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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가요계엔 ‘김나박이' 초밥계엔 ‘모박송이’ 있다... 호텔 스시 대결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신라 vs 조선, 두 호텔의 스시 전쟁

조선일보

서울 신라호텔 ‘아리아께’(왼쪽)와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의 스시. 두 호텔은 국내 스시를 본고장 일본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쌍두마차 역할을 해왔다./신라호텔·조선호텔앤리조트

“가요계에 ‘김나박이’가 있다면, 스시(초밥)계에는 ‘모박송이’가 있다.”


스시를 즐겨 먹는 이들 사이에서 ‘모박송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스시 장인(匠人)으로 꼽히는 서울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의 모리타 마쓰미(森林松己) 셰프, 청담동 ‘코지마’ 박경재 셰프, 소격동 ‘키즈나’ 송웅식 셰프, 강남 도산공원 ‘스시인’ 이진욱 셰프 4명의 성(姓)을 조합해 만든 말이다. 가창력 뛰어나기로 유명한 4대 남성 보컬인 김범수·나얼·박효신·이수의 성을 조합한 ‘김나박이’가 스시 쪽으로 넘어와 변형·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나박이’ 콘서트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지만, ‘모박송이’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원체 자리가 적은데다 코로나로 그마저도 줄었기 때문이다. 아리아께는 매달 15일 오전 9시부터 다음 달치 예약을 전화로 받는데, “모리타 셰프 앞에 앉아 그가 쥐어주는 초밥을 먹기 위해 300번 전화해 간신히 성공했다”는 영웅담(?)이 심심찮게 들린다. 이진욱 셰프의 스시인은 신규 손님은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 단골과 함께 가야만 한다.


음식 값도 스시는 물론 음식 종류와 관계없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가장 비싸다는 박경재 셰프의 ‘코지마’에서는 오마카세가 점심 20만원, 저녁 38만원이다. 물론 1인분 기준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네 스시집은 서울 신라호텔 아리아께와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 소속 내지는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모리타·박경재·송웅식 셰프가 신라, 이진욱 셰프가 조선 출신. 이들 외에도 ‘한국의 초밥왕’ 안효주 셰프와 강남 신사동 ‘스시 마이’ 유오균, ‘스시 선수’ 최지훈, 대전 ‘스시 호산’ 이승철(이상 신라), ‘스시 마츠모토’의 마츠모토 미츠호, 대구 ‘스시 민종우’의 민종우(이상 조선) 등 이 두 호텔 일식당에서 수련한 뒤 독립해 이름을 날리는 스시 요리사가 무수히 많다. 국내 하이엔드(고급) 스시집은 신라와 조선 계열로 사실상 양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시의 본고장 일본에 버금가는 스시를 국내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된 건 신라와 조선 두 호텔의 공이 크다. ‘스시 오마카세’도 이들이 유행시켰다. 오마카세란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요리사가 그날그날 가장 좋은 재료를 이용해 알아서 쥐어주는 초밥을 순서대로 내주는 코스를 말한다.


아리아케는 1979년 문 열 당시에는 삿포로 ‘스시젠’과 제휴해 대중적인 스시를 내놓으나, 2003년 일본 3대 스시집으로 꼽히는 도쿄 긴자 ‘기요다’와 제휴하며 고급 스시로 전환해 오마카세를 선보였다. 모리타 셰프는 이때 기요다에서 신라호텔로 파견 나와 18년째 아리아께의 스시를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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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라호텔 아리아께 스시. 단정하고 섬세한 조화를 추구한다./신라호텔

조선호텔 스시조는 아리아케보다 6년 늦은 1985년 문 열었다. 아리아케가 기요다의 모리타 셰프를 영입했듯, 스시조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스시집 중 하나인 도쿄 긴자 ‘스시 큐베이’의 마츠모토 셰프를 2008년 불러들였다. 마츠모토 셰프는 2013년 독립하기 전까지 5년간 스시조를 이끌며 국내 최정상급 스시야(스시 전문점)로 끌어올렸다.


2018년부터 스시조는 도쿄 롯폰기에 있는 ‘스시 요시타케’와 신규 제휴를 통해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스시 요시타케는 도쿄에서 경력을 쌓은 뒤 뉴욕에서 활약하다 일본으로 돌아온 요시타케 마사히로 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전통적 스시뿐 아니라 손님 앞에서 조리한 요리를 내주는 갓포요리를 결합하는 등 스시 트렌드를 이끌며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최고 평점인 별 3개를 받았다.


궁극의 스시를 손님에게 제공하기 위해 최고의 재료와 기술을 추구한다는 점은 신라와 조선의 공통점이다. 스시조 한석원 주방장은 “2011년 원전 폭발 전에는 쌀과 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일본에서 공수했지만, 이제는 전남 영광에서 도미, 여수에서 하모(장어) 등 국내를 수배해 최고의 재료를 구한다”고 했다. 기술 습득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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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 한석원 주방장이 스시를 쥐고 있다. 스시조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서양 식재료나 최신 트렌드를 과감하게 수용한 스시를 낸다./조선호텔앤리조트

식당 분위기는 살짝 다르다. 아리아께에서는 스시에 집중해 즐기도록 셰프와 손님 사이에 최대한 말을 자제한다. 손님들도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지 동석한 이들과 속삭이듯 조용하게 말한다. 스시 맛도 과장해서 말하자면 밋밋하달 정도로 섬세하다. 모리타 셰프는 “샤리(밥)와 네타(생선회 등 밥 위에 올리는 재료)가 너무 튀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스시란 샤리와 네타, 간장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시조는 상대적으로 쾌활하고 역동적이다. 손님과 요리사 대화가 유쾌하게 이어진다. 한 주방장은 “고객들이 딱딱한 정통 일본식 서비스보다는 동적인 분위기를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손님에게 내는 음식도 정통 스시집과는 다르다. 스시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캐비아(철갑상어알), 트러플(송로버섯) 등 서양의 고급 식재료나 치즈와 된장을 섞은 소스를 사용하는 등 유연하고 과감한 편이다.


한 주방장은 “과거에는 간단한 안줏거리 2개 정도를 제공하고 스시를 냈지만, 요리 전문점 수준의 안줏거리를 제공하는 최근 도쿄 스시집의 트렌드를 스시조에서도 선보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셰프 각각의 개성과 취향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신라와 조선의 이러한 차이는 두 곳을 거쳐 독립한 셰프들의 스시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 호텔 일식당은 서로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최고의 경쟁자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모리타 셰프는 “스시조 같은 업장이 많이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