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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건져올리니 “찍!”… ‘바다의 물총’에게 제대로 물벼락 맞았네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봄 멍게 수확 한창인 통영 영운마을 가보니

조선일보

멍게가 바닷물을 사방으로 쏴댔다. 멍게는 놀라거나 위험을 느끼면 물을 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찍!” 방심하다가 얼굴에 물을 정통으로 맞았다. 선착장으로 건져 올리자 멍게가 바닷물을 사방으로 쏴댔다. 왜 영국에서 멍게를 ‘바다의 물총(sea squirt)’이라 부르는지 알 듯했다. 통영 멍게수협 엄세륜 계장은 “멍게가 놀라거나 위험을 느끼면 물을 쏘니 조심하라”며 웃었다.


경남 통영 영운마을에서는 지금 멍게잡이가 한창이다. 영운마을은 국내 최대 멍게 산지로 꼽힌다. 한 해 2만t, 그러니까 전국 멍게의 70%가량이 통영·거제 주변 바다에서 나는데, 이 중 30%가 이 마을을 거친다. 바람에서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면 멍게잡이가 시작된다. 2월 말이나 3월 초 시작해 6월까지 이어진다. 열두 달 통영 제철 음식을 소개한 ‘통영백미’(남해의봄날)를 펴낸 음식 연구가 이상희씨는 “특유의 바다 향은 봄 멍게가 최고”라면서 “통영 어르신들은 ‘미륵산에 진달래꽃 만발할 때 멍게 맛도 정점에 오른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우렁쉥이? 멍게?

멍게는 표준어가 아니었다. 정식 명칭은 ‘우렁쉥이’. 멍게는 통영 등 경남 사투리였다. 멍게로 널리 알려지면서 표준어로 복수 표기를 인정받았다. 그만큼 멍게는 경남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먹어왔다. 양식도 경남에서 시작됐다. 바닷가에서만 먹던 멍게는 통영 인근 바다에서 대량 양식이 1960년대 후반 이뤄지면서 국민 수산물이 됐다. 이상희씨는 “양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개당 1000~2000원 받을 만큼 비쌌다”고 했다. “멍게 출하 날이면 돈 자루를 통영 시내 은행장이 직접 와서 차에 실어 입금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있지요.”

달걀만 한 중간 크기 멍게.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요즘 작업하는 멍게는 주로 2년산이다. “과거 멍게 양식 초기에는 바다에서 올챙이처럼 생긴 멍게 유생(幼生)을 줄기에 부착해 양식했어요. 지금은 육지에 있는 배양장에서 ‘팜사’라고 하는 가는 줄에 붙여서 10개월쯤 배양해요. 적당한 크기가 되면 팜사를 ‘봉줄’이라고 하는 굵은 밧줄에 감아서 본격 양식을 시작하지요. 수온이 낮은 먼바다에서 1년쯤 키우다가 채취를 한두 달 앞두고 가까운 바다로 양식장을 옮겨옵니다. 매일 필요한 만큼씩 끌어다가 작업해 출하하지요.”


배가 양식장에서 끌어온 봉줄 끄트머리를 선착장에 풀어줬다. 봉줄을 잡아당기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멍게 분리기’라고 하는 기계에 간신히 걸고 엔진을 켜자 마침내 봉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길이가 5m인 봉줄에는 멍게 수천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봉줄에서 분리된 멍게가 기계 아래로 떨어졌다. 작업장 바닥이 금세 농염한 붉은빛과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어떤 꽃밭도 이보다 화사할 수는 없을 듯했다.


봉줄에서 떼어냈지만 멍게는 수십 마리가 한데 뭉쳐 있었다. 이걸 크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할 차례였다. 인부 10여 명과 함께 멍게 더미 위에 무릎 꿇고 앉았다. 평균 이상 나가는 내 체중 때문에 멍게가 혹시라도 터지지 않을까 걱정한 건 기우였다.


멍게는 테니스공보다 더 탱탱했다. 그리고 서로 꽉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멍게를 떼어내느라 낑낑대는 모습을 보던 ‘아지매’ 한 분이 요령을 알려줬다. “손으로 멍게를 쥐고 뜯으려고 하면 손목 나가요. 체중을 실어서 손바닥으로 밀어내는 느낌으로 해야지.”


이렇게 떼어낸 멍게는 크기에 따라 분류한다. 남자 어른 주먹보다 큰 놈부터 탁구공만 한 놈까지 다양했다. “멍게는 큰 게 비싸요. 일식당에서 선호합니다. 큼직하고 육질이 두툼해서 요리하기 적당하죠. 일반 가정에서는 달걀 정도 되는 중간 사이즈가 먹기 편하고요.”

멍게는 수십 마리가 한데 뭉쳐 있었다. 서로 꽉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체중을 실어 손바닥으로 밀어내듯 힘을 줘야 겨우 떨어졌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분류를 마친 뒤 세척 작업이 이어졌다. 바닷물을 뿌려 멍게에 묻은 흙 등 이물질을 털어낸다. 탑차에 실어 운송할 때 더 오래 싱싱하도록 해준다.


바닷물을 뿌리자 멍게가 선착장으로 갓 끌어올렸을 때처럼 선명한 색을 되찾았다. 큰 멍게는 산 채로 탑차에 실어 식당으로 내보내고, 가정용 작은 멍게는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알멍게’로 만드는 손질 작업이 기다린다.


멍게 윗부분은 돌기와 물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입수공·출수공이 우둘투둘 튀어나와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겼다. 이 부분을 가로로 잘라내고 나머지 몸통을 세로로 갈라서 넓게 펼친 뒤 단단한 외피를 벗겨내면 주황색에 가까운 노란 속살과 작고 짙은 갈색 덩어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 ‘속살’은 살이 아니라 아가미를 비롯한 멍게의 내장, 그리고 갈색 덩어리는 심장이라고 한다.

멍게 죽·구이·찜도 맛있다

막 발라낸 알멍게를 입에 넣었다. 쌉싸름한 맛이 나다가 달큼한 맛이 치고 올라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싱싱한 바다 내음이 올라온다.


휘발유 냄새 같기도 한 멍게 특유의 바다향은 신티올(cynthiol)이라는 불포화 알코올 성분 때문이다. 신티올은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데, 이게 아니더라도 멍게는 먹어서 나쁠 게 없는 건강 식품이다. 열량이 매우 낮은 데다 인체에 필수 불가결한 바나듐 성분을 지니고 있어 심혈관 기능에 도움을 주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당뇨병 개선에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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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의 노란 '속살'은 실은 살이 아니라 내장이다. 갈색 덩어리는 심장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멍게는 초고추장에 찍어 날로 먹는다고 주로 알지만, 통영에선는 다양한 요리로 즐긴다. 이상희씨는 멍게 비빔밥을 유명하게 만든 주역이다. 몇 해 전 자신의 멍게 전문 식당 ‘멍게가’에서 멍게 비빔밥을 내놓았다.


통영 주민들은 ‘집에서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던 음식을 정식 메뉴로 떡하니 내놓다니, 그게 팔리겠느냐'며 혀를 찼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통영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귀찜처럼 요리하되 아귀 대신 멍게를 넣은 ‘멍게찜’도 맛있어요. 멍게가 익으면 식감이 고기처럼 쫄깃하거든요. 바다 향 나는 소고기랄까? 그릴에 굽거나 튀김옷 입혀 튀겨도 맛있고요. 찹쌀, 멥쌀가루에 다진 야채와 함께 넣고 죽을 쑤면 바다 향이 그윽한 게 기가 막히죠.”


듣기만 해도 풋풋한 봄 바다가 입안에서 파도치는 듯했다.

통영 '멍게가' 멍게 비빔밥. /이상희

멍게 비빔밥


재료: 손질한 멍게 170g, 멸장(멸치젓을 거른 맑은 장) 20g, 다진 마늘·파 10g, 참깨·참기름 약간씩, 밥 4공기


1. 멍게를 씻어서 물기를 빼고 콩알 크기로 다진다. 멸장과 실파, 다진 마늘·파, 참깨를 넣고 무친다.


2. 그릇에 밥을 담고 참깨와 참기름을 두른 뒤 양념해둔 멍게를 얹는다. 채 썬 오이, 곱게 다진 홍고추, 달걀 지단, 해초를 멍게와 함께 오방색에 맞춰 얹으면 맛과 멋이 더욱 산다.


자료=통영백미(남해의봄날)


[김성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