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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만두를 제갈공명이 만들었다고요? 소설입니다”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만두’ 책 출간한 박정배 작가

찐만두를 들여다보던 박정배 작가는 “맛도 맛이지만 형태가 너무 아름답지 않으냐”며 웃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만두는 중국집에서 비싼 요리 주문하면 공짜로 딸려 오는 ‘서비스’로 여겨지지만, 한때는 엄청 귀한 음식이었다”고 음식 평론가 겸 작가 박정배씨가 말했다.


“만두(饅頭)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이 고려사입니다. 충혜왕 4년(1343년) 10월 25일 기사인데, ‘어떤 사람이 궁궐 부엌에 들어가 만두를 가져가자 왕이 노하여 그가 도둑질했으니 즉시 죽이라고 명하였다’고 나와요. 참 살벌한 등장이죠?(웃음) 만두가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나 보여주는 역설적 방증이죠.”


박 작가가 최근 ‘만두’(따비)를 펴냈다. 제목만 들으면 가벼운 책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한·중·일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총 408쪽 중 19쪽이 참고 문헌이다. 그는 “지난 4년간 중국과 일본을 수십 차례 오가며 도서관과 서점에서 구석에 박힌 먼지 쌓인 서적 800권 이상, 논문 2000편 이상을 샅샅이 뒤졌다”고 했다. 2018년에는 1300년 전 당나라 때 만두 유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 박물관까지 답사했다.


만두가 뭐기에 이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책을 펴냈을까. 박 작가를 서울 서교동 중식당 ‘진향’에서 만나 찐만두와 군만두를 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많고 많은 음식 중 왜 하필 만두에 꽂혔나.


“만두 싫어하는 사람 봤나? 만두는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다. 단백질·탄수화물·지방 등 영양소를 고루 갖춘 완전 식품이자, 다른 반찬 필요 없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식사이다. 동아시아 음식 문화를 가장 잘 반영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형태적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만두를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제갈공명)이 처음 만들었다고 흔히 아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썼다.


“그야말로 소설이다. 제갈량의 만두 개발 이야기는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며 유명해졌다. 그러나 만두는 어원학적으로 만인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蠻頭)와 관계 없다.”


제갈량이 남쪽 정벌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노수(瀘水)의 험한 물살에 길이 막힌다. 현지 만인(蠻人·옛날 중국에서 남방 민족에 대한 호칭) 지도자 맹획은 ‘사람 머리 49개와 염소와 소를 바치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다’고 권하지만, 제갈량은 이를 거절한다. 그는 사람 머리 대신 고기를 밀가루 반죽에 싸서 제사를 지내고 만두(蠻頭)라고 불렀다. 이것이 변해 만두(饅頭)가 되었다는 것이 제갈량의 만두 개발설이다.

조선일보

1300여년 전 당나라 때 묘지에서 출토된 만두(교자) 유물./박정배

―그럼 만두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만(饅)은 음식을 나타내는 식(食)과 ‘~을 싸다’는 뜻의 만(曼)이 합쳐진 형성문자다. 고대 중국어로 만(曼)과 만(槾), 만(鏝)은 모두 벽을 바르는 도구인 흙손을 뜻한다. 흙손으로 벽돌을 바르면 벽돌이 숨겨진다. 만두의 만(饅)자는 피로 감싸 소가 보이지 않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고, 두(頭)자는 육조 시대(229~589년) 이래 사용돼온 접미사의 일종이다.”


―제갈량이 만두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의미는 있다고도 썼다.


“당시 남만은 지금의 윈난성(雲南省) 일대로, 공교롭게도 1957년까지 외지인을 잡아 머리를 잘라 신에게 바치는 ‘머리사냥’을 화던 와족(佤族)의 주거지다. 제갈량이 사람 머리 대신, 당시로서는 제분과 발효라는 최첨단 기술이 구현된 만두를 올린 건 문명사회인 한족의 우월성을 암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만두는 비교적 최근까지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다고.


“만두의 주재료인 밀이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밀은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평안도와 황해도,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재배하기 힘들다. 조선왕조 말까지도 밀가루는 진말(眞末)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고,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극소수만 식용할 수 있었다. 만두를 뇌물로 윗사람에게 바칠 정도였다. 조선 말 개항 이후 청나라·일본 등에서 분식 문화가 들어오면서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해방 후 미국의 무상 원조로 밀가루가 싸졌고, 1950년대 제분 산업 본격화와 1960년대 분식 장려 운동으로 우리 식문화의 근간이 바뀌면서 밀가루를 이용한 분식이 제2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 밀가루를 비싸게 수입해서까지 만두를 빚어 먹은 이유가 있나.


“성리학 때문이다. 만두 문화가 중국에서 꽃을 피운 시기는 송나라(960~1279년) 때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송나라 사람 주자(朱子)의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이걸 한글로 풀어 쓴 ‘가례언해(家禮諺解)’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런데 주자가례와 가례언해에 모두 만두가 제사 음식으로 등장한다. 이는 조선의 제사에 만두가 빠지지 않는 근거가 된다. 당시 사대부들은 ‘한결같이 주자가례대로 했다(一依朱子家禮)’라는 말을 글과 입에 담고 살았다.”

서울 서교동 '진향'의 찐만두./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만두 연구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나.


“언어였다. 일본어는 예전에 공부했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중국어는 새로 배워야 했다. 게다가 당·송·명·청나라 때 문헌은 현대 중국어가 아닌 옛 중국어로 쓰였기 때문에 문법도 글자 의미도 달라서 정말 힘들었다. 같은 글자·단어라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뜻이 달라진다. 오늘날 중국에서 만터우(饅頭)는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속을 넣지 않고 찐, 국내 중식당의 꽃빵과 비슷한 음식이다. 발효시키지 않은 밀가루 반죽에 속을 넣고 빚은 ‘자오쯔(餃子·교자)’가 한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만두다. 일본에서는 같은 한자를 ‘만주(饅頭)’라고 읽는데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은 단 음식이다. 현대 한국인은 발효병인 만두와 비발효병인 교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만두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발효병은 ‘상화’라고 구분했다. 상화는 요즘 찐빵과 비슷하다.”


―앞으로 만두는 어떻게 진화할까.


“만두피가 점점 얇아지고 있다. 탄수화물을 꺼리는 트렌드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것과 같은 수제 만두는 다시 귀하고 비싸질 것이다. 과거에는 밀가루가 비쌌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인건비 때문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냉동 만두가 대세가 되지 않을까.”


찜기에 남은 마지막 만두를 얼른 집어 내 접시로 옮겨 담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