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이 있습디다 영화 속 클래식 음악

클래식 음악이란 단어가 들어갔는데도 제목이 시시껄렁하지요? 아, 안하고 싶었으나 피할 수 없어서 쓰는, 클래식 음악을 사용한 영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행했던 많은 행위들 중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세에 비판을 받는 것들이 있고, 어떤 것들은 후세에도 변함없이 사랑을 받는 것들이 있습니다. 후세에도 변함없이 사랑을 받는 것 중 하나가 클래식 음악입니다.

 

왜 그럴까요? 유행가처럼 특정 시기에 맞는 음악은 그 시기에 공감하거나 특정 시기를 되새겨보거나 재현하는 상황에는 좋겠지만, 클래식음악은 유행가와는 다르게, 시대를 관통하는 일반적인 ‘어떤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는, 말로 설명하자니 참 장황해지고 그래서 더 본질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설명하기 힘든데, 그것은 음악 자체의 완성도일 수도 있고 자극적인 양념같은 장식들을 걷어낸 순수함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고, 여튼, 나름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오해하실까봐, 전 유행가도 좋아합니다. 소극적이지만 걸그룹 삼촌팬입니다. 하하.

 

‘장르’에 한정하자면, 일반적으로 클래식이라는 음악은, 

1. 집단이 아닌 개인 고유의 지극한 수련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음악 - 연주하는 방식은 집단적일 수 있겠습니다.

2. 시기적으로는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 - 사조로 분류하자면 대략 바로크부터 후기 낭만주의

3. 음색적으로는 서구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의 솔로나 앙상블

4. 1~3에 해당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연주하는 창작음악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지만 ‘클래시컬(classical)’한 음악들도 많이 있긴 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영화에 쓸 때 몇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면, 우선은 파티나 공연장, 특정 계층, 인물의 취향을 표현할 때 으레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을 쓰는 경우가 생각납니다. 주로 경제적으로 상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설정일 경우에 자주 쓰여졌던 것 같아요. 이 때 사용되는 클래식 음악들은 전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많이 알려진 클래식 곡들을 사용합니다.

근데, 클래식 음악이 꼭 상류층의 사람들만 들으라는 법은 없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상류층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하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란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러 엇갈리는 영화적인 설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예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마을 공격씬에서 헬기에서 틀어대는 바그너(Wagner)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을 정해진 대로만 사용하진 않는 좋은 예시입니다. 베트남 상공의 공격헬기에서 틀어대는 클래식이라니 이상하지요. 하지만 클래식이라곤 해도 사용된 음악이 바그너(Wagner)의 ‘발퀴레의 기행(The Ride of Valkyries)’입니다. 히틀러와 바그너 음악과의 관계를 알고 보면 그냥 들으면 멋있는 음악도 광기 어리게 들립니다.

‘양들의 침묵’에서 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라디오에서는 바흐(Bach)의 음악이 나옵니다. 감옥에서 들리는 클래식이라, 이미 좀 섬뜩하지요. 무시무시한 천재인 한니발 렉터는 바흐 음악의 수학적인 작곡법을 들으면서 계산하고 있진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La Vida es Bella)’의 수용소에서 틀어지는 오펜바스(Offenbach)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Les Contes d'Hoffman - Barcarolle)’는 수용소라는 공간에서 들릴 법한 음악은 아니지만 영화적으로는 부인과의 첫 만남을 상기시키면서 슬프지만 아름답게 들립니다.

앞선 예시들이 (음악 중간에 성격이 변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클래식음악을 소스 음악(Source Music)으로 사용했다면, 두 번째 경우는 일반 영화음악처럼 스코어 음악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배경음악으로써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닌 기존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는 거지요. 

 

그 중에 최고는 단연 스탠리 큐브릭입니다. 클래식뿐 아니라 현대 클래식 음악도 자주 사용하고, 소스로도 잘 쓰고 배경음악으로도 잘 씁니다. 큐브릭 감독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그 결과는 이미 아이콘이 되어서 이후의 수많은 영화들이 오마쥬나 패러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Space Odyssey)’는 너무 유명한 경우라 그냥 하나만 보시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킹스 스피치(King’s Speech)’ 뒷부분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는 연설 장면엔 베토벤(Beethoven)의 교향곡 7번의 2악장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악장은 ‘장송행진곡(Funeral March)’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음악 자체도 장엄한 멋진 음악입니다만, 영국왕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는데 독일계 작곡가의 장송곡을 사용한 것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Mission: Impossible - Rogue Nation) 에는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가 흘러나오는 중에 벌이는 격투씬과 저격씬이 있습니다. 소스 음악과 배경음악의 성격을 왔다갔다 하는 멋진 부분이에요. 투란도트의 이 유명한 주제는 영화의 뒷부분에 스코어 음악에 차용되어서 살짝 다시 나옵니다.

글을 쓰기 전에 참고자료를 찾아보니, 클래식 음악을 영화에 사용한 경우가 정말 많이 있더군요. 짧게 소스로 사용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큐브릭의 영화처럼 오리지널 스코어 만큼이나 한 번 들으면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도 많이 있고요. 최근에 본 일본 영화 몇 편에선 바흐나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곡을 중간중간 잘 쓴 것도 봤습니다.

 

익숙한 클래식 곡을 쓰게 되면 자칫 영화 자체의 이미지를 식상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클래식 음악을 영화에 쓰는 걸 조심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쓰려면, 오리지널 스코어처럼 영화의 내러티브에 맞게, 그리고 다른 영화 요소들과 어울리게끔 잘 섞어 넣고, 중간에 안맞는 부분이 당연히 생기는데 그 때 원작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핵심 주제를 잘 살려 편곡해서 영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게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오래된 역사를 가진 클래식 음악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영화에 알게모르게 많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 쪽으로 목록을 만들어서 영화를 보시면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으니 해보시길 권합니다.

 

글 김연일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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