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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정현주의 그래도, 서점

서점은 7평, 스태프는 50명

by예스24 채널예스

“50명을 모두 고용하면 되겠네요.”


최근 공개적으로 스태프를 모집했다. 보다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지원서 양식을 우리 방식으로 만들었다. 자신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주세요. 좋아하는 작가 세 분, 책 고르는 기준, 외우고 있는 시가 있는지, 좋아하는 책 속 문장과 이유, 좋아하는 서점, 책 이외 관심 분야, 아지트처럼 여기는 공간, 새로운 공간에 갔을 때 무엇을 눈 여겨 보는지,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따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지, 좋아하는 화가나 사진작가, 뮤지션, 영화, 여행지 중 가장 좋았던 곳,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는 누구를 찾아가는지,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 세 가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따로 하는 일, 소셜 네트워크 이용 방식, 같이 일하기 어려웠던 상대는 어떤 스타일인지, 5년 뒤 자기 모습을 그려본다면, 매장에 없는 책을 손님이 찾으면 어떻게 할 지 등등. 별 걸 다 물었다고 하겠지만 99명의 사람이 지원서를 냈다. 읽기만 하는데도 하루가 온종일 걸렸다.


주변의 관심도 뜨거웠다. 매일 좋은 사람 찾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들 취향도 좋고 삶의 방식도 근사해요. 50명쯤은 같이 일해보고 싶었어요.”


“모두 고용하면 안 되나요?”


“50명을요? 저희 서점은 6평, 7평인데 50명이 다 들어오지도 못해요.”


“어서 커져서 다 고용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일주일에 한두 번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출판사 대표였다. 농담이겠지 했는데. 눈빛이 진지하다. 피식 웃었는데 이상하다. ‘50명 모두 고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다음 날 또 다른 단골 J가 왔다. 네 번째 방문쯤이었던 듯하다. 


“혹시 글 쓰는 분이세요? 아까 손님이 작가님이라고 부르던데요.”


문학청년. 이후 그는 종종 서점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강릉에서 사온 커피, 제주 아버지 농장에서 보내온 천혜향에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처음 서점을 열던 날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선물 받았다. 영국에 있는 마커스 서점으로 미국에 사는 헬렌 한프가 편지를 보낸다. 책을 주문하며 선물도 넣는다. 서점 주인은 책 소개와 안부가 담긴 답장을 보내온다. 20년에 걸쳐 오고 갔던 편지를 묶어 책으로 만들었다. 헬렌 한프는 가난한 방송작가였다. 책도 내고 열심히는 했지만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는데 영국의 헌책방 주인과 주고받은 한 무더기의 편지가 인생을 바꿔놓았다.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출간된 후 전세계에서 팬레터가 날아왔다. 우편료가 비싼 시절이었는데 일일이 답장을 보내느라 인세를 다 썼다고 들었다.

서점을 연다니 이 책을 주고 싶어 어렵게 구했다며 편집자가 선물로 주었다. 당시엔 절판 상태였다. 개업선물로 하필 이 책이냐며, 헬렌 한프처럼 앞으로는 돈 벌고 뒤로는 가난한 서점주인이 되는 거 아니냐며 웃었지만 『채링크로스 84번지』에 담긴 편지들이 서가를 정리할 때나 서점 문을 열고 닫을 때면 툭툭 생각났다.


서점에 있으면 편지와 쪽지를 자주 받는다. 군대에 갔거나 지역으로 발령 받은 단골이 손편지를 보내오는 경우도 있고, 문 앞에 사과나 빵이 쪽지와 같이 놓여 있기도 하다. 더더욱 편지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서점에서 편지로 뭔가를. 그런데 뭔가는 대체 뭐가 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서점주인에겐 시간과 다정함이 부족했다.


마침내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기획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열심히 책을 고르고 있던 J를 불렀다. “혹시 우리 서점과 뭐해보지 않을래요? J는 편지 쓰는 거 좋아하잖아요. 서점 손님들에게 편지 쓰는 일이에요.”


한 시간 뒤 공지를 했다. ‘책과 손편지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한 달에 10분만 가능하다. 작가를 꿈꾸는 서점단골, 다정한 J가 손편지를 써줄 것이다. 서점이 고른 책과 같이 보내드린다.’ 가입비는 입금하고 사연 쓰는데 시간이 걸렸을 텐데 15분 만에 마감됐다. 외국에 사는 분도 있었다. 신청자들이 손편지를 써서 사진 찍어 메일로 보냈다. J에게 포워딩하니 답장을 써서 들고 왔다. 원고지에 적힌 편지라니, 고등학교 때 받은 러브레터가 생각난다. 사연 내용에 맞게 책을 골라 편지와 같이 보냈다. 반응이야 당연히 다정했고, 중요한 걸 확인했다. 사람들에겐 내 마음을 읽어줄 누군가, 보내는 내 마음을 받아줄 안전한 상대가 절실하다. 책값을 제외한 가입비를 J에게 주었다. 읽어주는 사람이 생긴 것만도 기쁜데 글 써서 처음 돈 벌었다며 웃었다. 반짝이는 눈을 보는 게 좋았다.


다음은 정신과 의사인 단골이었다. 직원 중 취준생이 있는데 너무 힘들어한다 했더니 달려와서는 상담을 해주었다. 직원을 보내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2021년 취준이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가, 멘탈 관리가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가 자원봉사 하겠다고 했다. 줌으로 취준생 다섯 사람을 상담해주었다. 화면에 비친 신청자는 모두 빛나고 예쁜 사람들이었는데 셋은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했고 모두가 계속 울었다. 의사는 상담 중간 중간 그들을 열심히 웃겨 주었다. 깔깔대다가 줌 모임을 마감했다. 끝난 뒤 신청자들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모처럼 웃었다. 오랜만에 잘 잤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 의사는 집단 상담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다섯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주었다. 모두에게 전달했더니 답장이 도착했는데 다들 그날 이후 며칠 한결 편안했다고 했다. 공황장애로 2년간 집에만 있던 신청자 한 사람은 그날 이후 용기를 내서 집 앞을 걷기 시작했단다. 파트타이머를 모집하는 곳이 보여 지원서도 내봤다며, 멀리는 못 가도 집 앞에는 도전해보겠다는 문장에서 코가 찡해졌다. 젊은 정신과 의사의 서점 리스본 고객 멘탈 관리 프로보노는 월 1회씩 계속될 예정이다.


걷기와 읽기를 좋아하는 단골에게는 ‘같이 쓰는 외면일기’라는 프로젝트를 맡겼다. 현대의 우리는 너무 자기 안을 들여다보다가 길을 잃는다. 밖을 바라보며 걸으면 어떨까? 셀카 대신 하늘과 나무와 길가의 강아지나 우체통을 사진 찍고 눈에 보이는 것을 글로 적으면 어떨까. 잘 관리하기 위해 10명을 모았는데 10분도 안 되어 마감됐다. 1만원씩 걷어 단골에게 주었다.


‘나의 다음 여행’이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단골 중에 여행사 직원이 있다. 여행을 기획할 때 가장 행복하다 했는데 1년을 넘게 일을 쉬고 있다. 우리 서점에서 해보면 어떤가 제안했다. 역시 10명. 15분만에 마감됐다. 신청자가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말해주면 정보를 나누고 루트를 짜주는 프로젝트다. 첫 회는 무료지만 다음 달부터는 유료로 전환된다. 회비는 진행자에게 주기로 했다.


5월에는 엄마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면접을 보러 왔던 사람 중에 엄마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독서모임과 쓰기 모임도 하고 있다길래 엄마에 대한 글쓰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단골 중에 엄마를 원망하는 20대가 있었는데 엄마를 인간으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엄마에 대한 상을 정립해두는 건 여성의 삶에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역시 회비 대부분이 진행자에게 돌아간다.


그새 같이 하는 사람이 12명이 되었다. 점점 늘어날 예정이니 가까워지고 있다. 6평 서점에 스태프 50명. 농담에서 시작했는데 꿈이 된 말. 작아도 넓게 이어지길 바라며 서점을 키워왔는데 이루어질 지도 모르겠다, 연결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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