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도, 밥 먹고 합시다

[푸드]by 조선일보

26. '퍼스트맨'과 우주식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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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은 인류 최초로 달에 선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분)의 달 착륙 미션을 다룬 영화다./UPI코리아

영화 ‘퍼스트맨(First Man)’에서 퍼스트맨, 즉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분)을 보고 있노라면 영어 단어 ’스토익(stoic)’이 떠오른다. 단어가 어쩐지 입에 좀 붙는다면 우연이 아니다. ‘극기심이 강한’이라는 형용사 스토익은 저 먼 옛날(기원 전 3세기~기원 후 2세기) 스토아학파(Stoicism)에서 가지를 친 단어이다. 제논에서 출범한 스토아 학파는 유물과 범신론적 관점에서 금욕과 평정을 실천하는 현자를 최고의 선이라 여겼다. 스토익학파가 ‘퍼스트맨’을 보았다면 닐 암스트롱을 상찬했으리라. 그는 금욕과 금기를 온 몸에 뒤집어 쓰고 다닌다. 우주 진출에서 소련보다 앞서 나가려는 미국의 경쟁 의식, 자신과 완전히 무관한 인류 전체의 우주 진출 염원에 가족이 당연히 느낄 법한 불안함까지 어깨에 짊어 지고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먹고 달 착륙을 수행했을까? ‘먹어야 산다’ ’밥 먹고 합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의 세 점으로 정삼각형을 그려 보자. 우주식(宇宙食) 개발의 멘탈리티는 이 삼각형의 울타리 안에 자리 잡는다. 생존에 필수인 영양은 기본이고 맛을 위시한 먹는 즐거움도 최대한 챙겨줄 수 있어야 한다. 변수는 역시 극미중력(microgravity)이 지배하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지구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요소를 원점에 놓고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


사실 우주에서는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부터 원점에 놓고 다시 봐야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음식이 제자리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떠다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음식물 부스러기나 국물은 기계의 오작동을 일으켜 작은 사고라도 전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포장 방식 등의 물리적 처리와 예방책이 중요하다. 미국의 머큐리 프로젝트(1959~1963년)는 한 입 크기 음식에 부스러기 통제를 위한 젤라틴 코팅을 도입했다. 일반 음식은 튜브나 깡통, 플라스틱 파우치 등에 밀봉 포장한다. 액체는 특별 제작한 빨대와 뚜껑 등으로 흘러 나오지 않도록 막는다. 식기나 포장을 뜯기 위한 가위 등은 자석, 벨크로 등을 동원해 쟁반에 딱 붙인다.


포장 형식이 무게나 저장 공간 및 여건 확보와 맞물려 가공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한정된 전력 탓에 냉장고를 쓸 수 없으니 상온 장기 보관도 가능해야 한다. 가장 흔한 가공 방식은 탈수 또는 동결 건조다. 수분을 없애 무게와 부피를 줄이고 미생물 발생을 막는다. 물을 부으면 부피가 늘어나는 컵라면 건더기와 같은 원리다. 말린 과일이나 육포 같은 지구의 탐험식은 중간 정도 수분을 지닌 음식이므로 우주에서도 그대로 먹을 수 있다. 한편 열안정 음식은 3분 카레 등의 레토르트 식품과 같아 열처리로 미생물이나 효소 등을 박멸한다. 쇠고기 스테이크나 훈제 칠면조 같은 음식은 열이 아닌 전리 방사선으로 처리해 같은 효과를 낸다. 견과류나 쿠키 또한 지구의 상태 그대로 우주에서도 먹을 수 있다. 신선한 과일이나 토르티아 같은 음식은 하루이틀 내에 먹는다는 조건으로 사기 진작을 위해 우주 정거장 재보급시 포함시키는 음식이다.


달 착륙이 아닌 우주 식사의 퍼스트맨은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다. 1961년 보스토크 1호로 지구 궤도를 돌 때 쇠고기와 간 페이스트로 식사하고 초콜릿 소스로 입을 가셨다. 둘 다 튜브에 든 상태였다. 한편 달 착륙의 퍼스트맨은 처음으로 우주에서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었고, 포장된 우주식을 숟가락으로 먹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의 메뉴는 쇠고기와 채소, 돼지고기와 감자 스캘럽, 캐나다식 베이컨과 애플 소스였다. 비상시에는 헬멧을 벗지 않고도 주입구를 통해 먹을 수 있는 비상식이 따로 마련됐었다.


우주 식사는 고되다. 중력의 부재 때문이다. 허리 아래 몰려 있던 혈액과 세포액이 위로 올라오니 코와 목이 부어 맛과 향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진다. 눈, 세반 고리관, 관절 등 감각기관과 뇌 사이의 혼란으로 평형감각을 잃어버려 생기는 우주비행 멀미도 영향을 미친다. 콜라, 맥주 등 탄산 음료는 구토에 가까운 트림이 나오는 문제 때문에 시도는 했지만 정착에는 실패했다. 영양소도 아주 적극적으로 조정해줘야 한다. 약해지는 뼈를 막기 위해 칼슘은 높이고 나트륨은 줄인다. 햇빛을 받지 못해 부족한 비타민 D는 요거트, 치즈 등 유제품으로 보충해준다. 심지어 최종 배설물의 굳기, 방귀의 빈도마저도 감안해야 하므로 동물 사료 전문가와도 협업한다. 요즘은 150가지 품목 가운데 열량, 개인 선호도 등에 맞춰 80종으로 개별 식단을 짜 2주에 한 번씩 메뉴를 바꾼다. 비행 5개월 전에 비행사들로부터 평가를 받아 설계에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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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 비빔밥 등 한국형 우주식./조선일보DB

2008년 이소연의 국제 우주 정거장 체류에는 한식도 당연히 포함됐다. 러시아 우주 식품 위주에 한식을 간간히 섞은 메뉴로, 러시아 의생물학 연구소로부터 최종 인증을 받은 한식 우주 식품 총 10종으로 4㎏을 꾸렸다. 김치, 볶음김치, 고추장, 된장국, 밥, 홍삼차, 녹차, 라면, 생식 바, 수정과였다.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CJ, 대상, 오뚜기, 농심 등 식품업체 연구소와 개발한 것. 물론 각각의 역할이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동결 건조, 고온 멸균 상태 포장을 위주로 개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전리방사선 멸균 식품을 맡았다. 부피와 무게는 크지만 지상에서 먹는 음식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 수 있다.


김치의 우주식 개발은 쉽지 않다. 젖산 발효가 맛을 결정하는 김치의 정체성 탓에 맛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리방사선 처리로 발효를 멈추고 캔에 담으며, 점성이 없는 국물이 흩어지지 않도록 캔 내부에 국물 흡수용 특수 패드를 붙였다. 밥은 기존의 동결 건조식과 달리 찰기를 지키기 위해 고온에서 살균과 포장을 동시에 가능한 기술을 적용해 수분을 65%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둘 다음으로 가장 한국적인 음식인 라면은 우주의 조건을 감안해, 면이 풀어지는 호화(糊化·또는 겔화gellification)가 지상보다 낮은 온도(70도) 및 시간(5분)에 가능하도록 개발했다.


[이용재 음식칼럼니스트]

2020.05.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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