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 천지' 달마고도를 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하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해남 달마고도에서 만난 너덜지대 [사진/전수영 기자] |
하얀 조각품을 진열한 듯한 봉우리와 발아래 펼쳐진 몽환적인 바다와 섬, 천길 벼랑 끝에 위태롭게 걸린 암자, 시시때때로 풍경이 바뀌는 길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들었다. 전남 해남 달마산 아래 달마고도에는 가히 '명품'이란 이름을 붙일 만했다.
땅끝마을, 대흥사, 녹우당, 우항리 공룡화석지, 울둘목, 고구마와 김…. '해남'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 대표 주자가 바뀌었다. 주인공은 바로 '달마고도'(達磨古道). 2017년 가을 개통하며 그 길에는 '명품'이란 수식어가 붙었고 극찬이 쏟아졌다.
언젠가 한 번쯤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남도 걷기 여행은 봄이 제격이라 바람결에 포근한 봄기운이 느껴지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을 걷던 날, 연일 한반도 전역을 숨 막히게 뒤덮던 미세먼지도 다행히 잠시 물러났다. 달마고도와의 만남 때문인지, 간만의 맑은 공기 때문인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달마고도는 땅끝을 향해 치달리는 달마산(해발 489m) 둘레로 난 총 길이 17.74㎞의 길이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뻗은 달마산에는 불썬봉(달마봉), 관음봉(434m), 떡봉(422m), 도솔봉(418m)이 있는데 능선의 길이가 장장 12㎞에 이른다고 한다. 능선에 솟은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뤄 '남도의 소금강'이란 별칭도 붙었다.
달마고도는 달마산 자락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만들었다. 2012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미황사를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둘레길을 제안했고, 이 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 공사를 시작했다. 금강 스님은 해발고도 220∼380m의 달마산 중턱에 옛날 달마산에 있던 암자 12개를 잇는 길을 기획했다. 길을 만들면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구는 삽과 호미, 곡괭이만 사용했다. 연인원 1만 명이 투입됐고 마침내 2017년 11월 달마고도가 탄생했다.
달마고도는 4개 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은 출가길(2.71㎞), 2구간은 수행길(4.37㎞), 3구간은 고행길(5.63㎞), 4구간은 땅끝 천년 숲 옛길(5.03㎞)이란 이름이 붙었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돌아오는 순환 코스여서 구간은 딱히 의미가 없다. 둘레길 중간중간에는 능선을 향한 등산로가 이어져 코스를 자유롭게 계획할 수도 있다.
신비로운 풍광의 너덜지대
아름다운 미황사의 대웅전 [사진/전수영 기자] |
달마고도의 시작점은 기암괴석을 품은 달마산이 병풍처럼 두른 천년고찰 미황사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달마산 아래 포구에 금인(金人)이 도착했는데 배에는 화엄경, 법화경, 검은 돌 등이 실려 있었다. 돌에서는 돌연 검은 소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의조화상의 꿈에 나타난 금인은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 불(佛)이 나타나니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한다.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라"고 했다. 의조화상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소가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황(黃)은 금인의 빛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미황사에는 천불도가 있는 대웅전에서 삼배하면 삼천 배이고, 대웅전 앞마당에서 달마산을 향해 삼배하면 삼만 배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황사 일주문 왼편에 있는 둘레길 출발지로 들어섰다. 붉은 꽃을 활짝 피운 동백나무의 짙은 그늘로 들어서자 지난해 쌓인 낙엽이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싸는 흙길이 이어진다. 길에선 새가 지저귀고 흙냄새와 풀향기가 후각에 스민다.
산을 휘도는 길이어서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 뿐 숨이 가쁘지 않아 좋다. 둘레길에는 드문드문 조그만 나무판자가 나무에 걸려 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걸어 보세요', '내 손을 잡으세요. 함께 걸읍시다' 등 금강 스님이 직접 쓴 글귀가 미소를 짓게 한다.
이 길은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있다. 해남이 고향인 법정 스님이 병상에 있을 때 금강 스님은 해남의 동백꽃과 매화꽃을 전해드리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금강 스님은 법정 스님의 다비식 이후 재를 가져와 1구간의 어느 소나무 아래 모셨다고 한다. 길 어딘가에서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이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 절로 옷깃이 여며졌다.
오솔길과 습지, 임도, 편백숲을 지나자 돌연 오른쪽으로 하얀 기암이 봉우리를 가득 채운 그림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앞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한가득 쌓여있다. 너덜겅이다. 너덜겅은 5만∼10만 년 전 규암 덩어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다 부서져 사면을 따라 흘러내린 것을 말한다.
길 아래쪽 너덜겅 뒤로는 해남의 들판과 산줄기가 내려다보인다. 너덜지대는 걷는 내내 중간중간 모습을 드러내며 비경을 선사했다. 중턱을 관통하는 달마고도에는 이런 너덜겅이 20개가 넘게 있다. 박미례 트레킹가이드는 "너덜겅 구간은 봉우리 위쪽 하늘에 구름이 걸려 있거나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설명했다.
몽환적인 바다와 절경 펼쳐진 도솔봉
2구간에 볼 수 있는 몽환적인 바다 풍경 [사진/전수영 기자] |
1·2구간의 분기점인 큰바람재에 닿자 이름값을 하는지 바람이 머리칼을 뒤흔든다. 이제부터는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섬들이 들어앉은 오전 나절의 바다에는 솜사탕 같은 안개가 휘돌고 있다. 서정적이고 몽환적이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돼지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천제단을 지나자 다시 조그만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이내 왼쪽으로 바다와 섬이 펼쳐진다. 뛰어들고 싶도록 아름다운 섬과 바다, 해남 북평면과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이룬 풍경이 가슴을 활짝 트이게 한다.
바다 풍경과 기암을 품은 봉우리를 감상하며 걷다 보니 대나무숲이 나타났다. 한쪽에는 기단석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달마산에 있던 옛 12암자 중 하나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달마고도를 걷다 보면 이렇듯 암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싱그러운 대숲 길과 너덜지대를 거쳐 2·3구간 분기점인 노지랑골을 지난다. 이후 1시간여는 바다와 기암이 있는 비슷한 풍경이 계속 이어져 지루하고 다리도 아파져 온다. 3구간에 고행길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인가 보다.
달마고도는 계속 이어지지만 3구간 중간에서 방향을 틀었다. 달마산에서도 가장 가파른 바위들이 최고의 절경을 선사한다는 도솔봉을 보기 위해서다. 정상까지는 가파르고 험한 삼나무 산길. 숨이 턱에 차오르고 다리에는 잔뜩 힘이 들어간다. 불과 300m라고 하는데 두 배는 더 멀게 느껴졌다.
마침내 도착한 도솔봉 정상. 거대한 신장(神將) 같은 암석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기암 사이로는 해남의 평야와 남쪽 바다가 넓게 펼쳐진다. 가히 압도적이다. 선경이 따로 없다. 오르막 고난 길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 풍광이다.
가파른 벼랑 위에는 조그만 암자 하나가 둥지를 틀고 있다. 구름 낀 날이면 선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는 도솔암이다. 바람을 벗 삼아 도를 닦기 딱 좋은 장소다. 도솔암에서 50m 아래 바위틈에는 용담이 있다.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이곳에서는 의조화상이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다고 전한다.
동물 문양 새겨진 부도들
도솔암과 주변 기암의 풍경 [사진/전수영 기자] |
도솔봉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오른 터라 하산길도 꽤 급경사다. 내려가다 돌아본 벼랑 끝에 걸린 도솔암과 기암들. 신선이 사는 곳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조심조심 10여분을 내려가자 달마고도 4구간이 마중을 나왔다.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에는 미황사까지의 거리가 4.1㎞로 표기돼 있다. 3구간 중간에서 가로질렀으니 전체 구간 중 2.5㎞ 정도를 덜 걸은 셈이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삼나무숲을 통과하고 거대한 너덜지대를 지나면 걷기 여행은 거의 끝이 난다.
흥미로운 동물 문양이 있는 부도들 [사진/전수영 기자] |
미황사를 600m 남겨두고 오른쪽에 있는 부도전을 보고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부도 20여 기와 대사비(大師碑) 5기가 서 있다. 그런데 부도에 새겨진 문양이 흥미롭다. 자세히 살펴보면 게, 거북이, 물고기, 다람쥐, 토끼 등 다양한 동물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미황사의 창건 설화를 기록한 높이 3m의 사적비가 자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1692년 세웠다는 사적비는 세월에 닳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글자가 사라져버렸다.
지치고 허기지고 발바닥마저 아파질 무렵, 드디어 미황사의 정갈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선이 고운 기와지붕 뒤편으로 펼쳐진 해남의 바다와 산과 들이 그지없이 평온해 보였다.
(해남=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dkl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