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그스름한 육즙이 쫙~ ‘레어 돼지구이’가 유행이네

[푸드]by 조선일보

삼겹살 사랑하는 한국인

살짝 익혀 먹는 게 유행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한 돈가스 전문점. 안심 돈가스 속에 붉은빛이 돌았다. 종업원에게 “고기가 빨갛다”고 하자 “먹을 만큼 익은 것”이라고 했다. 옆 테이블 돈가스는 생고기처럼 보일 만큼 빨갰다. 불그스름한 육즙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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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한 돈가스 전문점의 안심 돈가스. 바싹 익히지 않아 속이 불그스름하게 보인다. /이미지 기자

돼지고기는 잘 익혀 먹어야 한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돈가스와 삼겹살 등을 완전히 익혀 먹지 않는 게 유행이다. 2021년 외식 사업가 백종원 대표가 한 방송에서 “(과거와 달리) 지금은 돼지고기를 완전히 안 익혀 먹어도 된다”며 “완전히 익기 직전이 제일 부드럽다”고 한 뒤 이런 돈가스 가게가 늘고 있다. 제주 흑돼지 식당들도 “바짝 익히면 맛이 없다”며 레어(rare)로 먹길 권한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사진 한 장이 ‘덜 익혀 먹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덜 익은 고기를 먹고 기생충에 감염된 환자의 CT 사진이었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대한한돈협회가 “국내산 돼지고기는 덜 익혀도 안전하다”는 반박 자료를 냈다. 대체 무슨 사진이길래?

◇ 삼겹살 사랑하는 한국인 놀랐다

지난 28일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샘 갈리 박사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대퇴골에서 무릎 아래까지 흰색 쌀알 같은 낭종이 퍼진 환자 사진이 올라왔다. ‘낭미충증’ 감염 환자의 CT 사진. 낭미충증은 갈고리촌충의 유충인 낭미촌충이 자라면서 근육이나 뇌 같은 조직에 침투해 낭종이나 병변을 형성하는 증상이다. 갈리 박사는 “낭미충증 예방을 위해 절대로 날고기나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삼겹살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조사한 외식 소비 패턴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한국에서 외식 메뉴로 가장 인기는 ‘돼지고기구이’였다. ‘밖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라는 말이 ‘외식할까’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갈리 박사가 공개한 사진을 본 한국인들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대한한돈협회는 “국내에서는 덜 익은 삼겹살 섭취로 인한 낭미촌충 감염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인분을 먹여 ‘똥 돼지’ 키우던 시절은 과거일 뿐 돼지가 사료 먹고 크는 지금은 낭미촌충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9년 이후 국내산 돼지고기로 낭미촌충에 감염된 사례는 없었다. 1980년대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돼지 먹이를 사료로 바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국내산 돼지고기를 통한 낭미촌충 감염 우려는 없다고 말한다. 기생충학 박사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중남미 쪽은 아직 인분을 먹여 돼지를 키우기도 하고, 호주에서 감염 사례가 나오긴 했지만 국내에서는 감염 사례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돼지고기를 구태여 바싹 익혀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 한국도, 독일도 날로 먹는다

익히냐 덜 익히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날로 먹기도 한다. 제주도나 전라도 등에서는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던 문화가 있다. 개인이 도축하던 시절 이야기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은 “과거 제주도에선 잔치 때마다 돼지를 마련하는 ‘도감’이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도감이 돼지를 도축할 때 갓 잡은 돼지에서 단단한 비계가 있는 목덜미 부위는 생으로 나눠 먹었다”면서도 “돼지고기를 육회로 먹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다리살이나 등심 등은 덜 익혀야 식감이 부드럽다”고 말했다.


지금도 맛볼 수 있다. 전남 무안의 장부식육식당은 ‘암퇘지 육회’를 판다. 1968년부터 돼지 육회를 판매한 이곳은 돼지 목덜미 부위를 야채와 함께 빨갛게 무쳐 낸다. 이 식당 김석종 사장은 “옛날엔 도축 직후 돼지고기를 생으로 썰어 소금에 찍어 먹기도 하고, 육회로 내기도 했다”며 “요즘은 전날 도축한 돼지고기를 다음 날 새벽에 받아 육회를 만든다”고 했다. 인근에서 도축한 국내산 돼지고기만 사용하고, 매달 한돈 협회에서 직접 심사를 받는다. 경기도 양평에도 특정 기간에만 돼지 육회를 파는 식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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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장부식육식당의 돼지고기 육회. /업체 홈페이지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는 국가가 한국만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메트 부어스트라는 돼지고기 육회와 이 육회에 양파 등을 꽂아 고슴도치 모양으로 만든 메티겔을 먹는다. 다진 생돼지고기와 양파를 빵에 끼우면 멧브로첸이라는 샌드위치가 된다.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지방이 35% 이상 되지 않아야 한다. 태국에서도 술을 마시며 돼지고기 육회를 먹는 ‘먹방’이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돼지 호흡기에서 발견되는 연쇄상구균에 감염돼 목숨을 잃은 사람이 24명으로 늘어나자 태국 정부는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 섭취를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 다국적 돼지는 생식 주의

모든 돼지고기가 생식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작년 국내에 수입된 육류 중 가장 많은 것(30%)은 돼지고기로 54만7000t에 달한다.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중 상당수가 물 건너온 다국적 돼지들이다. 수입량이 가장 많은 건 미국산. 이베리코로 유명한 스페인 돼지고기와 캐나다·칠레·네덜란드가 2~5위를 차지한다. 박경희 농축산식품부 검역정책과장은 “수입 돼지고기도 기생충과 질병이 없다는 검역 조건을 통과해야 수입된다”면서도 “수입 돼지고기의 경우 유통 과정이 길고, ‘익혀 조리하는 것’을 전제로 세균 수 등의 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생식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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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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