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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용솟음치는 설악산 공룡능선 느리게 걷기

by연합뉴스

용아장성, 가야동 계곡, 천불동 계곡, 푸른 동해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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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에서 본 공룡능선[사진/백승렬 기자]

국립공원 100경 중 제1경인 설악산 공룡능선.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로웠다. 내설악의 용아장성과 가야동 계곡,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동해까지. 느린 종주는 그 모두를 음미하게 했다.

◇ 대자연의 경이·신의 조각…공룡능선

한국 제일의 경승으로 꼽히는 설악산. 설악에서 풍광이 빼어난 내설악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공룡능선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전국 22개 국립공원의 100경 중 제1경으로 선정된 공룡능선의 모습은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의 기세처럼 힘차고 장쾌했다. 암봉과 암봉이 이어지며 빚어낸 능선은 공룡의 등뼈처럼 뾰족뾰족하고 웅대했다.


공룡능선은 설악산 마등령 삼거리에서 시작해 나한봉, 큰새봉, 1275봉, 신선봉을 거쳐 무너미 고개에 이르는 능선길을 말하며 약 5㎞이다. 그 자체로 절경이거니와 능선 양쪽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이다.


서북 능선, 화채봉 능선 등과 함께 설악산 주 능선을 형성하는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른다. 공룡능선에 서면 내설악 쪽으로 용아장성과 가야동계곡, 외설악 쪽으로 천불동 계곡과 속초 앞 동해가 펼쳐진다. 용아장성은 공룡능선과 쌍벽을 이루는 비경이며, 깊고 긴 협곡인 천불동은 한국 대표 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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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새봉과 1275봉. 멀리 대청봉이 보인다.[사진/백승렬 기자]

명산 중 단풍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설악에 가을이 들면 공룡능선 종주 꿈이 산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공룡능선을 타기는 쉽지 않다. 공룡능선 종주 코스는 매우 어려운 산행으로 꼽힌다. 길이 험한 데다 코스가 길기 때문이다.


'공룡'에서는 100∼200m 높이 솟구쳤다가 다시 그만큼 내려꽂히는 바위 능선을 오르내리기를 7∼8번 반복한다. 체력이 달리거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이른바 '탈출로'가 없다. 종주를 시작하면 끝까지 가거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중간에 샘이 없어 마실 물을 모두 지고 가야 한다. 보통 2리터 이상의 물을 갖고 가길 권하는데 식량, 추위와 비에 대비한 옷, 등산 장비, 비상용품 등을 포함한 짐 무게는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 공룡능선을 타기 전에는 나이 들었다고 말하지 말라

설악산국립공원이 제시하는 공룡능선 코스는 설악동 소공원∼비선대∼금강굴∼마등령∼공룡능선∼희운각 대피소∼대청봉∼오색이다. 거리 19.1㎞, 걸리는 시간 14시간 40분으로, 희운각에서 1박 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실제 등산객이 택하는 코스는 다양하다. 백담사에서 시작해 수렴동 대피소∼봉정암∼공룡능선∼마등령 삼거리∼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되돌아오는 코스 혹은 이의 반대 코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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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새봉 단풍 등산[사진/백승렬 기자]

경험이 많은 산꾼들은 주로 소공원∼비선대∼금강굴∼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 고개∼천불동 계곡∼소공원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를 선호한다. 거리는 약 20㎞. 중간에 숙박하지 않고 12∼14시간에 주파한다.


설악산 국립공원 비선대 통제소는 하절기 오전 3시, 동절기 오전 4시부터 입산을 허용하기 때문에 이들의 상당수가 하절기 오전 2시에 헤드랜턴을 두르고 소공원에서 출발한다. 공룡능선을 하루에 주파한 무용담이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면서 공룡능선 무박 종주는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공룡능선 단시간 주파는 성취감을 안길지언정 무릎, 발목에 큰 부담을 주고 부상 위험을 동반한다. 설악의 비경을 즐기고 자연과 교감하는 데는 공룡능선을 스치듯 통과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드물 것 같다.


희운각 대피소는 재건축 공사를 마치고 지난 10월 16일 개장했다. 호텔식 등급을 매기자면 '5성급 대피소라 할 만큼 쾌적한 잠자리와 화장실을 갖췄다. 공룡능선을 안전하게 타기 위해 암자와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여유 있게 산행을 즐기길 권한다. 등산지팡이, 밑창이 두껍고 발목을 감싸는 등산화, 신축성 있는 바지, 방풍 잠바와 방한 상의, 무릎 보호대, 장갑, 모자, 침낭, 헤드랜턴, 비상식량과 물, 넘어질 때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등산 배낭 등 준비한 장비와 용품은 모두 요긴했다.


신선봉 근처에서 만난 70대 노부부는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1,707.9m)에 올랐다가 공룡능선을 거쳐 오세암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청봉에 오르기 위해 백담사 쪽 봉정암에서 1박 했으며 마등령 삼거리에 이르면 오세암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다시 1박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청봉 오르기만도 어려운데 공룡능선을 타는 이들은 불자와 함께 등산객을 잠재워주는 백담사의 두 암자에서 숙박하면서 서둘지 않고 천천히 설악의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공룡능선 종주는 전문 산악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힘든 건 분명하지만 평균적인 체력을 가졌다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완주 비결은 체력 단련을 포함한 성실한 준비와 느리게 걷기라고 말하고 싶다. 공룡능선을 타기 전에는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 게 상식이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살면서 한국 최고 명소를 체험하는 것에는 삶의 역동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체력을 길러 나이 들기 전에 공룡 등에 올라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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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운각대피소 내부[사진/백승렬 기자]

◇ 나한봉·큰새봉·1275봉·신선봉

마등령 삼거리에서 출발하면 공룡능선은 나한봉, 큰새봉, 1275봉, 신선봉 순서로 이어진다. 무너미 고개에서 시작한다면 봉우리 순서는 거꾸로다.


나한봉은 해발 1,298m. 네 봉우리 중 가장 높다. 큰새봉은 나한봉 쪽에서 바라보면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부리를 치켜든 독수리 모양이다. 1275봉 쪽에서 보면 두 날개가 능선을 덮을 만큼 크게 느껴진다. 해발 고도가 그대로 이름이 된 1275봉은 나한봉보다 조금 낮지만, 바위 봉우리 자체는 더 커 우람한 인상을 준다. 오르내리는 길이 가팔라 산객들이 특히 힘들어하는 구간이다.


신선봉은 공룡능선의 특징인 웅장한 바위 봉우리의 위용을 실감 나게 관찰할 수 있는 전망 지점이다. 마등령에서 출발해 신선봉에 도착한 뒤 뒤돌아보니 능선은 흡사 뒤따라온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등에 골판이 많은 스테고사우루스가 긴 꼬리를 드리우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었다.


신선봉에 서면 마등령, 나한봉, 큰새봉, 1275봉뿐 아니라 세존봉, 범봉, 울산바위, 유선대, 비선대, 용아장성, 대청봉, 중청, 소청, 동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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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바위[사진/백승렬 기자]

공룡능선에서는 4대 주요 봉우리 외에도 킹콩 바위가 사진 촬영 명소 1위라 할 만큼 등산객 사이에 인기가 있었고 촛대바위, 코끼리바위, 거북바위 등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 신비에 잠긴 용아장성과 영롱한 단풍의 천불동 계곡

마등령 삼거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니 내설악 쪽의 용아장성은 스스로 만든 어둑한 산그늘에 잠겨 있었다. 아침 해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깊고 그윽한 그늘 속에 들어앉았어도 현묘한 자태를 숨기지 못하는 용아장성은 신비로웠다. 용아장성의 이름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바위가 길게 늘어선 능선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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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 계곡[사진/백승렬 기자]

아침저녁으로 선듯한 바람이 지난여름의 기억을 흐릿하게 할 즈음이면 '설악산 단풍은 언제 시작되나'가 언론을 장식하는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이런 우문도 사실 드물다. 설악산에 단풍 드는 시기는 고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10월 초·중순 대청봉 단풍이 절정을 지나 낙엽 되어 떨어졌어도, 관광객이 운집한 산 아래 공원에는 단풍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공룡능선 단풍이 절정을 지날 즈음이면 천불동 계곡 단풍은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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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일출[사진/백승렬 기자]

천불동에는 천당폭포, 양폭포, 음폭포, 오련폭포가 있다. 귀면암과 양폭 사이 깎아지른 듯한 바위 골짜기에 연이어 떨어지는 5개 폭포를 이르는 오련폭포는 천불동의 수문장이다.


제일 위쪽에 있는 천당폭포는 속세에서 온갖 고난을 겪다가 이곳에 이르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계곡 단풍은 유난히 어여쁘다. 공기 중에 수분이 많아 단풍잎이 마르지 않고 영롱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천불'은 천개의 불상이란 의미이다. 계곡 양옆으로 늘어선 바위들이 천 개의 부처처럼 많고 고귀하게 보이는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나무들이 잎을 떨궈 바위 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겨울이 오면 '천불'은 더욱 장엄하게 위엄을 드러낸다.


오세암 밤하늘에서 관찰한 은하수, 희운각에서 대청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일출, 수려한 천불동 단풍 감상은 공룡능선 종주 전후에 덤으로 누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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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밤하늘에서 관찰한 은하수[사진/백승렬 기자]

설악동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설악산 계곡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산이 내게로 다가온다'며 설악산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취재팀은 산행 경험이 별로 없는 보통 체력의 소유자들이다. 오세암과 희운각에서 각각 1박 하면서 공룡능선을 느리게 종주한 뒤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떠오른 두 단어는 '감동'과 '겸손'이었다.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품어준 설악에 감사한다.


현경숙 기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