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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여름 햇살 아래 소년은 푸르다 – 안주영 감독

by예스24 채널예스

영화 <보희와 녹양>를 만든 안주영 감독

영화감독 안주영

모든 일이 조심스럽고 어려운 소년 보희. 부당한 것들엔 맞서고 스스로 작아지는 것들 옆에선 기댈 어깨가 되어주는 소녀 녹양. 같은 병원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보희(안지호 분)와 녹양(김주아 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단짝 친구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보희는 그를 찾아볼까 말까 망설이고, 거칠 것이 없는 녹양은 함께 만나러 가자며 손을 내민다. 그렇게 보희와 녹양의 ‘파랑새 찾기’가 시작된다.


<보희와 녹양>(2018)을 보고 심장이 뛰었다. 이토록 성숙한 영화를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결핍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픔을 바탕으로 타인의 사정을 돌아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눈부시게 푸르른 햇살(綠暘) 아래 놓인 통증을 무심한 듯 선연하게 포착해 내는 작품. <보희와 녹양>은 내게 위로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지?

영화 <보희와 녹양>의 한 장면

단편 <물고기는 말이 없다>(2012), <옆 구르기>(2014), <할머니와 돼지머리>(2016)에서 장편 데뷔작인 <보희와 녹양>까지. 안주영 감독(이하 안주영)의 영화 속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금붕어를 따라가는 사회 초년생, 집요하게 연습해서 옆 구르기에 성공하는 중학생, 그리고 앓아누운 할머니를 위해 금지된 요리인 ‘돼지머리’를 찾아 나선 손녀. <보희와 녹양>에서 그 대상은 사라진 아버지다.


“누구에게나 강박이 있다. 주변에서 해야 된다고 말하니까 추구하게 되는 것들. 주인공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가 규정한 목표를 좇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의 영화세계에서 주인공이 추구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이 삶의 다음 과정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더 의미 있다. <물고기>에서 사회 초년생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을 배운다. <옆 구르기>에서 중학생은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를 만난다. <돼지머리>에서 홀로 남겨진 손녀는 폭력적인 세계를 버텨낼 수 있는 강단(剛斷)을 익힌다.


소년-보희(boy)의 이야기가 사회가 관습적으로 상상하는 그 흔한 ‘소년들의 아버지 찾기’와 달라지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소년은 ‘아버지’라는 롤모델과 그 이름이 상징하는 ‘남성성의 신화’를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안에서 그만이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다른 단계로 올라선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데, 보희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남자아이는 아버지가 있어야 제대로 자란다’는 식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기 때문이다. 보희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을 거다. 그런 말들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했고,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그렇게 보희가 찾은 아버지는 동성애자다. 사회가 승인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스테레오타입과는 사뭇 다른 존재. 이제 보희는 새로운 질문과 만나게 된다.

소년이 가슴에 품게 된, 세계

영화 <보희와 녹양>의 한 장면

“원래는 아버지를 못 만난다는 설정이었다. 그러다 아버지를 찾기는 찾는데, 그가 사라진 이유가 너무 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아주 개인적인 사정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아버지도 스스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를 겪었으면 했다. 보희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랐다.”


<보희와 녹양>은 한 남자가 한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곧 이 장면이 보희와 녹양이 극장에서 보고 있는 영화의 엔딩이라는 걸 알게 된다. ‘영화 속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보희. 이 장면은 이후 보희가 아버지를 찾은 뒤의 상황과 겹쳐진다. 보희는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지켜보다가, 그의 남자친구가 아버지에게 다가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돌아선 보희는 한강으로 향한다. 그리고 강으로 걸어들어 간다. 그 모습이 바로 영화의 시작 장면에 등장했던 남자의 뒷모습이다. 관객들은 불안하다. 그는 아버지의 정체성 때문에 ‘영화 속 영화’의 남자처럼 죽음을 선택하려는 것인가.


영화는 보희가 물에 잠기자 녹양, 어머니, 성욱 등 그를 아끼고 돌보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희를 안아주는 판타지 장면이 이어진다. 컷이 바뀌면 한강에서 헤엄을 치는 보희가 보인다. 첫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과 달리 그는 미소를 머금고 찰랑거리는 한강의 물결을 즐기며 둥둥 떠간다. 그는 달라졌다.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안주영은 이 장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보희에게 수영은 ‘자생능력’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위기에 닥치면 발휘하게 되는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희가 그런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물론 그의 옆에서 서로 돌봄을 주고받았던 이들 덕분이다.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 보희를 위해 기꺼이 ‘주먹 쥐고 일어서는’ 녹양, 자기 하나 챙기기도 힘들지만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려는 성욱. 보희는 상실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늘 함께했던 이들로부터 삶을 배운다.


보희는 보고 따라할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에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사정 앞에서 잠깐 멈춰 서서 질문하고 스스로의 답을 찾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 ‘내’가 아니라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형편과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바로 그 세계를.

찰나이기에 소중한, 지금 내 곁의 사람들

안주영 감독(왼쪽)과 안지호 배우

영화에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게 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좋으면서도 성에 차지 않고, 이해가 가면서도 어쩐지 다른 식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장면. 그 중에 하나가 보희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직전 녹양을 안아주는 장면이었다. 보희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나 혼자 만나고 올게. 다신 아빠 찾지 않을 거야. 난 너 있으니까.” 보희가 자리를 떠나고, 녹양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쉰다. 어쩐지 가슴 설레는 ‘이성애 각본’이 시작될 것만 같은 순간이다. 나는 독립적인 녹양이 보희와의 이성애 관계 안에서 ‘여성성의 신화’를 답습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봐, 어쩐지 두려웠다.


“시나리오에서는 녹양이 ‘어우, 왜 저래?’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친다. 촬영 전에 실제로 그렇게 리허설도 했는데, 어쩐지 뭔가 맞지 않아서 방향을 바꿨다. 어떤 의미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녹양이 보희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혹은 정말 가까운 사람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 느끼게 되는 미묘한 감정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걸 ‘연애’로 읽고 싶었던 건, 어쩌면 관객인 나의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한껏 밝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또 참 쓸쓸해서, 보희와 녹양이 끝까지 서로 의지하고 위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삶에서, 뭐라도 하나는 확실하고 단단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그러니 이 장면이 불만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이 말을 듣고 안주영은 웃었다.


“작업하면서 배우들에게 ‘보희와 녹양이는 5년 뒤에 헤어져서 각자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편으로, 영화가 대안 가족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고 해석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사실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모여 있는 그들도 언젠가는 헤어질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지금 이 순간 누가 옆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깨달았다. 영원하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관계와 마음들은 지금, 여기, 바로 내 옆에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런 것들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걸, <보희와 녹양>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글 | 손희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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