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엄마와 딸, 단둘이 남미 여행을 간다면?
『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 조헌주, 이명희 저자 인터뷰
여행하다 보면 24시간 붙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동안 몰랐던 것까지 다 알게 될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엄마랑 대화가 많아졌어요. 그리고 솔직하게 다 드러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2021.05.31)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의 조헌주 저자는 20대 초반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이때의 좋은 추억은 힘들 때마다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는 프로그램이 종영할 때마다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 여행은 치열하고 조급한 삶에 잠시나마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기회이자 휴식이었다. 20대의 여행엔 항상 동행자가 있었다. 각자의 삶이 바빠지는 30대에 들어서면서는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길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문득 느껴지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엄마’였다. 생각해보니 그토록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엄마와 단둘이서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위를 보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막연히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 생각하며 시간이 흐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저자 역시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계속 미루던 ‘언젠가’는 본인이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엄마와 단둘이 가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지로는 가까운 동남아나 우아하게 다녀올 수 있는 유럽 등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엄마의 의견으로 조금은 난도가 있는 남미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엄마와 저자는 팔짱을 서슴없이 끼고, 함께 쇼핑하러 다니며,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말하며 대화를 하는 그런 모녀 관계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빠듯한 살림에 4남매를 키우느라 바쁘게 사신 엄마와 저자는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저자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마음속의 생각을 풀어 놓기보다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서먹한 관계인 엄마와 24시간을 붙어 있어야 한다니 처음엔 여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등 남미 8개국 여행 후엔 어색했던 모녀 관계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헌주: 안녕하세요. 방송작가와 뮤지컬 강사 활동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해외여행을 다녔었는데요.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느지막한 30대 중반의 나이에 엄마와 단둘이 난도가 높다는 남미 자유 여행을 다녀온 딸 조헌주입니다.
이명희: 전업주부로 4남매를 훌륭히 키워내고 여유 없이 살다가 인생은 60부터란 생각으로 신학, 글쓰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따라지 여행자 엄마 이명희입니다.
제목부터 굉장히 공감이 되어요. 친구 같은 엄마와 남미에 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은데 서먹했던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계기가 궁금해요.
조헌주: 제가 영어 뮤지컬 학원을 운영했었어요. 그때 엄마가 차량 운전을 해주셨는데, 어느 날 저녁에 수업을 하고 있는데 연락을 받았어요. 받으니 아버지 전화였어요. 엄마가 학원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으니까 보험회사에 전화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차는 폐차를 해야 할 거 같다고 하셔서 얼마나 큰 사고길래 폐차를 말씀하시나, 엄마는 괜찮으신가 해서 가슴이 쿵쾅거려 수업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중간에 양해를 구하고 집에 갔어요. 가보니 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계시더라고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고요.
엄마 말씀을 들어보니 집에서 차를 타고 나가시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급발진이었대요.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서 놀란 엄마는 순간적으로 핸들을 틀어서 차량을 멈췄는데 거기가 전봇대와 건물 사이의 공간이었어요. 앞에 있던 차량 두 대는 박았죠.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건물에 부딪혔으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요. 그때 정말 학원을 그만하라는 신호인가 했어요. 그런데 문득 엄마랑 추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하시고 싶은 게 있으신지 물어봤더니 외삼촌이 계신 파라과이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셔서, 저 아니면 못 가보시겠다는 생각에 남미 여행을 계획하게 됐어요.
많은 분들이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건강이 걱정돼 포기하시더라구요. 출발 전 ‘이런건 미리 준비하면 좋다’하는 팁이 있을까요?
조헌주: 여행할 때 건강이 제일 걱정이죠. 특히나 장기 여행에서는 더욱요. 출발 전에 무조건 건강검진은 필수로 받고요. 보험도 꼭 들어놓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게 비상약을 챙겨 가시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여행 가서 아플 땐 우리가 바로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거든요. 장기 여행을 가다 보니 아무래도 약을 충분히 챙겨갔던 거 같아요. 그리고 황열병 주사도 맞고, 고산병 약은 물론이고 그 외에 아픈 걸 대비해서 넉넉하게 가져갔어요. 그리고 여행 전에 조금씩 체력을 비축해 놓으면 좋을 거 같아요. 여행도 고도의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니까요.
두 분이 3개월 동안 여행을 하며 굉장히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무엇인가요?
조헌주: 남미 여행 시작부터 에피소드가 많았던 거 같아요. 미숫가루를 챙겨가겠다는 엄마 덕분에 공항에서 오해받고 기다리다 나갔던 일도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멕시코 칸쿤에서 차를 대여해서 핑크라군 갔을 때가 아닌가 싶네요. 엄마가 학원 차량 몰던 운전 실력을 자랑하며 운전을 했는데 타이어가 펑크난 채로 달렸던 일, 바퀴가 모래사장에 빠져서 안 나오고, 차 범퍼가 나가고! 그때 단계별로 위기를 맞았죠. 그래도 지나고 보니 힘들고 짜증 났던 기억이 가장 큰 추억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명희: 우유니 소금사막이 가장 기억이 나요. 자연을 좋아하는데 산 위에 소금 사막이 있는 게 신기했고, 맑은 물 안에 소금들이 수정처럼 얽혀있는 게 꼭 다이아몬드 같았어요.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께 가장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 한 곳씩만 꼽아주세요.
조헌주: 랜드마크 같은 여행지는 우유니 사막과 마추픽추를 들 수 있겠지만, 저는 코파카바나의 티티카카 호수를 추천하고 싶어요. 그냥 힐링이 되었던 곳이에요. 아마도 제가 그때 좀 지쳐 있었나봐요. 남미 여행은 다른 여행지처럼 우아하게 다닐 수 있는 코스는 아니라, 쉽진 않잖아요. 그 가운데 코파카바나는 마음의 여유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어요. 예쁜 풍경도 물론 한 몫 했고요.
이명희: 아무래도 남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마추픽추일 거 같아요. 산 위에 있는 마을이 너무 신기했고, 그걸 보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지어 있는 여행자들의 행렬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인 거잖아요. 마추픽추에 딱 올라서서 구름이 마실을 다니는 듯한 풍경은 정말 기가 막혔죠. 날씨가 좋아서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서먹했던 모녀 관계가 여행을 다녀온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해요.
조헌주: 예전에는 어떤 사건이나 일이 있어도 제가 판단하고 처리했었어요. 제가 독립하고 따로 산 지 15년이 넘어서 엄마와 대화를 할 일이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여행하면서 엄마한테 미주알고주알 다 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여행하다 보면 24시간 붙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동안 몰랐던 것까지 다 알게 될 수밖에 없죠. 그러면서 서로의 삶에 대해 더 존중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엄마랑 대화가 많아졌어요. 그리고 솔직하게 다 드러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이명희: 바늘과 실이 되었다고 하면 될까요? 아무래도 우리가 겪었던 공통의 경험이 있으니 갔던 장소나 만났던 사람들 얘기를 아직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요. 그리고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된 거 같아요.
코로나19 상황이 풀리면 모녀가 함께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까요?
조헌주: 남미보다 더 난도가 높은 아프리카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아, 동남아도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칸쿤 바다를 보면서 올인클루시브 호텔에서 엄마가 “좋다, 너무 좋다”라고 여러 번 말했던 게 기억이 나거든요. 동남아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는 곳도 좋을 것 같아요.
이명희: 멕시코 칸쿤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제가 물을 좀 좋아하거든요. 이제는 편안하게 멋진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고 싶어요.
*조헌주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통해 나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글을 쓰며 그 깨달음을 나누고 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그녀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저서로는 『자존감 있는 글쓰기』, 『무작정 떠나는 산티아고, 나답게 뜨겁게』, 『여행, 가장 나답게』, 『혼자 만화영화 좀 보는 게 어때서?』, 『어쩌다, 해방촌』 등이 있다. SBS [좋은 아침], [손숙·배기완의 아름다운 세상], KBS [장밋빛 인생], [더 뮤지션], [스타 오락관] 등 방송 대본에서부터 칼럼, 뮤지컬 대본, 에세이 등 종횡무진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며 활보하고 있다.
*이명희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져,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습관으로 수필작가가 되었고, 예술인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증평 문인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딸과 함께한 자유 여행으로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상황과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여행하며 살고 싶은 바람이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