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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Travel Abroad]

'황금의 나라' 브루나이에서 행복을 묻다

by연합뉴스

브루나이는 특별하다. 전제군주국이고, 술과 담배는 팔지 않는다.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며, 한 집당 평균 4대의 자동차가 있다. 새해엔 국왕이 국민에게 세뱃돈을 준다. 황금으로 장식된 7성급 호텔이 있고, 아름다운 해변과 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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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의 랜드마크인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사진/권혁창 기자]

비행기부터가 심상치 않다. 로열브루나이항공이라니. 짐작대로 브루나이 왕실이 직접 운영하는 항공사다. 저가 항공은 없고, 인천∼브루나이 직항은 이것뿐이다. 깔끔한 좌석은 널찍했고, 승무원은 친절했으며, 기내식은 평균 이상이다.


수도인 반다르스리브가완의 국제공항은 동남아 국가의 선입견(그것이 무엇이든)을 깨뜨린다. 우선 한적하다.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로 1∼2시간씩 걸리는 유명 휴양지의 입국 수속을 생각했다면, 10분도 안 돼 끝난 절차에 어리둥절할지 모른다. 밀도와 쾌적함이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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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르스리브가완 거리 모습. 길 건너편 돔 건물은 로얄 리갈리아 왕실 박물관이다. [사진/권혁창 기자]

공항에서 숙소인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버스로 불과 20분. 경기도 절반 크기의 나라에 흠잡을 데 없이 깔린 고속도로는 그 어느 곳을 가든 30분 이상 걸리는 일이 드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금칠을 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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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호텔의 화려한 내부 [사진/권혁창 기자]

엠파이어 호텔 & 리조트. 브루나이 여행의 시작과 끝은 바로 이곳이다. 호텔이지만, 동시에 제1의 관광 포인트다. 축구장 252개를 합친 크기인 180㏊(약 54만평)의 부지에 전용 해변과 수영장, 개봉영화관,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골프장, 테니스·배드민턴·스쿼시·볼링·당구·농구·탁구·웨이트 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관 등이 빠짐없이 들어섰다.


너무 넓어 이동 시엔 버기(buggy)라고 부르는 전동 카트를 타고 다니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제국 같은 복합 리조트 단지다. 왕실의 파티장과 외국 귀빈 숙소로 사용하다가 2000년 호텔로 바뀌었는데, 건물 안은 온통 금칠을 해놓은 '럭셔리 끝판왕'이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진짜 금, 닿는 곳은 가짜 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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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와 맞닿은 엠파이어 호텔의 수영장 [사진/권혁창 기자]

호텔 해변은 남중국해의 수평선과 끝도 없이 늘어선 야자수, 신비로운 구름과 붉은 노을이 뒤섞여 지구에서 가장 낭만적인 빛의 향연과 풍경을 연출하는 무대다. 무엇보다 이 호텔의 미덕은 희박한 인구밀도다. 아침 뷔페식당이 살짝 붐비는 것을 빼면 어디든 줄을 서야 할 일이 없고, 혼자 흡입하는 신선한 열대의 공기가 압도적인 양을 자랑하는 완벽한 '힐링'이 보장된다.

호화로운 모스크와 '겉 다르고 속 다른' 수상가옥

방대한 규모에 무엇을 할지, 무엇부터 볼지 우왕좌왕하다가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 오후 시내 관광에 나섰다. 이슬람 왕국인 브루나이의 볼거리는 모스크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들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 규모와 호화로움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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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날 볼키아 현 국왕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한 '자미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 1994년 한국의 경남기업이 건설했다. [사진/권혁창 기자]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높이 52m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1958년 현 국왕의 부친인 제28대 국왕(술탄)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이슬람 사원 전통 양식에 따랐지만, 돔은 황금으로, 미너렛은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창은 영국 스테인드글라스로 건축했다. 시내 어디서든 보이는 랜드마크다. 한켠에 거대한 액자 모형이 서 있어 그 바깥에서 사진을 찍으면 액자 안에 모스크가 고스란히 담기도록 촬영할 수 있다.


하사날 볼키아 현 국왕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는 모스크도 있다. '자미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는 1994년 한국의 경남기업이 건설했다. 브루나이 최대 모스크로, 5천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 초호화 장식으로 꾸며진 실내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한다. 전기를 물처럼 쓰는 브루나이에선 어떤 모스크든 야경이 훨씬 아름답다.


모스크의 화려함과 신도들의 신앙심이 비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상주의자의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신전의 거대함과 화려함은 적어도 충성심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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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퐁 아에르 수상마을 [사진/권혁창 기자]

브루나이에는 뜻밖에도 수상 마을이 있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있고, 세계 최대 규모다. 물 위에 떠 있는 가옥들을 나무로 연결한 거리의 총길이는 30㎞에 이른다. 16세기에 형성된 '캄퐁 아에르'라는 이 수상 마을엔 지금도 3만여 명이 살고 있다.


열대 지방 사람들이 물 위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육지에 있는 각종 해충과 들짐승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위험은 사라졌지만, 많은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 살아온 곳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가이드의 안내로 들어가 본 한 수상 가옥의 내부는 딴 세상이다. 대형 TV, 에어컨, 침대, 오디오, 소파 등 첨단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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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의 야시장 [사진/권혁창 기자]

시내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야시장이다. 열대과일, 주스, 꼬치 등 대부분 먹고 마실 것들을 파는데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야시장과 다른 것이 있다면 재래시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다.

열대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브루나이 동부 지역에는 '울루 템부롱'(Ulu Temburong)이라는 훌륭한 국립공원이 있다. 이른 새벽, 꼬박 하루가 걸리는 템부롱에 가기 위해 무거워진 눈꺼풀을 치켜떴다. 대형 버스로 20분, 스피드보트로 40분, 다시 소형 버스로 20여분을 이동하니 울창한 삼림지대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전통 롱테일보트를 타고 원시림이 빽빽이 둘러친 템부롱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40여분간의 이 뱃길은 언제든 힘들고 지칠 때면 뇌 한구석에서 꺼내 재생하고픈 장면이 될 것이다. 물살에 부딪힌 햇살은 밀림에서 불어온 바람과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고, 뱃머리에 부딪힌 강물은 물방울로 부서져 달아오른 살갗을 식혀줬다. 보트에서 내리면 정글 트레킹이 시작된다. 울창한 밀림의 틈을 비집고 들어선 1천226개의 나무 계단이 굽이굽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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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부롱 국립공원에서는 1천226개의 나무 계단을 통해 정상까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사진/권혁창 기자]

그늘임에도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쓸어내다 보니 어느새 철탑 전망대에 도달했다. 철탑 위에선 템부롱의 밀림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고소공포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사절이다. 대부분의 투어 회사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노약자를 위해 '닥터피시'(doctor fish) 코스를 마련해 뒀다. 샌들이나 아쿠아슈즈를 신고 얕은 계곡을 걸어 들어가서 열대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행복'에 대하여

마지막 날, 노을이 보고 싶었다. 검은 구름이 많아 기대는 난망이었지만, 해 질 무렵 약간의 희망을 품고 바닷가로 향했다. 보들레르의 이방인이 사랑한 구름이 기도에 가까운 기대에 응답한 걸까. 서쪽 하늘에 한 시간 전과는 다르게 붉은 기운이 돌더니 거뭇한 구름 밑으로 오렌지색 하늘이 화려한 얼굴을 내민다. 이런 감동엔 그 어떤 표현도 무색하다. 초라한 구경꾼은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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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부롱 국립공원의 출렁다리 [사진/권혁창 기자]

저녁노을을 보면서도, 브루나이를 떠나면서도, 귀국 비행기 안에서도,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1360년부터 오늘날까지 660년간 절대 왕권을 유지해온 브루나이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브루나이의 왕권은 그 권한과 권위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어떤 종류의 변화나 개혁도 봉쇄해 왔다. 정당 설립이나 표현의 자유는 제한된다. 그 대신 그들에겐 엄청난 오일 머니와 이슬람 절대신의 존재가 옆에 있다.


"당신들은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에 "충분히 행복하다"는 답변이 나올지라도 거기에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할까. '배고픈 소크라테스' 운운하는 건 촌스러울지 모른다. 병원과 대학, 유학이 공짜이고 인구의 70%가 공무원인 완벽한 복지국가에 사는 브루나이인들이 꼭 부럽지만은 않지만, 동시에 '국가가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아니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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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호텔 전용 해변에서 바라본 저녁노을 [사진/권혁창 기자]

브루나이에선 술과 담배를 팔지 않는다. 다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 만약 "술과 담배가 없어 행복하다"고 대답하더라도 수긍하는 수밖에 없다. 술·담배는 기호이고, 국가는 주권에 의해 움직이며, 행복은 주관적이다. 술과 담배가 없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지루할지도 모를 '천국'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브루나이 여행을 권한다.

Tip

  1. 술·담배 : 브루나이를 흔히 술·담배·도박·테러가 없는 4無 청정 여행지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 어디서도 술·담배는 팔지 않는다. 외국 관광객이 머무는 특급호텔도 마찬가지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와 흡연은 엄격히 금지돼 있어 위반하면 태형이나 벌금형을 받는다. 그렇다고 외국인의 음주·흡연이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다. 와인이나 위스키류는 2병(총 2ℓ 이내), 맥주는 12캔 이내에서 반입이 허용돼 있고 담배는 1개비당 50브루나이센트(약 430원)의 세금을 내고 들여올 수 있다. 호텔에서 흡연은 객실 테라스에 나가서만 가능하다.
  2. 대중교통 : 거의 모든 국민이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어 대중교통은 발달하지 않았다. 일반 택시는 전국에 40여 대밖에 없고 그나마 대부분이 공항에 가 있다. 택시를 타고 싶다면 우버나 그랩 같은 택시 앱인 다트(Dart)를 이용하면 싸고 편리하다. 시내버스는 노선이 많지 않다.
  3. 금요일 오후 : 브루나이 사람들은 매주 금요일 정오에서 낮 2시까지는 기도하는 시간이라 일을 하지 않는다. 모든 상점, 호텔, 식당도 문을 닫는다.

(반다르스리브가완[브루나이]=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fai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