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못할 마음의 산은 없다
삶에 지친 나를 위해 꼭 가봐야 할 스위스 체르마트의 마터호른
체르마트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높이 4,478m의 마터호른으로 유명한 산악 마을이다. 이탈리아어로 몬테 체르비노, 불어로는 몽 세르뱅이라 불리는 마터호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사이 펜닌 알프스에 있다. 마터호른이 내려다보고 있는 마을이 체르마트인데 이곳에서 바라볼 때의 모습이 가장 장엄하고 멋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르마트가 있는 스위스 남서쪽에 위치한 발레 주는 로마 시대부터 유럽의 남과 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체르마트는 긴 일조 시간과 온화한 기후로 인해 산비탈마다 포도밭으로 가득해 스위스 제일의 와인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터호른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로고에 등장해 체르마트나 마터호른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 모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유럽의 지붕이자 남과 북 교통의 요충지 체르마트
체르마트는 청정지역으로 화석 연료 차량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대부분의 여행자는 체르마트로 들어가는 태쉬 역 주변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운다. 체르마트에 묵는 동안 필요한 짐만 꺼내 빨간색 열차를 타면 스위스 설산의 중심에 박힌 보석 같은 마을에 들어선다. 체르마트 역 광장으로 나오면 놀이동산에 있는 기구처럼 생긴 사각형 전기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체르마트는 워낙 작은 마을이 라 굳이 전기 자동차를 타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도보로 이동하는 편이 낫다.
도착한 시간이 이미 오후 2시를 지나 고르너그라트 정상에서 마터호른을 여유 있게 감상하려면 점심을 거르고 우선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올라가는 산악 열차를 타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산악 열차 정류장은 바로 앞에 있어 편했다. 표를 사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려다가 언젠가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진이 생각나 식사와 함께 커피도 잠시 뒤로 미뤘다. 잠시 후 도착한 고르너그라트 열차도 빨간색이었다.
열차에 탄 사람 중 대부분이 스키나 스노보드 복장을 하고 장비를 안고 있었다. 겨울 스포츠인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이 매우 많을 것을 예상했지만, 이 산악 열차를 탈 거라는 생각은 사실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어딘가에 스키장이 따로 마련돼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상까지 몇 개의 역에서 멈추며 가는데 열차에서 내리면 바로 슬로프가 시작된다. 자신의 실력에 맞춰 출발하는 곳을 정하고 내리면 되는데 대부분은 정상에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약 40분 정도 걸려 올라가는 여정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통유리로 된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설경이 한순간도 여행자의 눈을 놓아주지 않는다. 점점 가까워지는 마터호른의 웅장한 모습에 여기저기 셔터 소리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우리에게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은 유럽여행 중이던 1878년 체르마트에 방문했다. 그가 찾은 때에는 아직 산악열차는 없었고 도보로 등반해야 했다. 17명의 산악 가이드를 포함해 약 200여 명이 등반에 참여했는데 22배럴의 위스키와 154개의 우산 등을 갖고 올랐다고 한다. 1881년에 출간된 여행 기록인 <어 트램프 어브로드>에 레펠베르크 등반 이야기를 실었고 마터호른을 ‘산악의 나폴레옹’이라고 표현했다. 앞발을 높이 들어 올린 말에 타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떠올리니 일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터호른이 보이는 초록 들판에서 캠핑도 좋아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터호른과 그 주변 봉우리의 모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단 하루뿐인 여정에 혹시라도 날씨가 나빠 마터호른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기우일 뿐이었다. 구름이 거의 없는 화창한 날씨에 마터호른의 아름다운 풍광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전망대 주변에서 한참 사진을 찍고 내려와 정상에 있는 호텔에 딸린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마터호른이 보이는 노천에 앉아 덜덜 떨면서 마셨지만 지금도 그 순간의 커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몸을 녹이고 봉우리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붉은 기운이 하늘에 가득해졌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전망대로 올라가 마터호른이 빨갛게 변해가는 최고의 순간을 카메라와 눈, 그리고 가슴에 담았다. 돌아가 캔버스에 옮길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했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붉은 기운도 모두 어둠으로 바뀐 다음 마지막 열차를 탔다.
다시 체르마트를 오게 된다면 그때는 여름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년설이 쌓인 마터호른이 보이는 초록 들판 어딘가에서 텐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책도 읽고 싶었다. 마터호른과 쏟아지는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 서면 어떤 걱정도 없고 열정이 막 솟아오를 것 같았다. 삶에 지친 친구나 가족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는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히크 메트
글ㆍ사진 | 배종훈
배종훈 저 | 더블북
책에는 저자가 직접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도시들 풍경과 역사, 사유가 노트북 자판기를 꾹꾹 두드려 쓰였으며 원색적인 색감의 붓칠로 그림들이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여행지의 파란 하늘을 모티브로 연신 눌러대는 셔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풍광 사진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텅 빈 마음을 충만하게 채운다. [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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