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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홍차에 스콘, 연잎차에 매작과…입안에 ‘단풍’이 피었네

by조선일보

눈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늦가을의 우아한 휴식 ‘애프터눈 티’

코로나 탓에 바깥나들이가 줄면서 붐비는 장소는 피하는 요즘, 지인들 두셋이 모여 앉아 가벼운 음식을 트레이에 층층이 쌓아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세트가 인기다. 이름 그대로 바쁜 오후에 달콤한 디저트와 차로 잠시 여유를 즐기는 방법이다.


영국의 우아한 귀족 문화가 모태다. 18세기 한 공작 부인이 점심과 저녁 사이에 배고픔을 달래려 간단한 차와 함께 디저트를 먹은 것이 애프터눈 티의 시작이라고 한다. 애프터눈 티 하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 아래에서 백발의 영국 할머니들이 보드라운 스콘을 한 입 베어 물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떠오르는 건 그래서다.

어른들의 우아한 휴식

비행기도 배도 사방팔방 막힌 요즘, 서울 한복판에서 보기만 해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청담동 주택가 한 모퉁이에서 10년 넘게 홍차를 끓이고 있는 카페 ‘트리아농’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달콤한 과일향과 알싸한 홍차향이 알맞게 뒤섞여 이국적 풍취를 자아낸다. 이곳서 매일 아침 스콘을 구워 내던 주인 정재용씨가 애프터눈 티 세트를 마련했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갓 구운 스콘, 달달한 마카롱이 접시 3개를 푸짐하게 채웠다. 찻주전자를 들어 옆으로 기울이자 단풍잎을 우린 듯 붉은빛 고운 홍차가 촤르르 쏟아졌다. 강한 맛의 실론 홍차에 중국 녹차를 섞어 한층 깊고 부드러워진 스트로베리 크림 아멜리다. “노릇한 스콘에 새콤한 딸기잼과 진한 생크림을 발라 먹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면 세상 다 얻은 듯 기분 좋은 포만감을 주지요.”


한 입씩 작은 크기여서 입가심만 해줄 후식으로 얕보기 쉽지만, 뜻밖에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가격은 1인에 2만3000원. 배를 미리 채우고 갔다간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기 십상이다. 아래 칸부터 한 층씩 위로 먹으면 되는데, 그것도 먹는 사람 마음대로다.

'트리아농'의 홍차. 왼쪽 위에 있는 것부터 '루이보스 스위트오렌지 허브티' '스트로베리 크림 아멜리' '마닐라 망고 과일티'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애프터눈 티 자체가 영국에서 싹튼 것이다 보니, 해외에 가지 않고도 이국적인 공간에서 차와 디저트를 즐기며 잠시나마 기분 전환을 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떤 종류의 차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취향에 맞게 주문하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롯데호텔 서울의 페닌슐라에서는 나성주 제과 기능장이 만든 애프터눈티 ’트러플 하트'를 선보이고 있다. 살살 녹는 망고치즈 케이크에 청사과 무스 등을 놓고 분홍 하트 모양 크림을 올린 초콜릿 과자를 홍차나 커피와 함께 맛볼 수 있다.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강남의 ‘오! 마이 치즈’는 치즈 맛 듬뿍 나는 케이크와 과자가 홍차의 맛을 더 풍부하게 살려준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 1층 페닌슐라 라운지&바에서 즐길 수 있는 애프터눈 티 세트인 '2020 머스트 비 르 루즈: 트러플 하트'. 트러플 초콜릿의 명가인 독일 ‘리벤첼러(Liebenzeller)’와 세계요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우수숙련기술자인 나성주 제과 기능장이 손잡고 만들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홍차 대신 도라지차 연잎차도 어울려

비싼 돈 들여 호텔식 고급스러운 애프터눈 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만든 버거나 모음 치즈 등으로 트레이를 얼마든지 바꿔 채울 수 있다.


음료의 세계는 더 무궁무진하다. 롯데호텔 페닌슐라의 김동호 지배인은 “아메리카노와 녹차는 물론이고, 기관지를 튼튼히 해줘 겨울철 감기 예방에 좋은 도라지차도 추천한다”고 했다. “보드카와 칼루아, 에스프레소 샷을 넣은 칵테일 ‘에스프레소 마티니’는 남자들도 디저트와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죠.” 제철인 밤, 감, 석류 등을 먹기 좋게 잘라 곁들여도 괜찮다. 다만 대추차, 계피차, 생강차 등은 향이 강해 피하는 게 좋다.


연잎차, 감잎차, 쑥차 등 전통차도 잘 어울린다.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의 ‘달보드레 애프터눈 티’는 염정수 한식 기능장이 사과 정과, 대추 조란, 매작과에 밤 슈 등을 곁들인 동서양의 만남. 청사초롱을 모티브로 기와 문양을 접목한 트레이에 담아내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조선일보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이 한식당 셔블에서 선보이고 있는 ‘달보드레 애프터눈티(Sheobul Dalbodre Afternoon Tea)’. 30년 경력 염정수 한식 기능장이 직접 만든 사과 정과, 대추 조란, 매작과, 강정, 모약과 등 한식 다과부터 밤 슈, 화과자까지 동서양의 디저트를 함께 곁들여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