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위바위보가 끝난 이유

이별을 소화시키는 남자 제 6화

너를 바꾸기 위해 너와 벌이는 싸움보다는,

나를 바꾸기 위한 나와의 싸움을 이기는 게 행복한 연애의 지름길

여성들은 남성들과의 싸움을 답답해한다. 싸움 그 자체가 일종의 감정소통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남성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쯤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도무지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란 생각이 들 경우엔 일단 사과부터 하며 그저 싸움을 피하려고 든다. 이때 ‘내 이야길 들어 달라.’는 소통을 거절당한 일부 여성들에게선 ‘내 이야기를 듣도록 만들어야겠다.’는 투쟁심이 발휘되고, 그렇게 싸움은 그렇게 더욱 빈번해지고야 만다.

그런데 여성들이 모르는 남성들의 속내도 있다. 연애칼럼니스트인 나에게 접수된 많은 남성들의 상담을 종합해 보면 그들은 그저 귀찮아서가 아니라, 내가 더 사랑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도무지 이길 수가 없으므로 싸움을 피한다는 거다. 물론 케이스바이케이스겠지만, 꽤 많은 여성들이 남자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다.


1.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지쳐버리게 될 거야.

2.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해준다면 좋겠어.

우리의 가위바위보가 끝난 이유

남자가 여자를 더 사랑해야 관계가 행복하게 유지된다는 전설(?). 언제나 내가 너를 조금 더 사랑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은 약점이 된다. 그러니 여자 친구의 잘못이 명백한 상황이라 해도 결국엔,


“그래. 내가 다 나쁜 거네. 오빤 그런 나쁜 날 왜 사랑해?”

“오빤 날 사랑한다면서 날 나쁜 여자로 만들고 싶어? 날 사랑하는 건 맞아?”


라는 말로 말문이 막혀버리는 전개가 돼 버리고 마는 거다.


“당연히 사랑하지. 사랑하니까 이러잖아. 우리가 더 싸우지 않으려면 너도 이런 건 이렇게 바뀌면 어때?” 라는 식으로 그녀를 다그치기라도 한다면, 


“오빠. 나 하루 종일 너무 힘들었거든? 몸도 안 좋구. 나 아픈데 그만하면 안 돼?”

 

라는 2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이때, 몇몇 고수들은 눈물까지 반짝이며 치명적인 마무리 멘트를 읊조린다. 


“근데 참 슬프다. 나만 불행한 것 같아. 오빠 만나서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이러니 ‘내가 전부 다 미안해.’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너보다 너를 더 사랑해야 하니까. 

우리의 가위바위보가 끝난 이유

미진이는 나를 만나는 동안 몇 번의 불행함을 느꼈을까. 분명한 건, 그녀는 행복을 느꼈던 순간과 불행함을 느꼈던 순간의 뺄셈을 통해 마이너스의 결과를 내렸을 거란 사실이다. 문득 그녀가 가장 행복해했던 순간은 언제였을지 궁금해졌다. 오사카 가정식 카레를 전문으로 하는 이 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도 행복해했고, 밥을 다 먹은 뒤 들른 근처의 카페에서 맛있는 라떼를 먹었을 때도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보다 더 꾸밈없던 그녀의 웃음이 분명 있었다. 명품가방을 사줬을 때도, 가보고 싶다던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을 때도 아니다. 언제였더라...

우리의 가위바위보가 끝난 이유

가위바위보다. 주문한 카레가 서빙된 순간 확실히 생각났다. 갈라져 있는 소시지를 가위로, 알맹이가 큰 감자를 바위로, 당근을 보자기로 정한 뒤 몇 번이나 가위바위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히 미진이가 가장 행복해했던 순간은 나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겼을 때다. 우린 틈만 나면 ‘하나빼기일’, ‘묵찌빠’ 등 다양한 방식의 게임을 즐겼었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묵찌빠를 특히 잘했는데, 10번 게임을 하면 나는 겨우 한 번을 이길 정도였다. 특별한 내기 조건을 걸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내게서 승리를 얻었단 사실에 대단히 기뻐하곤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가위바위보가 끝난 이유

나를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귀여웠으니까. 하지만 그 승부욕이 냉정한 이기심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 게 문제다. 함께 영화시사회를 응모했을 때다. 그녀가 먼저 신청을 하고 내가 당첨률을 높여보겠다며 뒤늦게 신청을 했는데, 나만 당첨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보고싶던 영화를 보게 됐단 사실에 기뻐할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본인 대신 내가 당첨됐단 사실에 지나치게 분개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서도, 식사를 하는 중에도 한참을 속상해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는 것이 속상했다. ‘우리’보단 ‘나’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엿본다는 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우린 그로 인해 몇 차례 싸움을 벌였다. 그녀는 쓸데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말했고, 나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다른 일련의 사건들과 연결돼 있다며 서로를 이기려 애썼다. 나는 왜 굳이 그녀를 이겨야만 했을까. 그렇게나 날 이기는 걸 행복해하던 그녀를 사랑했다면, 승부쯤이야 양보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런 내 모습에서 사랑이 식었음을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매 순간, 그녀는 불행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씁쓸했다. 차라리 비기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가위바위보는 끝나지 않았을 텐데. 

우리의 가위바위보가 끝난 이유

연애는 ‘이기려는 마음을 먹어야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스포츠나 게임과는 다르다. 그래서 연애를 잘 한다는 건, 승부에 상관없이 그 관계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순간의 행복함보다는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 있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인 이상,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서라도 서로를 놓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에게 완벽함을 바라선 안 된다. 불완전한 두 명이 만나 서로를 통해 완벽해지는 게 연애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 세상 속에서, 연애만큼은 열심히 하는 모습만으로 만족해도 좋지 않을까. 

이별소화레시피 

다수의 사람들은 본인을 바꾸려 드는 연인을 적대시하곤 한다. 그럼 생각해보자. 우린 우리의 어떤 면을 지키고 싶은 걸까? 만약, ‘옛날 연인과의 연애에선 안  이랬는데.’ 라는 식으로 지난 연애까지의 당신을 지키려 하는 거라면 그건 당장 고쳐야 한다. 지금 연애의 역사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시작됐다. 그 이전의 모습은 변화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를 만나기 전 대과거 속 자신의 모습은 웬만하면 리셋해 두는 편이 좋다. 한 가지만 더 명심하자. 즐거운 연애를 위해선 ‘나를 바꾸지 않기 위해 벌이는 남과의 싸움’ 대신, ‘나를 바꾸기 위해 벌이는 나와의 싸움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이별 후에 상대방을 위해 더 사랑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덜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와 싸웠으므로.

맛집정보 : 카타코토카페 / 서울 마포구 동교로 148-6. 02-3141-5151
20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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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보단 불안을 즐깁니다. 요즘남자요즘연애 [소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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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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