2002년 평론가로서 데뷔한 이후 드디어 첫 책을 내셨는데 그 소감이 궁금합니다.

 

현장 비평은 새로 나오는 책과 탄생 무렵의 호흡을 같이 하는 일이어서 아침 우유를 챙기거나 이불을 펴고 개는 것 같은 기분으로 메모를 하고 원고를 썼어요. 오늘 책 읽기를 놓치면 내일은 그 책의 신선한 느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긴장을 유지한 덕분에 계속 읽을 수 있었어요. 처음 저 자신에게 했던 약속이 꼬박꼬박 책방 나들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읽으려고 책방 사이트와 실제 책방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는데 좋은 동화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던 2000년대 중반 무렵에는 책장을 넘기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어른이 동화를 더 많이 읽고 아이와 같이 읽어 주면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은 분명히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른 독자들에게 드리는 동화에 관한 글을 열심히 썼지만 동화는 아이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통념 때문에 그 글이 많이 읽히지는 못했어요. 책으로 나오게 되었으니 이제 한 분이라도 더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운이 납니다.

 

『거짓말하는 어른』은 동화, 즉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을 읽고 쓴 평론입니다. 동화의 독자는 어린이지만, 동화 비평의 독자는 어른이 되는 셈인데요. 대상의 불일치로 인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화 비평을 해 오시면서 이에 대해 갖게 된 기준이 있으신지요.

 

책은 수많은 자아들의 숨겨진 은신처라고 생각해요.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비밀의 풍경을 큰 소리로 자랑하지 못하는 모순된 운명을 가졌습니다. ‘내가 이런 멋진 걸 썼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그 은신처는 신비롭게 여겨지지 않으니까요. 저처럼 서평을 쓰는 사람은 그런 비경 속의 숨은 자아들을 발견하는 직업이고 독자와 만나게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화 비평을 쓰는 사람은 이 비평의 독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해요. 동화의 1차 독자는 어린이인데 어린이가 읽을 책을 선정하고 구매하는 것은 어른이기 때문에 어른을 향해서 글을 쓰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내가 누구의 눈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마음은 이렇게 정리했어요. 어른을 위해 써서 그들이 동화를 사랑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거죠. 어른에게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라느라 바빠서 그 무렵의 어린 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성장하지 못했어요. 어른이 된 뒤에 동화를 읽으면서 과거의 어린 자신을 만나 고개 끄덕이고 다독여 주게 됩니다. 그렇게 얻은 따뜻한 마음은 지금 자라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시선을 바꾸어 놓고 더 좋은 양육자, 더 가까운 어른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거짓말하는 어른』을 읽다 보면, 철학을 전공하고 동화작가로 창작을 하셨던 선생님의 경험이 평론 글에도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계기로 동화작가가 되었고, 아동문학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요. 

 

저는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동화의 독자가 아니었던 순간이 없는, 좀 예외의 어른입니다. 남들이 『데미안』을 읽는 고등학생 때도 대학 시절에도 동화를 읽고 있었어요. 동생이 어려서 동화책이 계속 집에 들락거렸는데 그중에 마해송 선생의 『떡배 단배』라거나 이원수 선생의 『꼬마 옥이』, 차경아 선생이 번역하신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나 『짐 크노프』 시리즈, 에이브 시리즈의 걸작들이 있었고요. 매력적이지만 모호했던 그 책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제 주위의 철학을 전공한 몇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철학과에 갔습니다. 면접을 하면서 “멋진 동화를 쓰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어린이는 마음껏 놀아야 하는데 그런 의도라면 철학을 공부하는 게 별 도움이 안 되겠다’는 선문답 같은 교수님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제게 화두가 되기도 했어요. 습작 동화를 들고 교내 문학동아리에 갔다가 “여기는 시와 소설만 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는데 그런 가운데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재미있었고 면접장의 예언과 달리 동화를 쓰겠다는 의욕을 부추겼어요. 결국 철학과 동화는 모두 질문이 낳은 이야기이고 자유로운 질문에 능한 것은 어린이니까요. 철학과에서는 ‘심리철학’과 ‘어린이를 위한 철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동화를 쓰고 읽었습니다. 평론은 그 연장에서 시작한 일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어른』이라는 책 제목이 참 매력적입니다. ‘거짓말하는 어른’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까닭, 거기에 담긴 뜻이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지난 몇 년간 이곳의 어른인 것이 못 견디게 부끄럽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가슴 아파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TV를 켜고 어른들의 입을 보고 있으면 온통 거짓말로 가득했어요. 그들이 진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줄줄이 거짓말인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 줘야 하는지 답이 보이지 않았어요. 동화를 쓰는 분들도 무기력해졌고 읽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동화를 쓰는 우리가 할 일은 또 다른 의미의 ‘새롭고 힘 있는 거짓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이는 거짓말의 선천적인 애독자들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많기에 책 속의 이야기를 진짜처럼 믿고 “거짓말을(이야기를) 더 내놓아 달라!”고 요청하죠. 재미있고 슬프고 놀라운 거짓말의 힘, 동화의 힘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뛰어들 용기를 얻습니다. 그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는 동화작가는 ‘거짓말하는 어른’이고 ‘어른들의 거짓말’이 넘치는 지금이야말로 동화작가가 자신의 소명을 다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해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특히 어린 시절 읽는 동화는 왜 중요할까요?

 

어른이 살기 힘든 시대는 어린이에게 더욱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미 처절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란다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팽팽하고 아슬아슬한 분투의 과정입니다. 그런 어린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 이웃과 가족일 텐데요. 현대사회는 그런 관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자신이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세계를 두려워하며 질문과 도전의 용기를 얻지 못하죠. 책은 어린이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고 응원하는 상상 친구입니다. 어릴수록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많이 다른 상대방의 이야기도 자신의 일처럼 믿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주인공의 모험은 자신의 모험이라고 여기고요. 따라서 책을 많이 읽은 어린이는 공감의 폭이 넓은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를 아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거짓말하는 어른』을 읽다 보면,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아동문학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어요. 아동문학에 관심을 가진 성인 독자들에게 추천하실 만한 책이 있다면요?

 

어른이 좋아하는데 어린이가 좋아하지 않는 동화는 있지만, 어린이에게 좋은 아동문학 작품은 거의 예외 없이 어른들에게도 좋은 것 같아요. 제 책에 언급된 작품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하는 책입니다.

 

책에 없는 작품을 이야기해 볼게요. 아동문학의 역사가 깊은 다른 나라 작품 가운데 다니엘 페낙의 『늑대의 눈』,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 데이비드 알몬드의 『스켈리그』, 페트릭 네스의 『몬스터 콜스』,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 다카도노 호코의 『진지한 씨와 유령선생』, 구드룬 맵스의 『루카루카』, 오카 슈조의 『러브레터야, 부탁해』 같은 작품은 어른에게 추천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은 책입니다. 우리나라 창작 동화 가운데 권정생, 이주홍 선생 등의 초기 걸작들은 잘 아실 것 같고, 소설가 손창섭 선생이 『싸우는 아이』라는 동화를 썼다는 건 모르는 분도 많은데 상당히 감각적인 작품입니다. 동화는 세계관이 보수적이고 계몽성이 강해서 거부감이 든다, 구성과 문장의 수준이 낮다는 편견을 가진 분들께는 요즘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한번 읽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해원의 『오월의 달리기』, 장성자의 『모르는 아이』, 천효정의 『아저씨, 진짜 변호사 맞아요?』, 김수빈의 『여름이 반짝』, 김혜정의 『우리들의 에그타르트』, 최상희의 『델 문도』, 최영희의 『첫 키스는 엘프와』, 윤혜숙의 『밤의 화사들』 같은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읽어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그리고 변함없는 추천의 목록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이나 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 전권처럼 알려진 거장의 작품을 차곡차곡 다 읽어 보는 거죠.

 

그리고 『거짓말하는 어른』에서는 그림책 서평을 거의 다루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창작그림책이야말로 어른에게도 여운이 긴 책이고 우리 창작그림책이 하루가 다르게 예술적 폭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이야기를 따로 쓸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소윤경의 『콤비』, 전미화의 『미영이』,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폭포의 여왕』, 피터 시스의 『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어린이들을 위해 거짓말하는 어른들, 즉 동화작가들이 앞으로 ‘이런 이야기는 꼭 써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으신지요.

 

작가가 먼저 걷고 독자가 따라오는 것이 이야기의 길이기 때문에 작가가 용감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좁은 통로에 갇혀 헤매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자는 그 통로를 벗어날 출구를 발견하기 위해서 동화를 읽는 건데 말이죠. 우리는 좀 더 용감한 이야기로 나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현실은 빠짐없이 경쟁의 현장으로 소급 당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평원을 달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나와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차별과 혐오의 벽을 넘는 이야기를 동화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히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가진 부모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책 읽기는 시간과 양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을 접하는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늘려 주세요. 아이가 게임만 하고 책을 잘 안 읽으니까 책을 사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재미있는 책이 곁에 없고 다른 일에 쫓기니까 책을 안 읽는 것일 수도 있어요. 책만 펼쳐 들면 “숙제했니?, 학원 가려면 어서 나가야 된다.”는 말을 들어서 책을 못 보게 된다는 아이들도 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생기면 아낌없이 칭찬하고 응원해 주시고 엄마와 아빠, 아이가 나란히 앉아 각자 동화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아요. 아이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시기를 지내고 나면 대부분 아이들의 책에서 관심을 놓고 책 읽으라는 잔소리만 시작하게 되는데요. 독서 습관에 제일 좋은 건 엄마도 아빠도 내가 읽는 책을 같이 읽고 있다는 장면 그 자체입니다. 지금의 부모세대는 유년기에 동화를 충분히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에요. 아까운 보물을 뒤늦게 발견하는 기분으로 아이의 책을 같이 읽어 보세요.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 모두 아직 어린이이고 동화는 분명히 나와 우리 아이를 함께 위로하고 격려해 줄 테니까요.




동화작가는 ‘거짓말하는’ 어른이다
거짓말하는 어른

김지은 저 | 문학동네

2002년부터 14년 여 간 우리 아동문학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비평 활동을 이어온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이 첫 평론집을 펴냈다. 그가 남긴 서평과 총론은 아동문학 작품론과 작가론을 넘어 문학작품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예리한 시선으로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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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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