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엘프먼, 어두운 동화의 세계로

[컬처]by 김연일

영화 음악에 대해서 영화 감독들이 원하는 것은,  일단 영화의 드라마 흐름을 따라가면서, 경우에 따라 적당히 리드해주고, 때론 한 걸음 정도 뒤로 빠져주는 역할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런 ‘보조적’인 역할에 치중하는 음악을 사용할 경우엔 음악도 기억에 남지 않고, 그래서 영화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1년에 쏟아지는 수백 편의 영화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아보면, 열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하지요. 그건 그 영화가 못만들어서가 아니라 - 못만든 것도 있긴 할 텐데 - 개성이 없어서입니다. 개성이 있어야만 좋은 영화다라는 건 아닌데,  어쨌든 기억에 오래 남으려면 내용이 되었든, 연기가 되었든, 촬영이나 편집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뭔가 ‘꽂아주는’ 게 있으면 좀 더 오래 남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요.

 

일전에 연재해 온 영화 음악 작곡가들은, 음악적인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본인만의 색깔이 확실한 사람들이라 판단 되어서 그 사람들을 소재로 글을 써온 것인데요, 이번에 말씀 드릴 이 사람도 개성이라면 누구 못지 않습니다. 대니 엘프먼(Danny Elfman)입니다.

돌아와요 엘프먼, 어두운 동화의 세계

대니 엘프먼 Danny Elfman

아시는 분은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이 작곡가는 주로 팀버튼 (Tim Burton)의 영화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아와요 엘프먼, 어두운 동화의 세계

광장시장의 빈대떡집에 가면 이 사진 붙어있었는데 아직도 있나 모르겠습니다.

팀버튼 영화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동화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인데, 그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냥 예쁘기만한 동화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악몽 (Nightmare before Christmas)’과도 같은 어두운 동화라는 것입니다. ‘기괴하다’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동화라면 동화이니 음악도 그에 맞게 환상적인데 기괴하게 나오겠지요.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대니 엘프먼은 곡의 섹션과 섹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방식보다는 단절 짓고 다른 섹션이 시작하고 그 섹션을 단절 짓고 앞 섹션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는 형태로, 다소 전형적이지 않은 진행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게 이 사람 음악의 형식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리듬적으로는 싱코페이션(Syncopation)은 잘 안쓰고 정박에 딱딱 떨어지는 리듬을 많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이 사람 음악의 특징이에요.

 

음색적으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위해서 여성 합창이나 보칼리제(Vocalize)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건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부터 한동안 즐겨 사용했더군요.

팀버튼과 대니 엘프먼은 이후로도 상당 기간 영화를 같이 했습니다. 팀버튼이 승승장구 하던 시절의 영화 음악은 전부 대니 엘프먼이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배트맨(Batman)’ 시리즈도 있구요, ‘화성침공(Mars Attack)’, ‘빅 피쉬 (Big Fish)’, ‘찰리와 초콜렛공장(Charle and the Chocolate Factory)’, ’유령신부 (Corpse Bride)’, 등등이 팀버튼과 대니 엘프먼 콤비의 영화들입니다.

위 음악들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말씀드렸던 정박에 떨어지는 ‘우직한’ 리듬과 여성 합창이나 보칼리제를 사용한 특유의 스타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나옵니다. 

 

팀 버튼과 가장 마지막 작업이었던 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영화는 영화도 팀버튼적이고 음악도 엘프먼적이었지만 그래서 너무 익숙했는지 좀 ‘식상하다’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엘프먼의 전성기(?)는 이 때까지라고 보이는 듯 싶지만, 사실 이 작곡가는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고, 어느 순간부터는 블록버스터급의 액션영화들도 자주하는 ‘귀하신’ 작곡가에요. ‘서머스비 (Sommersby)’, ‘맨인블랙 (Man in Black)’, ‘굿윌헌팅 (Good Will Hunting)’, 이안감독의 ‘헐크 (Hulk)’,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Spider Man)’,  ‘원티드 (Wanted)’, 터미네이터 4 (Terminator 4 Salvation)’ 등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을 해왔습니다. 근데 이런 영화들에선 말씀드렸던 본인의 특징이 잘 나타나진 않더군요. 여전히 좋은 작곡가이지만 ‘일반적’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람이 박제된 것처럼 한 순간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실력면에서 좋은 것임은 분명합니다만, 한때 가위손의 음악을 몇 개월씩 들으며 ‘정규 음악교육은 안받고 젊었을 적에 다소 실험적인 밴드를 했다는 사람의 음악이라 이렇게 신선하구나’하면서 감탄하고 좋아했던 저로서는 최근의 ‘일반적’인 엘프먼은 많이 아쉽습니다. 다른 작곡가들도 초기엔 자신의 개성을 ‘날 것’으로 보여주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상업적인 영향이 짙어지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엘프먼은 언젠가 집대성한 자신의 스타일을 더 유려하게 구사하는 영화 음악을 들려줄 거라 바라고 있어요.


내친 김에 이번 주에는 다시 ‘가위손’의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나 자르러 가야겠습니다. 하하.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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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음악과 사운드 위주로 보는 글. 몇 박자 늦게, 근과거의 영화들을 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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