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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Trent Reznor (Nine Inch Nails)

님아 그 손톱을 깎지 마오

by김연일

어떤 감독들은 음악감독한테 ‘음향같은 음악’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주제가 명확히 들려서 어느 면에선 의도하는 바를 ‘종용’하는 음악이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 음악’을 원한다는 거지요. 또는, 좀 심각하거나 무서운 내용의 영화인 경우라면, 음악감독이 먼저 일반적인 멜로디와 반주 형태의 음악을 쓰기 보다는 ‘음악인데 음악같지 않은 걸’ 의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 사운드 디자이너는 종종 사실적인 소리를 비현실적으로 비틀 필요가 있는 경우에 맞닥뜨릴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음악같은 음향’을 생각합니다. 음향은 음향인데 그냥 들려오는 정도가 아닌 드라마 배후에서 개입하는 음향을 만들고 싶어하는 거지요. 음악과는 달리 이런 음향들은 알아채서 들으면서 보시는 분들은 많지는 않습니다만, 관객들이 눈치를 채건 못채건, 이건 드라마의 흐름과 이해에 분명히 작용을 합니다.

음악쪽에서 출발하든 음향쪽에서 출발하든, 결과로서 만나는 지점은 비슷합니다. 두 경우 모두 시작은 전에 없던 소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방법적으로는 이전에 있었던 악기의 소리를 바꾸는 것도 있을 테구요, 악기가 아닌 소리들을 악기처럼 사용하는 것도 있을 거에요.

위 영상은 이런 방법 중의 하나를 보여주는데, 소재를 뭘 쓰느냐, 마이크를 어떤 걸 쓰느냐, 녹음이후의 후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영화 사운드에서는 이런 작업을 이펙트 만들 때 많이들 하지요. 음악쪽에서는 주로 악기녹음 위주로 진행을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악기가 아닌 소재들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서 예전보다는 훨씬 손쉽게 후처리를 다양하게 해볼 수 있어서, 원래의 소재가 어떤 것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기 용이해졌습니다.

어쨌든, 기존에 잘 들을 수 없었던 음색들로 만드는 음악을 잘 쓰는 사람 중에 하나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에요. 나인 인치 네일스에 대해서 좀 찾아보시면, 워낙 유명했으니까 쉽게 관련 정보를 아실 수 있는데,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원맨 밴드입니다. 원래는 인더스트리얼 락을 하는 밴드였고, 그쪽으로 성공한 밴드에요.

님아 그 손톱을 깎지 마오

저는 락이라고는 클래식락을 조금 배운 수준이긴 한데, 인더스트리얼 락에 속한다는 음악을 몇 개 들어보면, 소스 음색 중에서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소리가 없습니다. 사실, 건드리지 않고 나오는 소리는 다른 음악에도 거의 없지만, 클래식이나 재즈같은 음악은 가능한 만진 티를 못느끼게 건드려서 나오는 음악이라면, 이쪽 장르의 음악은 아예 왜곡과 변조를 티가 나게 드러냅니다. 심지어는 목소리조차도 과도한 이펙트가 걸려서 나올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 걸리는 이펙트도 주로 디스토션(distortion)이라는 ‘찢어지고 거북한’ 효과가 주 이펙트더군요. 공장이나 거리의 소음, 화이트 노이즈 등도 빈번히 사용됩니다.

악기음이 아닌 소음으로 된 음악이면 듣기 싫을 수도 있지만, 그걸 의도적으로 잘 사용한 음악은 이미 60년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음색은 때로는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억눌린 본능을 자극해서 청량감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 전기기타(electric guitar)에서 시작된 디스토션 음색은 신서사이저에도 적용되었고, 레즈너는 이런 음색들을 사용해서 하드한 록이면서 동시에 일렉트로닉하기도 한 음악을 본인의 음악으로 만들어왔고, 영화에도 넣어왔습니다.

레즈너의 음악은 주로 데이빗 핀쳐(David Fincher)의 영화에 삽입곡 형태로 음악이 쓰이다가, ‘소셜 네트워크 (Social Network)’부터 본인이 음악감독이 되어선 이후에 ‘밀레니엄 (A Girl with Dragon Tatoo)’, ‘나를 찾아줘 (Gone Girl)’ 등을 같이 했는데요, 삽입곡으로 음악이 들어갈 때야 음악감독이나 컨설턴트가 자리를 잡아서 넣습니다만, 이 사람이 음악감독이 되면서부터 잡는 음악자리나 그 때 들어가는 음악은 살짝 특이합니다.

보통 음악을 넣는다고 하면 그 자리는, 감정적인 강조점이라거나, 이야기를 압축하며 영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부분이거나, 특정 씬의 앞이나 뒤에서 세팅이나 마무리의 역할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넣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넣는 걸 좀 구식이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때 들어가는 음악은, 예컨대 감정적인 강조점이라 하면 현 오케스트라에 자못 로맨틱한 멜로디를 얹은 음악이 나오거나 할 텐데요, 이 사람의 경우는 본인의 음악이 일단은 일반적인 음악보다는 좀 거친 소리들도 많고, 감정적으로는 건조하고, 몽환적인 부분도 있고, 밝기로는 어두운 음악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반적인 자리를 많이 피해 다닙니다.

듣기에도 희한한 소리가 많은 음악이 일반적이지 않은 자리에 얹혀서 영상과 같이 보여지고 들려질 때의 효과는, 다른 무엇보다 ‘생경함’일 겁니다. ‘나를 찾아줘’에서의 처음 파티 장면처럼, 익히 알고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일상이 생소해지는 효과면에서는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보이지요. 거기에다 레즈너 특유의 음색까지 얹히면, 최종 이미지는 생경한 정도를 넘어서 ‘괴이함, 두려움’의 이미지까지 가지게 됩니다. 

일상적인데 비일상적으로 되어버리는 마술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 촬영이라던가 그래픽같은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지만, 그저 희한한 소리로 된 음악을 일반적이지 않은 위치에 얹기만 해도 된다니, 참으로 경제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경제적이라는 거지 비용이 아주 헐값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레즈너의 영화음악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거친 음색을 사용하는 음악을 비관습적으로 사용한다’라고 하고 싶은데, 이게 말은 쉽습니다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용하기가 많이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나가면 공감을 얻기 힘들어지니까요. 비단 음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가이드라인을 어디까지 잡을 것인가하는 건 항상 힘든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레즈너가 핀처감독의 영화에서 한 작업은 참고할 만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관객입장에서는 보는데 아주 편하지 않을 수는 있는데, 한편으론 관객이 보기 편한 것만 취한다고 해서 공감을 얻는 것도 아니니까, 경우에 따라선 좀 과감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해요.

레즈너가 자신의 원맨밴드 이름을 나인 인치 네일스라고 지었는데, 부디 그 손톱이 깎여서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님아 그 손톱을 깎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