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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아무리 연습해도 소금 치는 ‘간잽이 스냅’이 나오지 않았다

by조선일보

안동 간고등어 간잽이 체험

안동 간고등어 생산 핵심 과정인 '간잽이'를 김성윤 기자(오른쪽)가 체험하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베테랑 ‘간잽이’ 문경숙 ㈜안동간고등어 생산팀장이 팔을 가볍게 휘두르며 손목을 꺾었다. 손아귀에 쥐고 있던 소금이 장풍(掌風)처럼 날아가 반으로 가른 고등어 안쪽에 박혔다. 그냥 휙 뿌리는 듯 보였지만 굵은 천일염이 고등어 등 쪽에는 촘촘하게, 배 쪽은 성글게 박혔다. ‘제구력 아티스트’라는 투수 류현진 뺨치는 컨트롤 능력이다.


“이렇게 해야 간이 고등어 전체에 고르게 배요. 등은 두껍고 배는 얇으니까. 평균적으로 마리당 20g이지만 고등어 크기에 따라 소금양을 늘리거나 줄여요. 고등어를 손에 쥐면 자동으로 감이 옵니다.”


문 팀장이 알려준 대로 1시간 넘게 열심히 해봤지만 간잽이의 ‘손목 스냅’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소금이 너무 균일하게 뿌려지거나 뭉치기 일쑤였다. 결국 기자가 작업한 고등어 수십 마리는 ‘소비자에게 팔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물에 씻어낸 뒤 문 팀장이 다시 소금을 쳐야 했다. “얼마나 해야 팀장님처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2002년부터 간잽이 했으니 올해로 18년째네요. 하루에 7000손에서 명절 앞두고 바쁠 때는 1만손 넘게 작업해요.” 1만손이면 고등어 2만 마리다.

소금 덩어리 같던 옛 간고등어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예미정'의 간고등어 찜. 간고등어가 소금 덩어리처럼 짜고 딱딱했던 과거에는 굽기보단 쪄 먹는 경우가 흔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간잽이는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간잡이’의 경북 안동 사투리다. 하지만 간잡이보다 간잽이가 더 익숙할 만큼 간고등어는 안동 음식으로 이름났다. 안동에서는 오래전부터 영덕 강구항에서 실어 온 고등어를 먹었다. 강구항에서 안동까지는 약 80㎞. 지금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지만 예전에는 1박 2일이 걸렸다.


새벽에 강구항에서 고등어를 달구지에 싣거나 지게에 지고 오다가 해 질 무렵 황장재를 넘으면 챗거리 장터에 도착했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안동 임동면에 있던 장이다. 임동까지 오면 고등어가 맛이 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완전히 상해서 팔 수가 없게 된 고등어 배를 따 내장을 제거하고 빈 복부에 소금을 쳤다. 소금 간 한 고등어, 간고등어의 탄생이었다.


옛날 간고등어는 엄청나게 짰다. 류영동(59) 안동간고등어생산자협회 회장은 “염도가 20% 이상이었다”며 “그야말로 소금 덩어리였다”고 했다. “한 토막으로 온 가족이 먹었으니까. 그래도 참 맛있었어. 그때 간고등어는 ‘잘 썩었다’고 할까? 살짝 삭은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지면서 발효 쪽으로 넘어가 깊은 맛이 있었어요. 너무 짜고 단단하니까 구워 먹기보다는 쪄 먹었어요. 무쇠솥에 밥 안치고 쌀뜨물에 담가뒀던 간고등어 한 토막을 얹어요. 그러면 밥물이 넘나들면서 간고등어가 부드럽게 익어요. 그 한 토막에 온 형제가 달라붙어서 손가락 죽죽 빨면서 먹었죠.”


교통과 냉장 시설이 나아지면서 냉장·냉동 고등어에 밀려나던 간고등어가 안동 특산품으로 화려하게 귀환한 건 1999년이다. 류영동 회장은 “안동 간고등어가 전국적으로 뜬 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방문이 계기였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하면서 안동 간고등어가 서서히 알려졌죠.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을 방문하실 때 안동을 대표하는 지역 문화 상품으로 간고등어를 내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옛날 우리 어릴 적에는 어른 밥상에 간고등어 한 토막을 반드시 올렸습니다. 간고등어에는 안동의 어른 공경 문화가 짭쪼름하게 스며들어 있는 거죠.”

가을부터 겨울 가장 맛 좋아

생산 과정을 체험하기 위해 ㈜안동간고등어 공장을 찾았다. 위생 관리가 반도체 공장 수준으로 철저했다. 위생복과 마스크, 위생복, 고무 앞치마·토시를 착용하고 위생 장화를 신었다. 이물질이나 미세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 샤워기를 통과하고 손 소독까지 마치고야 작업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액젓을 연상케 하는 쿰쿰한 냄새가 공장 안에 가득했다.


간고등어 생산은 원재료 즉 고등어 구하기에서 시작한다. 안동간고등어생산자협회에는 14업체가 있다. 안동간고등어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협회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간고등어를 생산해야 한다. 고등어는 최소 21㎝ 이상 100% 국내산만 사용해야 한다. 문경숙씨는 “우리 회사에서는 남해 그것도 북제주 바다에서 잡은 고등어만 사용한다”며 “서해산 고등어는 무르고 좋지 않은 기름이 많으면서 살이 퍽퍽해 고객 클레임(항의)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국내 최대 고등어 집하장인 부산수산시장에서 안동 간고등어 업체들은 큰손으로 꼽힌다. 최고의 고등어를 구하기 위해 업체마다 상무·전무 등 임원이 경매에 나선다. 칼로 배를 따 내장까지 살펴보고서야 고등어를 사들인다. 연중 내내 사들이기는 하지만 고등어가 제철을 맞는 가을부터 겨울 그러니까 10월 중순부터 12월까지 고등어를 대량 매입해 급속 냉동한다. 류 회장은 “가을부터 나오는 간고등어가 역시 가장 맛있다”고 했다.


냉동 고등어는 하룻밤 상온에서 해동한다. 생고등어는 그대로 사용한다. 작업할 상태가 된 고등어는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물에 담가 세척한다. 가장 작은 체장 21㎝짜리 고등어 한 마리가 약 800g. 잠깐 동안에 고등어 수백 마리를 물에 담갔다가 꺼내는 작업을 반복하니 허리가 아팠다.


세척한 고등어는 습식(濕式) 염장 단계로 넘어간다. 커다란 통에 담긴 소금물에 1시간가량 담근다. 소금물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었다. 문경숙 생산팀장은 “다시마 농축액이 섞여 있어서 색이 진하다”고 했다. “고등어를 그냥 소금물에 염장하면 연한 하늘색을 띠지만, 다시마 농축액이 섞인 소금물에 담그면 갓 잡았을 때의 선명한 푸른색이 나와요. 마술처럼요. 감칠맛도 더 좋고요.”


1차 습식 염장을 마친 고등어는 간고등어 생산의 핵심 과정인 2차 건식(乾式) 염장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간잽이들이 투입된다. 습식 염장을 마친 간고등어는 염도가 약 3%. 간잽이들이 소금을 치면 5% 이내로 맞춰진다. 요즘 젊은 주부들은 머리를 제거하고 반으로 나눈 필레(fillet) 스타일의 간고등어를 선호한다. 굽기 좋고 먹기 편해서다. ‘순살 간고등어’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되는 이 간고등어 필레는 습식 염장만으로 염도가 5%까지 올라가 건식 염장이 필요 없다.


간잽이는 한 손에는 고등어 2마리를 쥐고 다른 손으로 소금을 뿌린다. 간잽이를 해보니 왜 고등어가 2마리씩 묶여 ‘한 손’으로 거래되는지 비로소 이해됐다. 한 손으로 쥐기에 고등어 한 마리는 적고, 세 마리는 많다. 두 마리를 포개 잡으니 꼭 알맞다. 간잽이 4명이 빠르게 고등어에 소금을 쳤다. 염장을 마친 고등어는 24시간 숙성 과정을 거쳐 간고등어로 완성된다.

비린내 없고 단단한 육질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예미정'에서 간고등어 구이를 맛봤다. 생물 고등어 구이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감칠맛이 크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예미정’에서 간고등어를 맛봤다. 생물 고등어 구이보다 촉촉함은 덜하지만 염장과 숙성을 거치면서 감칠맛은 컸다. 집에서 생선 굽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인 연기와 냄새가 확실히 적었다. 비린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요즘 간고등어는 싱싱한 맛으로 먹는 거죠. 많이 싱거워졌죠. 짜면 소비자들이 난리 칩니다.”


추석 같은 전통 명절은 간고등어 대목이나,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집밥 수요가 늘면서 특수랄 것도 없이 연중 내내 잘 팔린다고 한다. 에어프라이어, 생선구이 전용 프라이팬 등 생선을 간편하게 구울 수 있는 조리 도구가 속속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 안동 간고등어가 힘차게 과거에서 현대로 파도를 뛰어넘고 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