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 MZ는 ‘뉴포’에서 추억을 마신다

낡은 듯 감성 가득한 ‘뉴포’가 MZ세대의 외식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노포 감성에 위생과 가격을 더한 신상 맛집의 인기 이유, 지금 확인해보세요.

[아무튼, 주말]

일부러 낡아보이게

신개념 노포의 유행

지난 17일 저녁 7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해산물 식당 ‘꺼꾸잽이 초장집’은 입구부터 알록달록한 천막으로 꾸며져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드럼통 위에 은쟁반을 올린 듯한 철제 테이블과 동그란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알록달록한 천막과 대나무 발 위에 손으로 쓴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포장마차’를 콘셉트로 한 해산물 식당. 작년 11월 문 연 신상 맛집이지만 인테리어는 마치 추억 물씬한 포장마차처럼 꾸몄다. 1970~80년대식 길거리 포장마차에 익숙한 중장년층을 겨냥했다고 생각하면 오산. 손님 10명 중 9명은 20~40대 젊은 층이다.

천장엔 만국기, 대나무 발 걸린 벽엔 손으로 쓴 메뉴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스테인리스 쟁반 올린 드럼통 테이블까지. 얼핏 수십 년 된 포장마차처럼 보이지만 개업 반년 된 ‘뉴포’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뒤집어 단 간판과 포장마차처럼 꾸민 가게 입구. 포장마차 콘셉트의 뉴포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트로(retro·복고) 콘셉트가 외식 업계와 패션 업계를 강타한 데 이어 요즘에는 노포(老鋪)를 콘셉트로 한 식당이 늘고 있다. 노포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오래된 점포’를 뜻하는 말로, 을지로나 종로의 작은 골목에 몰려 있는 서민을 위한 식당·주점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노포라는 이름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은 ‘대를 이은 역사성’. 하지만 요즘에는 노포 아닌 노포 식당이 인기를 얻는다. 노포의 콘셉트를 이어받은 ‘뉴포’(new+노포)다. 뉴포는 신생 브랜드나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노포의 형식을 빌린다. 인테리어나 소품은 물론, 메뉴까지 과거 피맛골이나 익선동 포장마차, 을지로 골목길에 있던 매장의 그것과 똑 닮았다.


작년 9월 문을 연 서울 용산구 피롤츠 커피하우스는 과거 다방 콘셉트의 카페다. 빨간 ‘레자(인조 가죽)’ 씌운 의자에 붉은색 나무 인테리어까지 옛 다방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이 카페에는 헐렁한 바지에 배 드러낸 크롭티 입은 젊은 층이 줄을 선다. 크림을 잔뜩 올린 비엔나 커피가 대표 메뉴. 저녁에는 와인 안주로 육개장 사발면을 판다.



조선일보

옛 다방 콘셉트의 카페인 피롤츠커피하우스. 작년 말 문을 연 신상 카페이지만 비엔나 커피 같은 메뉴나 내부 인테리어는 오래된 노포와 같다. /피롤츠커피하우스

최근 급격히 늘어난 냉동 삼겹살 식당도 뉴포 트렌드에 편승한 식당들이다. 삼겹살 대중화 초창기였던 1980년대에는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의 육류가 냉동 상태로 유통됐다. 육절기로 얇게 썰어낸 냉동 삼겹살이 추억의 이름이 되면서 냉삼 전문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이모(식당 주인을 정겹게 이르는 말)’가 날마다 다른 차림으로 내어주는 ‘이모카세’에 열광하고, 알려지지 않은 옛 식당을 경쟁적으로 소개하는 맛집 인플루언서가 리드하는 젊은 층 소비 트렌드, 서울 도심 재개발로 인한 오래된 맛집 골목의 소멸, 인테리어 비용 절감 기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최근 몇 년 새 뉴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5년 넘게 외식 업체 인테리어를 담당해 온 차부철 대흥디자인 실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인건비도 폭등하면서 기존 공간을 재활용하거나 인테리어 비용을 낮추기 위해 등장한 것이 ‘노포 콘셉트’의 가게”라며 “점주의 창업 비용을 낮추는 것뿐 아니라 인테리어 비용을 줄인 만큼 음식 값도 저렴하게 제공해 고객을 잡는 방법으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기존 노포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화장실이나 주방의 위생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도 젊은 층이 뉴포를 찾는 이유다.


피맛골과 대학로, 을지로 인쇄 거리의 터줏대감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추억을 복원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오늘도 뉴포를 찾는다.


이미지 기자 

2025.06.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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