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한국 전통 유산에서 글로벌 트렌드로
한옥이 이제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빛나는 한옥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상상 이상의 K-컬처 웨이브를 일으키며, 배경으로 비친 한국 전통 건축 한옥에 새로운 빛을 던졌다. 한옥이 애니메이션 스토리 속 감성을 표현하는 특별한 미장센이 되며, 한국 여행객들의 버킷 리스트 최상단에 오르고 있다.
SNS에는 ‘#hanok’, #한옥’ 해시태그가 올라오고, 골목길에 숨어 있는 기와지붕의 한옥이 한국 여행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 잡았다. 아름다운 한국 전통 유산 한옥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트렌드이자 아이콘으로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
![]() 북촌 ‘수경재’ 마당 기와 너머로 보는 서울 도심 풍경. 현대적 빌딩 속에 조화롭게 자리한 한국 전통 유산 한옥이 글로벌 트렌드이자 아이콘으로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 수경재. |
북촌 한옥마을이 K-컨텐츠 속 주요 배경이 된 이후, MZ세대 여행객들은 한옥 감성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기와지붕 아래로 모인다. 오래된 마룻바닥에 앉아 낮은 처마와 중정을 거닐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을 느끼고자 한다. 한옥을 향한 글로벌한 관심과 애정은 한옥이 K-컬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우 매혹적인 캔버스임을 깨닫게 한다. 한옥 그 자체가 K-콘텐츠가 됐다 할 수 있다.
한옥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미적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흙과 나무, 한지로 지어진 건축 그 자체가 자연이며, 하늘, 산, 땅의 일부인듯 조화를 이룬다. 한옥이란 건축 감상 이상의 수많은 감정을 느끼는 힐링의 시간을 경험했다고 한결같이 찬사를 보낸다.
글로벌 추앙을 받는 한옥의 인기 가운데, 북촌 가회동 언덕에 자리 잡은 수경재 (收景齋)가 눈에 띈다. 광주요 그룹이 전통 한옥 공간 수경재를 복원하여, 명품 도자 브랜드 ‘광주요 북촌점’과 한식 디저트 브랜드 ‘아라리(ARARI)’를 함께 담아낸 복합문화공간이다. 광주요 이천센터점, 한남점에 이어 3번째 직영점인 ‘광주요 북촌점’은 광주요의 리브랜딩 요소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공간으로 의미가 깊다.
![]() ‘수경재’를 복원한 ‘광주요 북촌점’은 현재 프라이빗 예약과 대관을 통해서 운영되고 있다. 수경재. |
![]() 수경재는 사랑채–대청–안채–누마루를 잇는 전통 한옥의 구조를 충실히 복원했다. 수경재. |
수경재는 밝을 수(收), 빛 경(景), 집 재(齋)라는 뜻을 담은 이름으로, 전통과 문물이 모여 조화를 이루고, 환한 길 위를 함께 오가는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 사랑채–대청–안채–누마루를 잇는 전통 한옥의 구조를 충실히 복원했다.
![]() 수경재에 자리한 카페 ‘아라리(ARARI)’.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2023에 7년 연속 미쉐린 3스타로 선정된 ‘가온’의 김병진 부사장이 새롭게 선보이는 한식 디저트 브랜드다. 아라리. |
수경재에 자리한 ‘아라리(ARARI)’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2023에 7년 연속 미쉐린 3스타로 선정된 ‘가온’의 김병진 부사장이 새롭게 선보이는 한식 디저트 브랜드다. 특히 시그니처 음료인 ‘홍시 수정과’가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생강과 계피를 달인 전통 음료 위에 곶감을 담가 즐기던 전통 수정과를 재해석했다. 보기에도 아름다우며, 홍시의 속살을 정성스레 골라 부드럽게 다듬고 동그랗게 빚은 ‘란(卵)’ 을 터뜨려 즐길 수 있게 해, 미감과 촉감의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수경재와 아라리는 한옥 공간이 단순한 시각적 매력에서 미각과 감각의 무대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 전통 수정과를 재해석한 ‘아라리’의 시그니처 음료인 ‘홍시 수정과’. 홍시의 속살을 정성스레 골라 부드럽게 다듬고 동그랗게 빚은 ‘란(卵)’ 을 터뜨려 즐길 수 있게 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아라리. |
서울 도심만이 아니다. 강원도 영월 깊은 산속에는 ‘더 한옥 헤리티지(The Hanok Heritage)’가 있다. ‘더 한옥 헤리티지’는 종묘 정전을 모티브로 한 회랑 설계와 전통 목재 기법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2024년 유네스코와 국제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베르사유 건축상(Prix Versailles ) 호텔 부문에서 한옥 건축물 최초로1위를 차지하며 세계로부터 건축적 인정을 받았다.
이 호텔은 강원 영월 문개실 마을 부지 약 102,000평 위에 총 24개 객실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기존 회원제 독채 10채와 일반 고객용 객실 14개로 구성되었다.
![]() 강원도 영월 산속에 자리한 ‘더 한옥 헤리티지(The Hanok Heritage)’. 더 한옥 헤리티지 |
이번 9월, 독채 하우스 한옥에 이어 2년만에 오픈된 한옥 호텔 프로젝트에는 25명의 장인들이 참여했다. 나무의 성질을 존중한 목재 선정과 독자적 건조 기술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완성시켰다. 방음, 보온, 웃풍 등의 한옥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특수 공법과 첨단 설계 기술도 활용됐다.
객실 내부는 차분한 목재 톤과 공간감 있게 설계되어 있으며, 산과 강이 담긴 풍경이 창 너머로 펼쳐져 동양 수묵화처럼 감상하게 한다.
![]() 이번 9월 독채 하우스를 오픈한지 2년만에 한옥 호텔을 오픈했다. 더 한옥 헤리티지 |
![]() 프라이빗 수영장까지 갖춘, 독채 하우스 ‘선돌정’. 더 한옥 헤리티지. |
![]() 독채 하우스 ‘영월 종택’의 밤 풍경. 더 한옥 헤리티지. |
'더 한옥 헤리티지’가 내세우는 철학은 리빙 헤리티지(Living Heritage)와 뉴 헤리티지 (New Heritage)다. 누각 ‘별재’, 갤러리 ‘결’, 라운지 ‘고요’, 한식 레스토랑 ‘몬토’와 ‘나무’ 등 부대시설을 더해, 숙박을 넘어 한옥 문화를 체험하게 한다. 또한 조선 복식을 체험하는 프로그램, 한옥 도슨트 투어, 국악과 함께 계절 주안상을 즐기는 한국적 미식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한국적 경험 프로그램을 펼친다.
![]() ‘더 한옥 헤리티지’의 라운지 ‘고요’. 더 한옥 헤리티지. |
![]() 창밖으로 보이는 정자가 아름다운 레스토랑 ‘몬토’. 더 한옥 헤리티지. |
한옥이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부상한 데에는, 감성 소비의 변화와 자연 친화적 가치 추구라는 시대적 흐름이 크게 작용한다. 도시화와 획일화된 건축 환경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옥의 목재가 지닌 따스함, 기와지붕의 전통미, 중정의 여백, 채광과 통풍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늘의 미학은 하나의 정서적 경험이 된다. 또한 자연 재료 중심의 설계는 지속가능성과 친환경 가치라는 현 시대의 가치와 맞닿는다.
한옥 컨셉 카페와 갤러리들을 통해서도 한옥 재창조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북촌 가회동의 ‘푸투라 서울’은 한옥 처마 아래 대청마루에 앉아있는 듯한 차분함을 선사한다. 처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듯한 빛과 그림자 속에 전시된 현대 미술은 전통과 충돌하고 조화되며 독특한 미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지난 8월 경기 화성 제부도 인근에 오픈한 ‘한옥 버치(Hanok Butchi)’는 인공 폭포와 정원을 곁들인 대형 한옥 카페다. 통창 구조와 넉넉한 정원 동선, 내부와 외부를 잇는 동선이 특징이다. 한옥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유리와 철재 구조 요소를 섞어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폭포와 정원이라는 자연적 요소를 적극 끌어들여, 힐링 공간으로서 한옥의 매력을 강조한다.
![]() 경기 화성 제부도 인근에 오픈한 ‘한옥 버치(Hanok Butchi)’. 인공 폭포와 정원을 곁들인 대형 한옥 카페다. 한옥 버치. |
서울시도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23년부터 ‘새로운 한옥, 일상 속 한옥, 글로벌 한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한옥 4.0 재창조 추진계획’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런 정책 변화는 북촌, 서촌을 넘어 종로, 성북, 강남 일대까지 한옥 활용 공간이 확산되는 배경이 된다.
이와 더불어 ‘한옥스테이’, ‘옥캉스’, ‘한옥 워케이션’ 같은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면서, 한옥은 여가 공간, 휴식 공간, 일하는 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 2025서울한옥위크는 공공 한옥 7곳을 무대로 삼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펼친다. 근대기 건축가 배렴이 거주했던 ‘배렴 가옥’. 배렴 가옥. |
2025년 제3회를 맞이하며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리는 ‘서울 한옥위크’도 K-컨텐츠로서 한옥을 만나게 한다. 한옥을 감상하는 공간에서 체험하고 느끼고 교감하는 복합문화로 진화시켰다. 이번 전시는 ‘정원의 언어들’(Garden Languages)라는 주제로, 공공한옥 및 민간 한옥 정원과 조경을 매개로 한 시각, 공간의 언어를 탐구하고, 조경 작가, 플로리스트, 전통공예가 등이 참여한 협업 전시가 마련된다.
강연 및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에서는 한옥의 미래, 정원 문화, 한국 전통 정서의 확장 등을 주제로 한 건축가, 조경가, 큐레이터들의 토크가 이어지고, 몇몇 프로그램은 외국인 전용 산책 투어로 진행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다도, 전통 꽃꽂이, 한옥 모형 만들기, 목공 워크숍, 정원 산책과 명상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며, 공연 섹션은 클래식, 국악 크로스오버, 열린 공간 콘서트 등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 한옥위크’는 한옥이 상업 공간의 유행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도시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 서촌의 상촌재.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상류 한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어 가치가 높다. 상촌재. |
![]() 서촌의 대표적인 공공 한옥 ‘홍건익 가옥’. 홍건익 가옥. |
흥미로운 것은, 한옥이 지닌 공간 철학 자체가 지금의 삶과 의외로 완벽히 호흡한다는 점이다. 중정은 현대 도시인이 갈망하는 ‘프라이빗 야외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미닫이문과 온돌의 구조는 플렉서블 오피스나 모듈형 주거와 결이 통한다. 한옥의 개방성과 유연성은 21세기 공간 디자인 키워드와 만나며, 감각적인 리노베이션과 미니멀 인테리어까지 더해져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가장 현대적인 무대가 된다.
이제 한옥은 단순한 전통 건축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한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안착시켜 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제시한다. 한옥이야말로 시대 초월의 타임리스 클래식이다. 그렇게 한옥은 한국 전통 유산으로 전시되는 과거의 유산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의 삶 속으로 퍼져 나가고 영감을 주는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김의향 THE BOUTIQUE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