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 나폴레옹·카사노바·비스마르크가 사랑한… 겨울 바다의 ‘꿀’

굴, 맛·영양 모두 갖춘 제철 별미

전남 고흥에선 기름장 찍어 먹어



경남 통영과 거제, 전남 고흥 등 굴 양식으로 이름 난 지역에서는 겨울 굴을 ‘꿀’이라고 부릅니다. 굴은 추운 한겨울에 가장 맛있거든요. 서양에서는 굴을 ‘바다의 우유’라고 부릅니다. 제철을 맞아 통통하게 살 찐 굴의 속살이 우유처럼 뽀얗기도 하지만 맛도 우유처럼 고소하거든요.


◇정열·정력적 名士들이 즐긴 이유


굴에는 글리신이나 글루타민산 같은 아미노산이 풍부합니다. 아미노산은 우리 혀에서 ‘맛있다’ ‘달다’고 느끼는 감칠맛 성분입니다. 굴의 아미노산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함량이 크게 늘어납니다. 찬바람이 나는 늦가을부터 겨울이 굴의 제철인 건 그런 까닭입니다.


굴은 맛만 좋은 게 아니라 영양도 풍부합니다. 그러면서도 열량은 낮아 살찔 걱정 없으니 현대인에게 알맞은 건강식품이지요. 칼슘, 철분, 인, 마그네슘 등 몸에 이로운 영양소와 미네랄,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요. 필수아미노산 함량은 소고기보다 높고요. 소화 흡수가 잘돼 어린이나 노약자, 회복기 환자에게 더없이 좋은 식품입니다. 시력 저하로 고민하는 사람,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에게도 효능을 발휘한답니다.



특히 아연은 달걀보다 30배나 더 많답니다. 아연이 부족하면 정자 숫자가 줄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 능력이 떨어집니다. 아연이 ‘섹스 미네랄’이라 불리기도 하는 까닭이죠.


그래서일까요, 정력적 혹은 열정적이라고 소문 난 명사(名士)들이 하나같이 굴을 즐겨 먹었습니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는 한번에 12개씩 하루 네 번 먹었고, 프랑스 문학가 발자크는 한자리에서 무려 1444개를 먹어 치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폴레옹, 비스마르크도 굴 애호가였다고 하고요.


◇‘자연 굴’을 양식한다는 모순


맛도 영양도 뛰어난 굴을 우리 인간이 오래 전부터 즐겨 먹은 건 어쩌면 당연하겠죠. 서양에선 기원전 1세기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굴을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선사시대 때부터 사랑 받아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생긴 패총(貝塚)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조개가 바로 굴입니다.


과거 굴은 한반도 전역에서 고르게 생산됐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를 뺀 전국 칠십 고을의 토산품으로 굴이 기록됐습니다. 1908년 일본인들이 쓴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는 근대식 양식 이전 조선의 굴 산지로 ‘함경도 황어포·영흥만, 낙동강 하구 동쪽 일대, 광양만, 순천만(여자만), 보성강, 강진만, 충청도 천수만, 황해도 용위도 등’을 꼽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신문에는 ‘원산 모려’와 수원의 ‘남양석화’가 유명하다고 자주 나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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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의 굴 양식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됐습니다. 전남 고흥이 최초 굴 양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갯벌에 돌멩이를 던져놓고 작고 어린 굴 종패(種貝)를 붙이는 ‘투석식’이 가장 오래된 양식법. 그러다 ‘지주식’이 등장합니다. 기다란 나무를 박고 굴을 붙여 키운다. 굴 양식을 일찍 시작한 충남 보령 천북면에는 지주식이 많았습니다. 최근 대세는 ‘수하식’입니다. 경남 통영, 전남 여수 등 주요 굴 양식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어린 굴이 다닥다닥 붙은 줄을 바다에 내려 키웁니다.


양식법은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투석식과 지주식은 자연산 굴과 자라는 환경이 비슷하다 보니 맛도 비슷합니다. 바닷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공기와 햇빛에 노출되기를 반복해 맛의 밀도가 높고 육질이 탱탱하죠. 대신 성장이 더디고 씨알이 잘아요. 반면 수하식은 24시간 내내 바닷물에 잠겨있다 보니 영양 섭취량이 훨씬 많고 그만큼 크게 빨리 자라죠. 대신 살짝 싱거운 편입니다.


지난해 11월 충남 보령 천북으로 굴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이 곳에서는 얼마 전부터 ‘자연 굴’을 ‘양식’하고 있습니다. 자연산을 양식한다니 모순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이 굴들은 태생은 자연산입니다. 해녀들이 배 타고 먼바다로 나가 갯벌이나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굴을 채취합니다. 이 굴을 가져다가 망에 담아 40일 가량 양식합니다. 치어를 잡아다가 양식장에서 크게 키우고 살찌워 판매하는 참치, 방어 등 생선과 같은 방식입니다. 자연산과 양식산의 장점을 섞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굴 양식법이죠.


자연 굴과 양식 굴을 비교해봤습니다. 자연 굴은 껍데기가 좁고 길쭉하면서 물결 무늬가 있었습니다. 양식 굴은 동그랗고 물결 무늬가 없었습니다. 자연산이건 양식 굴이건 종류는 참굴로 같습니다. 하지만 자라는 환경에 따라 모양과 맛이 달라지는 거죠. 자연산은 갯벌 바위에 붙어 살다 보니 밀물과 썰물에 적응하고, 양식 굴은 잔잔한 바다에서 지내다 보니 차이가 생깁니다.


까보니 자연 굴은 알맹이 테두리가 누르스름 옅은 색이고, 양식 굴은 검정에 가깝게 진한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맛도 다릅니다. 양식 굴은 짭짤하면서 약간 싱겁고, 자연 굴은 짭짤하면서 동시에 단맛과 감칠맛이 함께 느껴집니다. 굴 특유의 향도 자연 굴이 더 짙습니다.


◇굴 껍데기까지 요리에 쓰는 ‘피굴’


굴을 오래 전부터 먹어온 만큼 조리법도 회·구이·밥·죽 등 다양하게 발달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전집(星湖全集)’에 ‘굴을 순무에 잘게 섞어 김치를 만들어서 술안주로 먹었다’고 썼습니다. 1924년 발간된 한식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굴밥, 굴김치, 굴장아찌, 굴전, 굴회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굴은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귀했고, 아무나 쉽게 먹지 못하는 별미였죠. 1887년 전남 고흥에서 굴 양식을 시작하고, 1960년대 경남 통영에서 양식이 본격화하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굴이 흔한 지역답게 고흥과 통영에서는 다양한 굴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고흥에는 ‘피굴’이라는, 굴 껍데기까지 사용하는 독특한 향토 음식이 있습니다. 겨울부터 초봄에 주로 먹는 음식인데, 요즘은 쉽게 찾을 수가 없어서 고흥에서도 할 줄 안다는 식당에 미리 부탁을 해놓아야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해주식당’에서 피굴을 맛봤습니다.


식당 주인 김순옥씨가 들고 나온 커다란 대접에는 맑으면서도 뽀얀 국물이 담겼는데 잘게 썬 쪽파와 참깨가 동동 떠 있고, 국물 안에는 굴 알맹이가 잔뜩 들었습니다. 차가운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니 그렇게 시원하고 개운할 수가 없습니다. 해장용으로 최고일 듯싶었습니다.


김씨는 “굴을 피(皮) 그러니까 껍질째 끓인다 해서 피굴'이라더군요. “굴을 껍질째 물에 넣고 은근한 불에서 20분쯤 삶아요. 굴을 건지고 국물을 가만두면 불순물이 가라앉아요. 몇 번 걸러 맑은 국물에 소금 간만 해요. 여기다 굴 알맹이를 까 넣죠. 자연산 굴이라야 이렇게 뽀얀 국물이 나오지, 양식 굴은 시커먼 국물이 나와 못해요.”


국내 최대 굴 생산지인 통영과 인근 거제에는 ‘굴구이’ 전문 식당이 많습니다. 구이라지만 찜에 가깝습니다. 바닥이 납작하고 테두리 높은 사각형 스테인리스 냄비에 굴을 껍질째 가득 담아 내옵니다. 불에 올리고 뚜껑을 덮어 10분쯤 지나면 종업원이 뚜껑을 열어줍니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가운데 탱탱한 굴들이 보입니다. 칼을 껍데기 사이에 넣고 살짝 비틀면 탱탱한 굴이 쉽게 떨어집니다. 초고추장을 찍어 먹지만 자체 간이 찝찔하게 돼 있어서 그냥 먹어도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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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는 굴을 참기름에 소금을 넣은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기름장과 굴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통영과 거제, 창원의 일부가 된 옛 마산, 진해 등지에서는 설날 떡국에 굴을 넣어 먹습니다. 감칠맛이 진하면서도 시원하고 개운하고 담백하죠.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 아니라 현지인 집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긴 합니다.


참, 고흥에서는 굴을 기름장에 찍어 먹습니다. 음식 취재하러 전국을 다녀봤지만 아직까지는 고흥에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구워 먹을 때 쓰는, 참기름에 소금을 넣은 기름장 말입니다. 이상하다고요? 꼭 시도해보세요. 의외로, 정말 맛있습니다. 꼭 시도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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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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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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