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바람 타고 두둥실…부여 열기구 자유비행

[여행]by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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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물결치는 산들 위로 열기구가 떠 오르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둥실둥실 하늘로 떠오른다. 올망졸망 집들은 모여들고, 넘실넘실 산들이 물결친다. 궁남지, 정림사지, 부소산성이 간직한 전설이 발아래서 곰실곰실 지나가고, 백마강도 굼실굼실 흘러간다.


커다란 풍선에 매달린 바구니가 구름처럼 흘러가고, 바구니에 사뿐히 오른 사람들은 하늘 높은 곳에서 유람한다. 옛 백제의 고도(古都)에서 즐기는 하늘 날기. 부여 열기구 자유비행이다.

◇ 국내엔 여기 밖에 없다…열기구 타고 자유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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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자유비행에서 바라보는 부여의 아침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열기구 여행하면 흔히들 터키 카파도키아를 생각한다. 국내에도 열기구 자유비행이 가능한 곳이 딱 한군데 있다. 열기구 숫자는 비록 적지만, 비행의 즐거움은 뒤지지 않는다. 땅에 줄을 묶어두고 20~30m 잠시 오르내리는 체험이 아니다. 충남 부여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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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하늘을 나는 열기구 [사진/진성철 기자]

부여 열기구 여행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구드래 나루터를 중심으로 반경 10㎞ 이내서 비행한다. 일출 후 2~3시간만, 하루 한 번 가능하다. 공군의 비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낮에 생긴 지열이 열기구 안전에 좋지 않아서다. 비행시간은 그날 바람에 따라 40분에서 1시간가량이다. 초당 5m 이상 강풍이나 우천, 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우면 운항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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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아침 이륙을 준비하는 열기구들 [사진/진성철 기자]

많을 때는 3대 정도 함께 이륙한다. 사람을 태울만한 실력의 조종사가 아직 적어서다. 하루에 탑승 가능한 인원이 20~25명 정도이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엔 예약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엔 기상 여건이 좋아 한 달에 20~25회까지도 비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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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바스켓의 내부 [사진/진성철 기자]

운영업체인 스카이배너는 열기구 20대를 가지고 있다. 조종사 교육, 열기구 제작도 한다. 큰 열기구는 높이 28m 직경 22m나 된다. 열기구 천은 불에 잘 타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나일론 더블식스나 실리콘 원단 등을 사용한다. 바스켓은 등나무로 만든다. 등나무는 부러지지 않고 찢어지는 구조여서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다. 열기구 안의 공기를 데우는 버너는 액화석유가스(LPG)를 연료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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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로 열기구 풍선 안에 공기를 채운 뒤 버너로 온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 "스마트폰 추락 조심"…열기구 안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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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열기구 풍선을 펼치며 손상된 곳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열기구의 이착륙지는 부여의 금강 주변이다. 비행시간 때의 풍향과 풍속에 따라 이착륙지는 바뀐다. 이날 이륙지는 청양군 장평면의 지천 변이었다. 아침 5시 40분쯤에 탑승객들은 백제문화단지 주차장에 모였다. 미니버스를 타고 함께 안개 자욱한 지천 변으로 이동했다.


열기구 세 대가 풀밭에 넓게 배치돼 있었다. 10~12인승, 6~7인승, 4~5인승으로 크기가 달랐다. 굵은 줄처럼 길게 늘어서 있던 풍선을 직원들이 옆으로 넓게 펼치기 시작했다. 풍선을 펼치며 찢어지거나 파손된 곳이 없는지 점검했다. 바스켓에 설치된 버너를 시험하자 주황색 불길이 안개 속 횃불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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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표파일럿이 탑승객들에게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탑승 절차는 간단하다. 먼저 비행 동의서를 작성하고 탑승 티켓을 받는다. 안전교육은 서정목 대표 파일럿이 했다. 서 대표는 비행경력이 3천 시간이 넘는다.


바스켓 밖으로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열기구 비행에서 가장 주의할 점이다. 갑자기 발견한 고라니나 멋진 풍경을 찍으려다 스마트폰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흉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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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탑승 티켓 [사진/진성철 기자]

"하늘 높은 곳을 날다 보니 가끔은 새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어 뛰어내리려는 사람도 있으니 꼭 붙잡아야 한다"고 서 대표가 말하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바스켓에 다닥다닥 붙어 서게 되는데 바람이 조금 있는 날엔 착륙 때 바스켓이 끌려가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무릎을 살짝 굽히고, 어린이는 부모가 감싸서 보호해야 한다. 작은 열기구는 한 바스켓 안에 조종 장비와 같이 탑승하게 되는데 열기구를 조절하는 줄과 버너 등은 만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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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바스켓에 태우고 이륙을 준비하는 열기구 [사진/진성철 기자]

직원들이 선풍기로 풍선 안에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풍선을 띄우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제일 큰 열기구에는 공기가 5t이나 들어간다. 어느 정도 바람이 들어간 뒤 버너로 가열해 공기의 온도를 높였다. 마지막엔 천천히 바스켓을 밀어 열기구를 바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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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바스켓에 탑승하는 사람들 [사진/진성철 기자]

바스켓 높이는 보통 성인의 가슴께 정도다. 열기구 비행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탑승과 하차다. 바스켓을 그대로 넘어 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나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린이들도 열기구 밖을 볼 수 있게 중간중간에 창을 만들어 뒀다.

◇ 백제의 古都 하늘을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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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열기구는 방향과 속도를 직접 조종할 수가 없다. 고도에 따라 다른 바람에 실려 그냥 날아간다. 조종사는 버너로 열기구 안의 공기를 데워 고도를 조절한다. 공기 온도가 100℃보다 높으면 올라가고, 낮으면 내려간다. 보통은 고도 200~300m로 비행한다. 이날은 600m 이상까지도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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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자유비행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진성철 기자]

조종사가 버너의 가스 레버를 열자 불이 확 타올랐다. 이윽고 몸이 떠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땅이 멀어지고 사람, 차, 다른 열기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부여 글씨가 새겨진 하얀 열기구, 파란 바탕에 빨간 무늬의 열기구도 차례로 하늘로 떠올랐다.


고도 550m를 넘었을 때 청양군 방향으로 망월산, 칠갑산 등 구름에 덮인 산들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600m를 넘자 파란 하늘과 아침 해가 눈 부셨다. 이날은 가볍게 부는 북서풍을 타고 청양 장평면에서 부여 백제문화단지, 규암마을을 지나 부여읍 구교들 착륙장까지 40여 분 동안 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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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에서 바라본 백마강, 칠지공원, 정림공원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부여 청양의 들녘은 아직 갈색이었고, 곳곳에 비닐하우스들이 많았다. 산들은 올봄 새로 난 연두색 잎과 겨울을 지난 짙은 녹색 잎들로 선명히 대비됐다. 백마강을 따라 칠지공원, 높이 100m 정도의 부산, 정림공원이 이어져 있었다. 부여효공원의 마레트골프장에는 어르신들이 아침 라운딩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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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에서 바라본 궁남지 [사진/진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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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피어오르는 궁남지의 일출 [사진/진성철 기자]

부여읍 쪽으로 열기구가 살짝 돌았다. 안개 아래에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궁남지가 펼쳐져 있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짙은 안개에 어렴풋했고, 이미 멀리 지나온 부소산성은 아쉽게도 형태만 보였다.


연꽃 모양 조형이 선명한 부여백제리그야구장까지 간 다음 백제교 인근 구교들 길에 착륙했다. 바람이 잔잔해 착륙도 가벼웠다. 어떨 때는 논밭에도 착륙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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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에서 바라본 정림사지 [사진/진성철 기자]

서 파일럿은 부여에서 관망하기 좋은 고도는 200m 정도라고 했다. 백마강변을 따라 날아가며 낙화암, 정림사지, 궁남지 등을 볼 수 있는 북동풍이 불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또 늦가을에서 초봄까지가 최적기라고 귀띔했다.

◇ 샴페인과 함께하는 비행 성공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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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하늘을 날고 있는 열기구 [사진/진성철 기자]

60대 아들 둘과 함께 탄 80대 할머니, 원주에서 아들딸과 함께 온 엄마, 대전에서 온 아들과 아빠, 의정부에서 온 중년 부부 등이 이날 열기구 자유비행을 즐겼다. 의정부 부부는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꼭 타보고 싶었는데 코로나 시대라 갈 수 없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원주에서 온 초등학생들은 이미 패러글라이딩도 해봤다고 전했다. 아빠들은 열기구 비행 내내 아이들 보다 신난 표정이었다. 이날은 너무 편하게 하늘을 둥실둥실 날아다녀서인지 오히려 심심했다는 탑승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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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표파일럿이 성공적인 비행을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을 따르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무사히 비행이 끝나면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한다. 탄산이 들어간 무알코올 사과 과실주여서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끝으로 열기구 비행 인증서도 받고 기념 촬영도 한다.


열기구가 구름처럼 사뿐히 날아다니니 이날 부여의 풍경도 잔잔히 흘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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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에서 바라본 백마강과 부여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부여=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zjin@yna.co.kr

2022.06.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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